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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Sep 17. 2023

아빠 손이 아닌데...

아내의 빈 곳 

 아내가 해외 미술 기행을 떠난 지 이레째. 아내가 없는 사이 기러기아빠인 셰프 한분과 집에서 점심도 하며 요리하나 배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내가 돌아오기 이틀 전 일요일에 점심약속까지 한 터였다. 김치찌개도 맛있게 끓였고 와인에 어울릴 카나페도 삐뚤빼뚤 만들었다. 얇게 잘라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낸 빵을 베이스로 깔고 치즈를 얹어 마요네즈 위에 블루베리도 얹으면서 사진도 찍었다.

 와인 한잔을 곁들인 적이 드문 나에게는 셰프방식을 따라 냅킨도 접어 식탁을 갖추는 일이 새로웠다. 물론 집에 아내와 딸들이 있을 때에는 가끔 양식 식탁 세팅이 있었지만, 남자 둘이 격식을 차린 세팅을 하고 있다니 낯설었다. 셰프는 들고 온 와인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필수로 여긴다는 것도 알았다. 김치찌개와 어울릴 공깃밥을 준비하겠노라고 했지만 , 나만 괜찮다면 카나페로 대신해도 충분하지 않겠냐고 제안해 왔다.  

 고기도 구워놓았고 김치찌개도 좋은 터에 한 접시의 카나페까지 있으니 식탁이 훌륭해 보였다. 카나페의 베이스로 바삭한 비스킷보다 빵이 김치찌개와 어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요네즈보다는 타르타르소스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처럼, 빵을 카나페 베이스로 쓰는 것이 품격이 있다니 제대로 음식준비의 철학을 깨친 것 같아 기뻤다. 정성이 음식에 들어가는 '손 맛'이라는 말 뜻도 한꺼번에 이해가 되었다.

 요리 외에 칼 잡는 법도 배웠다. 사고예방을 위해 검지손가락으로 칼등을 눌러 잡는 게 아니었다.  칼의 양날을 오른손 골프 그립 잡듯 잡고 어깨 힘을 빼고, 칼날을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야 했다. 채를 썰때는 칼끝을 고정하고 왼손 두 손가락의 너클(nuckie)에 칼을 대고 왼편으로 돌려가며 움직이는 데 쉽지 않다. 잘못된 동작과 올바른 동작까지 사진을 찍고 묶음사진들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회사일에 슉슉 지나쳐봤을 큰 딸이 '좋아요' 감탄을 표하더니 막내딸도 축하를 보내놓고는 '근데 아빠 손이 아닌데'라고 덧 붙였다. 아차 싶었다.

 여행 중인 아내와는 시차가 7시간이고 즉각 답이 올 형편은 아니었지만, 왠지 '나만의 레시피'라고 올린 묶음사진이 불안했다. 손님을 들이는 것을 꺼려하는 시대이기도 하지 않은가. 우선 칼 잡은 손이 퉁퉁한 데다가 반지까지 끼워져 있으므로 내 손과 달랐다. 칼을 보여주는 데 손을 보고 있다. 달을 가리켰는데 손가락 끝을 보는 것과 같았다. 칼등에 검지를 올려놓는 위험한 칼 잡는 습관과 올바른 동작을 비교하라는 뜻으로 올린 사진이었다.  웬 낯선 남자의 손으로 기상천외한 레시피라고 만든 전모가 드러났다. 예측되지 않는 일은 분란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여행 중인 아내에게 불안감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잔소리 이상의 대가를 치를 것 같았다. 낯선 남자를 들인 게 아니라는 변명이 필요했다. 막내딸에게 먼저 설명하여 사태를 누그러뜨려야 했다.  

 셰프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알고 보니 졸업 후 천주교 군종신부가 된 나의 친구와 동문으로 생도시절에 '빠따'도 맞은 적이 있는 후배였다. 빠따를 맞은 이유가 있었다. 성당대신 교회로 갑자기 발길을 옮긴 셰프의 사연까지 알게 되었다. 역시 사관생도의 상명하복은 종교의 자유보다 엄했나 보다.

 이야기 전개의 순서를 다시 짜 맞추었다. 아내의 부엌과 냉장고 살림을 무단 공개한 불경죄를  순식간에 사면받을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딸아이 주례까지 서 준 서신부와 아는 사이인 셰프를 초대한 것으로 전후 순서를 바꿔 설명했다. 아내로부터 완벽한 사면을 얻었다. 소개까지 할 만했다. 부인들이 귀국하기 전에 다시 캐비어 카나페를 만들자고 약속한 사실은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얀 거짓말은 어떻게 해야 하고, 짜 맞추기 수사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건 알린다'는 PR 광고까지 통찰력이 단번에 습득되었다.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믿지만 나중에는 믿는 대로 본다는 말도 실감 났다. 일의 발생순서대로 이야기하는 것과 발생과정에서 생기는 효과를 순서를 바꾸기만 해도 결과는 180도 달라질 수 있었다. TV뉴스를 켜면 정치인과 법조인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믿음이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인가?  풀리지도 않을 수수께끼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49재 지난 지 얼마안 된 친구 신부님이 천국에서 내려다보다 못해 한 코치해 주신 거 같았다. 생전에도 서신부님은 '신부 친구를 둔 덕에 천당 가는 수도 있어'라고 나를 위로했던 분이셨다. 서신부님 고마워요~! 책장 속 사진을 보니 빙긋이 웃고 계시다.

잘못된 칼 잡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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