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티는 카카오택시 같은 스마트폰 앱을 기반으로 하는 운송 플랫폼 회사다. 우버 테크놀로지의 준 말이었다. 우버라고 검색해도 우티 앱이 설치되었다. 브랜드 이름을 지은 경위는 모르지만 왠지 우티를 발음하며 우씨 우씨하게 된다. 택시를 잡지 못할 때 “우 씨” 하면서 우티 앱을 다운로드해 보았다.
“우 씨”라고 중얼거리며 내일 아침에 탈 모범택시를 시험 삼아 호출해 본다. 앗! 바로 나의 호출이 잡혔는지 1000원이 결제되었다. 우티 택시 결제를 위해 아직 나의 신용카드를 입력하지도 않았다. 아마 내장된 적이 있는 나의 신용카드를 그대로 쓰는 모양이었다. 얼른 취소 버튼부터 눌렀고 곧 1000원이 취소된 내역도 내 폰의 화면에 표시되었다. 푼돈에 목숨 건듯 불안과 안도감이 초 단위로 교차하는 게 요즘 이 일만도 아니었다. 디지털 시대를 살려 하니 초조하지 않은 날이 없다.
다음날 이른 새벽 아이오닉 5 전기차가 왔다. 어제 연습해 둔 덕이었을까. 확신을 갖고 도착시간을 말해주니 아내는 여왕이 된 듯 말이 없고 나는 오래간만에 체면도 섰다. 기사는 친절했고 궁금한 것을 묻기도 전에 설명한다. ‘별 다섯 평점의 알고리즘’ 덕이기도 하리라. 앱에서 운전기사의 평점이 우수하다고 떠 있어 안심이 되었는데 기사는 그것도 자신의 자랑거리의 하나로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목적지는 알려져 있으므로 “어디로 모실까요?” “어디로 갑시다”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내비 화면에도 표시되어 있으니까. 공식적인 말이 무난하겠지만 사무적으로 흐를 수 있는 게 말의 어려움이다. 경어를 어느 수준까지 써야 하나? 호칭과 극 존칭은 내뱉은 말과 두뇌 사이에서 적절했는지 아닌지 회로가 꼬이게 되는 경우를 기억하고 있다. 갑, 을의 위계와 말투에서 오는 선입견들은 자리 잡을 일도 없다. 더 이상 사무적인 대화를 이어갈 것 없이 우티 기사와 나는 전기차와 우버의 소소한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내가 넓다고 말을 거니 배터리 차라 그렇단다. “배터리 보여 드릴까요?”한다. “아 네. 그러시죠”했다. 차량 바닥에 깔려 있을 텐데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건가? 모니터만큼 넓은 직사각형 내비 화면에 설계 도면 같은 차량 바닥이 보였다. 차 대위에 얹힌 배터리 그림에 잔량이 75%라고 쓰여 있었다. 휘발유 연료 게이지처럼 작동했고 최장 530 km를 간다. 수명은 70만 km이니 폐차할 때까지 배터리를 걱정할 일도 아니란다.
놀라웠다. 며칠 전 7년째 타는 내 차는 10만 km 주행거리였고 미션오일을 바꿔야 하지 않았던가. 배터리는 100%에 못 미칠 만큼 충전해야 수명을 늘린다고 충전 요령도 덧붙인다. 얻어듣는 게 많았다. 신형 전기 차이므로 자율주행도 되는지를 물었다. 자율주행 3 레벨 모드는 고속도로에서 쓰면 좋을 텐 데 그곳에 갈 일이 없었단다. 사고 싶어 가격도 물었다. 5300만 원에 보조금이 1300만 원. 내친김에 나도 우티 드라이버 할 수 있겠다고 농을 던졌다. 차를 사고 무사고 5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단다.
프리미엄만 1억이라던 개인면허 택시 제도는 없어진 건가? ‘타다’택시 때 분신 사건도 그렇고, 허가 못한다던 우버가 언제부터 운행한 거지? 지난여름 스톡홀름에서 스리랑카 투잡러(two jober)인 우버 기사와 내전 중인 스리랑카 현실과 이민자의 생활상을 나눈 기억이 새로웠다. 생산자가 소비자인 프로슈머 시대이고 공유경제 시대를 살아가는 익숙한 생활 모습이었다. 4년 전에는 대만에서 일부러 우버를 타 보았다. 한국에서는 우버 택시가 설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길거리에서 우티 택시를 만나다니.
카카오택시에 대한 불편도 우리의 화제에 올랐다. 우선 기억나는 일이 잘 안 잡혔다는 거다. 새벽 공항이나 기차역에 갈 때 내심 불안 초조했다. 새벽시간에 도로에 나가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는 게 예전 같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호출 택시를 이용하려 해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지대에서 제대로 잡힐는지 선택지를 놓고 갈등을 넘어 고통스럽게도 느꼈다.
우티 기사의 말이 사실이었다. 화면을 통해 승객의 목적지가 보이므로 일부러 호출에 응하지 않으며 선택적으로 운행하는 데다가, 심지어는 승객 바로 인근에 대기하면서 시간에 쫓겨 웃돈을 주고 타게 유도하는 심리게임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강제 배차는 그래서 생겼나 보다. 제도나 시스템이 완벽하기는 늘 어려운 일이다. 변화가 빠른 세상이다. 새로운 시도를 해 보면서 고쳐 나가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꼭 우티 드라이버를 할 것은 아니라도 할 일이 없는 백수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이 가슴을 뛰게 하고 머리를 기쁘게 만들고 있었다. 희망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사회에 속해 있는 게 운이 좋은 편이다. 우 씨, 뭐든 신나게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