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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Aug 29. 2023

청소부터 해야 했다.

왈츠시범공연이 주는 의미

 우리에게 소중했던 시간은  늘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왈츠시연이었다. 왈츠 공연은 늦은 오후에 있지만 행사 당일의 오전은 긴장감이 감돈다. 차라리 일상적인 루틴을 찾아 나서볼까? 늘 가는 커피숍에 랩탑(laptop)을 들고 집을 나섰다. 미완성인 글짓기라도 마무리 짓는 편이 낫다.  아침밥맛 없기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기 시간을 갖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커피숍에서 1시간쯤 지났을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아내가 집안청소 후 로봇청소기의 쌓인 먼지를 빼낼 수가 없으니 빨리 들어오라고 속사포처럼 외쳤다. 미용실에 다녀오겠다는 마음도 급해진 모양이다.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집안을 청소해야 불안해하지 않던 모습이 떠올랐다. 여행을 갈 때에도 집안팎으로 정리하고 떠나야 편안했다. '침대부터 정리하라'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던 것처럼 신기하면서 이해할 만도 했다. 식탁에는 밥도 차려 먹으시라는 글이 남아있는데 이것도 바라는 바였다. 마음이 바쁠 때에는 한 사람이라도 빨리 먹어두는 게 상책이다. 제 취향대로 간단명료한 식사를 하기에는 각자 따로 식사하는 것도 좋다.

 청소기 먼지통을 정리하고 무도복에 커프스버튼도 끼워놓고 공연할 왈츠 박자를 상상해 본다. 마루가 아닌 곳에서 바닥으로부터 발을 끌어모아 라이징업(rising up)을 하기에는 뻑뻑하다. 댄스화 밑창에 비닐테이프를 붙여 마루효과를 내어야겠다. 처음 댄스화를 신던 날에 밑창의 비닐을 떼어내지 않은 채 왜 미끌거리는지도 몰랐고, 거꾸로 춤에 빠졌을 때는 댄스화 밑창에 비닐을 붙이고 카펫 위에서 춤을 춘 적도 있다. 상황에 맞추어 보려고 아파트 옥상의 에폭시바닥에서 바리에이션 위치를 반복연습한다.

 보타이 복대 화장품 외에 광폭 스카치테이프와 가위까지 짐보따리에 넣었다. 듬성듬성 하얀 눈썹도 잘라내고 싶다. 머리기름과 분장용 화장품도 필요하다. 댄스복에는 핏(fit)을 위해 딱 붙는 속옷이 좋은데 안 입던  쟈키(jockey)도 이십 년 만에 꺼내 입는 게 스스로 놀라웠다. 아내가 준비해 줄 시간이 없어서인가? 직접 준비하다 보니 별일이다 싶었다. 착용감도 좋고 옷매무새도 좋아졌다. 아마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일조차 그리 많지 않음을 안 뒤부터 변했나 보다. 유한한 인생에 헛일과 꿈을 좇는 일에 시간을 낭비했다. 신(神)에게는 없는 인간의 특권이라던 죽음을 '진정 난 몰랐었네~'라던 유행가 가사처럼 헛헛한 웃음만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강사에게 마지막 점검을 받는데 콘트라체크, 론데, 스탠딩 스핀으로 이어지는 루틴에서 축이 되는 남성의 오른발과 여성의 원심력을 강조한다. 공연 두 시간 전 깨달아서야 어쩌나 싶은데 공연에서 "실수할 수 있지만, 입장부터 퇴장까지가 공연"이라는 강사의 한마디가 도움이 되었다. 절제된 입장과 퇴장, 여성이 우아한 인사를 마칠 때까지 양손을 벌려 "자 여러분~ 잘 보셨나요? "하며 연설가처럼 반복연습한다. 춤 자체보다 춤의 전후가 중요해졌다.

 최선을 다하려는 생각에 참석자들의 이름도 외우고, 공연을 큰 실수 없이 마쳐 기뻤다.  또 다른 행사에 초청하고 싶다고도 했다. 대가 없이 하는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행복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십수 년간 엮이고 토닥거린 세월이 빚어낸 왈츠 시연을 되돌아보니 기적 같은 일이었다. 기본기부터 시범까지 가르쳐온 스승들과 클럽멤버들과의 교류, 특히 투닥거리면서도 함께 할 수 있었던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부부 스포츠댄스를 취미로 한 일로도 감사와 행복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왈츠 리듬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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