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담은 마카롱

by 이용만

마카롱을 펜 수채화로 그린다. 달콩한 맛만큼이나 화려하고 아름답다.

연필 스케치로 구분한 뒤 지우개로 필요 없는 부분을 지웠다. 마카롱사이의 크림을 그리는 데는 자로 잰 듯한 직선이 도움이 되질 않는다. 직선이 곡선보다 나을 거라는 나의 뇌편향이 한평생 뚜렷했나 섬뜩하기까지 했다. 테두리의 선을 볼펜이나 유성펜으로 그어야 한다는 강사의 말을 헙수룩하게 들었던 게 첫 번째 실수였다. 명색이 사인펜 수채화인데 볼펜이나 유성펜으로 선을 긋는다는 게 마뜩지 않았다. 뇌리에서 맴도는 생각이었다. 수채화라고 하니 물붓을 꼼꼼히 지나가야 할 거라는 선입견이 두 번째 실수였다. 결국 종이 위에 물이 번져 가시 돋친 마카롱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멀리서 바라보면 컬러풀한 멋진 마카롱이다.

지나가며 흘낏 보던 관장은 예리하게 한마디 던진다. 그린 게 별로인 데다가 마카롱이 왜 조개 같으냐고 직관 그대로 말해주었다. 구도를 잘 못 잡은 마카롱 한 개는 아랫부분이 납작했고 색깔마저 황톳빛 조개였다. 굳이 잘 그렸다던가 감탄사를 연발하기보다 느낌대로 말해주니 오히려 내 속이 시원하다. 어디를 잘 못 그렸는지, 남들은 어떻게 보는지를 빨리 알게 되어 기쁘기까지 한 게 아닌가. 볼펜을 써야 할 때 쓰질 않고 강사의 한마디 말을 뭉개버린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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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과 강사의 작품 비교

어언 4개월째 수업이므로 학기를 마치는 졸업작품을 제출할 시기란다. 종이에만 그리는 줄 알고 엽서사이즈 한봉투를 사두었다. 마카롱에서 좌절한 기분에 지루하고 졸리던 차였다. 수업시간에 맞춰 들어오니 책상 위에 A4사이즈의 작은 캔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캔버스에 그려보라고 준비된 자체가 쇼킹한 일이었다. 수십 년 전,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하셨던 장인께서 종이나 판자에 그리시던 게 안타까워 이젤과 캔버스를 사드린 때가 생각났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면 모두 화가로 보였다. 눈앞 캔버스를 마주한 것으로 마치 화가가 된 기분이었다.

지난 시간에 놓친 강사의 주의사항이 뼈아프다. 테두리선은 유성펜으로 그려야 한다는 지침만 준수한다면 더 나은 그림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실패를 겪어보아야만 제대로 깨닫는 줄, 나만 아는 게 아닌가 보다. 강사는 내가 시행착오를 하고 난 뒤에야 한 가지씩 가르쳐준다. 마카롱을 다시 그려볼 작정이었다. 물 번짐을 막을 테두리선을 예쁘게 그리려고 가느다란 유성펜도 하나 샀다. 지난 습작시간에 알게 되었던 반성들, 수성펜으로 색을 듬성듬성 채워 넣는 일과 물붓으로 문질러대는 과오를 하지 않는다면 먼저 그림보다 나을 것이 확실했다.

적당한 건조시간 간격을 생각하며 물감의 지저분한 혼합을 피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 않더냐. 두 번째 하는 연필 스케치는 자신이 붙었다. 곡선도 부드러워지고 구도를 나누는 데도 익숙해졌다. 샘플과 똑같은 펜을 찾는 시간이 더디긴 했지만 두려운 마음은 없어 충분히 색을 채워 넣었다. 이번에는 너무 빽빽이 칠했다. 물붓을 대니 색은 더 진해졌다. 강사는 마카롱이 너무 진하면 맛없어 보인다고 했다. 강사의 샘플과 비교해도 색조의 부드러움은 차이가 많이 난다. 나의 마카롱은 마치 색소만 잔뜩 넣은 불량식품 같았다. 아무래도 초록색이 너무 진했던지 보다 못한 강사는 물붓으로 연하게 하며 휴지로 닦았다. 캔버스 위에서 마카롱이 맛깔나게 고와졌다. 그림이 이런 식으로 보수(補修)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찬가지로 색감을 더 넣고 싶을 때에는 마른 후 덧칠해 주면 된다는 사실에도 기뻤다. 스스로 깨치기에는 재능이 없음을 잘 알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 한 발 한 발 전진해 갈 수 있다는 희망, 캔버스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즐거웠다. 한 번이라도 경험하는 일이야말로 무한한 상상을 꿈꾸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교육을 했더라면 싶었다. 진즉 그림을 그렸더라면 내 안의 나를 빨리 알아내고는 타협점을 찾았을 것만 같았다.

무료였기 때문에 우연히 시작한 펜 수채화가 아니었던가? '무료'가 건네주는 신기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공짜 좋아해서 놓친 기회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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