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날 느지막이 브런치로 식사한다. 이런 날은 두 끼면 족하다. 요즘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 식사준비도 힘들 터이니 설거지는 내가 한다. 멋진 커피도 만들어 줘야겠다. 아내가 좋아하는 커피잔을 꺼내고 우유도 거품을 내서 제대로 커피를 만들어야겠다.
얼마전 다이소 매장에서 커피 거품기를 보고 이런 것도 다 있네 싶어 샀다. 거품기 배터리 버튼을 누르면 용수철같은 코일이 진동하면서 우유거품을 만든다. 커피를 붓고 거품 가득한 우유를 넣으니 영락없는 카페라떼다. 조심하며 양손에 커피잔을 들고오는 모습에 아내가 놀란다. 아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와 함께 경탄이 터져 나왔다.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었다. 이렇게 놀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뭔 일? 커피 타 준 일이 처음도 아니잖는가. 수십 년을 같이 살면서도 머그컵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설거지 거리라도 줄이지 않느냐며 ‘나만의 선(善)’을 줄기차게 지켜왔다. 아내는 늘 먹고 입고 자는 절차를 중시하지만 나로서는 너무나 더디고 불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일로 종종 다투는 데 사실 커피뿐만이 아니다.
거품을 낸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이왕 갖추는 김에 커피를 커피 받침에 올려서 가져다 준 것 뿐이었다. 아내는 여왕이 된 듯 흐뭇해 했다. 오늘은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아 보였다. 앞으로도 사소하지만 생각이 다른 아내와의 ‘소소한 전투’에서 내가 먼저 생각을 바꿔 먹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의 유난히 밝은 표정이 뭐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핵심은 커피잔 받침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찻잔 받침에 스푼까지 가져오다니! 오늘의 커피 서비스로 아내가 한순간에 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어버리는 듯한 모습에 나도 적잖이 당황하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타박하던 아내의 잔소리도 내가 짜증을 내는 일도 별반 특별한 일 때문은 아니었다. 커피잔 받침까지 쓸 필요가 있냐던 내가 스스로 받침까지 들고 나타난 것이 아내에게는 사건처럼 보인 것이다. 아내는 나를 마이동풍으로 여겨왔다. 그러고보니 고정관념속에 나를 가두고 있던 것이 분명해졌다. 수십 년간의 반성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거품기로 인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하루같아 즐거웠다.
가성비 좋아 보이는 수박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생선을 내가 사 들고 왔을 때 사실 열에 아홉은 후회하게 된다. 일거리만 만든다거나 싸구려로 치부되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눈치 있는 남편들은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이런 좌절감들로 인해 홧김에 경제관념이 다르다거나 생각이 없다거나 중얼거린 세월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빙점으로 유명한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 떠오른다. 아내를 위해 연주를 하였으나 공감해 주지 않는 아내 앞에서 그는 두 번 다시 바이올린을 켜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울지 않는 바이올린’은 없었나 궁금하다.
공감하기 쉬운 것부터 찾아보자. 아내가 놀랄만한 일들을 마음먹고 꾸며야겠다. 오늘처럼 나답지 않은 뜻밖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공감해 줄 일을 찾아보자. 열에 아홉은 성공하리라. 때 아닌 나의 변신에 그들은 ‘변하면 죽는다’고 내게 농을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변해야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