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뮤지컬 '시스터즈'를 보았다. 블랙핑크 같은 K팝 한류의 뿌리를 찾고자 했을까. 연출자 박칼린이 10년 준비해 올렸다.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가요역사 속걸그룹 6팀(명)에 초점을 맞춰 'She stars'라고도 부르고 싶었나 보다.
1935년 조선악극단 저고리시스터즈는 생소하다. 단원이었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너무 유명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머니가 생전에 애창하던 '찔레꽃'과 함께 녹음해 들려드리면서 흥얼대던 그 노래다.
광복 후 해체된 조선악극단의 이난영은 김 시스터즈를 미국에 보내며 "남자를 만나지 말 것과 악기는 많이 다루고, 성공 못하면 돌아오지 마라"는 당부로 딸과 조카의 재능을 한껏 북돋웠다. 'You are my sunshine'과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으로 미국을 휩쓸었다. 6.25 전쟁시기 미군등이 30만 명이나 주둔했고 미 8군 무대는 스타덤의 기회였다. 국내에서는 화양 흥업이 '이 시스터즈'로 기회를 잡았다. 60년대 김희선과 교환원으로 일하던 절대음감 친구들로 탄생했다. '울릉도 트위스트'의 작곡가 황우루 선생이 얼마나 끈질기게 설득했는지를 무대장치와 배우들의 연기력과 악단으로 실감 났다. 미니스커트로도 유명한 파격의 윤복희와 코리아 키튼즈의 활약도 보았다. 몇 달 전 내한공연했던 100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만큼 스토리도 탄탄했다.
대표곡이 유행하던 시대상을 유일한 남성 MC 혼자 여럿캐릭터로 분장하며 설명한다. 빠른 전개 속에 핵심을 잘 잡아낸 느낌이었다. 60년대 김 시스터즈는 주급 1억 7000만 원이었다고 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미군무대가 옮겨짐에 따른 공연진출도 새롭게 보았다. 70년대 바니 걸즈 이야기와 노래는 청춘의 질풍노도와 같던 시절을 항께 지낸 동세대였다. 희자매와 혼혈의 인순이 파트에서는 노래를 넘어 인류애를 상기시켰다.
가요 속에 삶이 녹아있었다. 시대상이 바뀔 때마다 흥미진진한데 감동의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일제강점시기와 전쟁 분단이 빚어낸 애환을 공감하기 때문이었으리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진출하여 롱런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