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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기억

by 이용만

추석연휴로 청와대를 가보고 싶었다. 당일예약제인데 2000명이 벌써 마감되어 있었다. 대신 발길을 향한 곳이 길 건너 경복궁이었다. 정문으로 관람했던 것과 달리 거꾸로 북쪽 신무문으로 들어온 까닭에 건청궁부터 눈에 들어왔다. 2007년 건청궁이 복원되었다. 100여 년만이다. 얼마 만에 찾은 곳인가 아득했다. 경복궁과 인사동 근처는 외국 관광객이 들르는 곳으로만 여겨오지 않았더냐.

며느리입장에서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분가하는 일은 여염집처럼 필요한 일이지 않았을까? 1873년 고종은 경복궁에 양반가옥의 사랑채(장안당)와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을 지어 민비와 기거하였다. 1887년 국내 최초의 전등이 가설되기도 했다. 1895년 2월 청일전쟁 이후 10월 8일에 왕비가 시해된 안채를 둘러보니 허전하고 착잡하였다. 일제에 의해 1909년 철거된 건청궁의 터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으로, 1998년 철거 전 까지는 국립현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연휴에는 마음의 여유가 느긋해서인지 민속박물관 앞마당 소녀들의 씨름대회도 보며 가을을 만끽한다. 길 건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상영관처럼 비주얼 IT기술을 한껏 활용한 복합예술을 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백 투 더 퓨쳐'처럼 되돌린 시간에서 어떤 단초만 비틀었다면 역사는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아쉬움도 배어났다. 국군기무사령부터에 국립현대 미술관이 자리하기까지 한국의 근대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가 더 궁금했다. 일제는 조선왕실의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이 있던 자리에 수도육군병원을 건립했다. 터의 용도가 마구 뒤틀려있었고 문화와 역사는 잊혀갔다. 터가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시급히 복원하는 일이 문화재청의 철학과 이어져있었다.

늦은 저녁 집으로 향하는 중에 만난 곳이 송현 녹지공원이었다. 송현동 녹지공원을 둘러보았다. 공원에는 나무도 별로 없어 휑한데 건축비엔날레(biennale)가 열리고 있었다. 비엔날레라는 뜻은 2년마다(bi + annual) 열리는 국제적 미술 전람회다. 트리엔날레는 3년 콰드리엔날레는 4년,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도 있다. 분야별로 열리는 시기를 정해놓으면 미술시장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녹지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파빌리온 전을 개최하고 있다. 라틴어의 papilion이 나비라는 의미로 전시회등에 쓰이는 대형 가설 건축물을 뜻한다.

파빌리온들을 둘러보았다. 몽골의 천막집처럼 세운 나무기둥 사이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짓다'라는 작품은 현대적인 원시인의 움막 같으면서도 둥글게 뚫린 천장으로 밤하늘이 가득 들어왔다. 페어 파빌리온(Pair Pavilion)은 붉은색 정삼각형의 거대한 철구조물로 양 밑변의 좁은 통로 끝에서 또 다른 자신과 내면의 소통을 표현한 작품이라 한다. 공사 중인 건물인가 여겼던 또 다른 작품은 5층높이의 가설구조물로 전망도 볼 겸 올라가 볼 수 있었다. 빨랫감 같은 천이 휘날리고 전국 4곳의 흙더미를 만져보게 하는 데 무엇을 뜻하는지 공감하기 어려웠다. 일제에 의해 국권을 잃었으니 터를 입맛대로 바꾸어도 항변조차 못했던 격동의 시기를 흙으로 표현한 땅의 의미, 펄럭이는 깃발의 아우성처럼 연상하게 한지도 모르겠다고 겨우 정리했다.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라는 작품에서는 다양한 소리울림을 경험하게 하는 데 난해했다.

송현동부지는 미국대사관숙소로 사용 시 4M 높이 담장으로 둘러싸여 세간의 이목을 덜 끌지 않았을까? 이후 소유권이 삼성생명 대한항공 서울시로 바뀌었다. 일부 부지에 이건희 회장의 기증관 건립이 확정되었다. 110년 만에 되돌아온 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다. 바로 곁 왕궁터에서 철거, 이전, 복원해 왔던 혼란을 송현동 땅은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긴 호흡으로 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했던지 아직은 설치미술 작품들로 메워져 있다. 나대지에 무언가 건축물이 들어서면 선택의 여지도 없어, 경실련 관광업계 LH공사등 노른자위 부지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다.

터가 기억하고 싶은 것인가 사람이 터를 기억하려는 것인가? 오늘 청와대를 구경하려던 일정이 어긋났지만 왕궁터 일대를 되새겨서 뿌듯한 하루였다. 외세에 의해 왜곡된 터였기에 땅도 사람도 난삽한 기억에 침울한 기분으로 잠들었지만, 역시 가지 않던 길을 가보게 되어 새로운 느낌을 얻는 일은 뜻밖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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