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는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주문 결제 단말기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던 일상이 엊그제 같다. 아예 현금을 안 받는 매장이 많아 신용카드로만 결제를 해야한다. 카페,식당,극장,공연장,대형마트,병원,주유소에서도 키오스크와 신용결제로 잘 돌아간다. 큰 건물 주차장에서는 관리원 없이 호출버튼으로만 문의해야 한다. 키오스크는 원래 캐셔가 맡던 결제 업무를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시스템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인건비 없이 일을 시키는 '그림자 노동'을 소비자에게 강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키오스크가 ‘그림자 노동’과 관련이 깊다는 말에 공감하기도 전에 내게 닥친 일상의 우울한 현실이 더 답답했다.
집 근처 커피숍에서 노트북을 열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으니 커피숍 직원들도 내 얼굴을 알 만했다. 스마트폰에서 멤버십을 가입해 무료 커피 사이즈업의 혜택과 10회 이용시마다 주는 공짜 커피가 좋았다. ‘사이즈업’ 혜택은 좀 더 양이 많은 그랜드 사이즈 컵으로 주는 거다. 현금을 안 받는다하여 선불 충전한 앱에서 결제되니 신속하고 깔끔하기도 했다.
어느 날 매장에 키오스크가 2대 설치되었다. 적응해야 할 과정이다 싶어 터치스크린을 눌렀다. 레귤러로 주문한 뒤에 사이즈업을 하는 건지, 먼저 그랜드로 선택해 놓은 뒤에 사이즈업을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한번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고 틀린 곳에서 번번이 꼬였다. 직원도 나를 도와 500원 할인을 놓고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나마 익숙한 내 폰에서도 화면 글자 크기를 한 폰트 줄여야만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 불편했다. 내 스마트폰이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내 탓인지 기계 탓인지 긴가민가했다. 사이즈업은 되었어도 500원의 할인을 못 받은 게 몇 번 있었다. 내 불만이 볼멘 항의로 들렸는지 직원이 라테 한 잔을 무료로 준 적도 있었다. 키오스크가 노년층에게는 ‘어려운데 눈치까지 보인다’는 말 그대로였다. 결국 나는 직원과의 믿을만한 대면 주문으로 되돌아갔다.
두 대의 키오스크는 인건비를 상쇄할 만큼 역시 대단했다. 키오스크는 가격이 한 대당 약 400만 원 정도 하는데 서빙 인력 2명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둘씩 근무하던 직원이 한 명으로 줄었다. 전과정이 비대면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이제 비대면으로 메뉴 만들고 진동벨이 울리면 직원과 손님이 서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간혹 연로한 손님외에는 직원과 대면하며 주문하는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키오스크 시장이 커질 만 했다.
‘손님이 왕이다?’ 옛날이야기를 하시는 건가? 이미 신용카드, 무슨 패이(pay)로 결제한지 오래다. 현금을 낼라치면 석기시대 주먹도끼를 메고 와 바닐라딜라이트라테를 찾는 격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지식과 경험이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구나 진즉부터 수긍하고는 있었다. 키오스크가 마침 2대이니 덜 붐비는 시간에 완전히 마스터 해야 할 일이었다.
홀로 근무하는 직원이 한가할 틈은 별로 없다. 쑥스러운 듯 직원에게 묻고 키오스크에서 막혔던 곳을 깨쳤다. 그 이후 키오스크로 더디지만 사이즈업과 결제를 마칠 수 있었다. 3년 후배가 ‘남들은 다 아는 거야. 형만 몰라’ 라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한 세대가 30년이라고 하던 말은 역사속에서나 듣던 이야기인가. 3년이면 다른 세대처럼 여긴다. 내가 그랬다. 세 살 많은 선배와는 지레 말이 잘 통하지 않을 거로 믿고 있지 않았더냐?
키오스크로 주문해야지 하면서도 500원을 할인받지 못할 게 싫고 두려웠다. 스마트폰을 직원의 바코드에 보이며 커피 사이즈업과 결제를 하면서 왠지 위축되어 갔다. 나만의 애로를 도와달라고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주문 걱정 때문에 커피를 마실지 말지부터 고민하는 날도 있었다. 처음 방문하는 것도 아니었므로 점점 스스로 꼰대 손님 같았다.
나이가 많아 꼰대인 것은 아니다. 무언가 자신의 논리와 변명으로 사소한 규칙을 소홀히 하면 ‘어찌할 수 없는 나이 듦’으로 치부된다. 그랬다. 누군가 ‘묵묵히 돕는 때’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이 듦’의 신호였다. 주로 나이든 분이 꼰대처럼 더딘 편이니 ‘나이 듦이 꼰대’ 라는 등식인 듯 보이는 게 현실이다. 젊은이에게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어른에게는 말해 줄 사람이 없다. 아내가 그나마 ‘어찌할 수 없는 나이 듦’에 마지막 조언자인데 잔소리로 들었다. 바쁜 직원에게 주문하는 손님을 바라보니 나를 보는 것 같아 뒷골이 당긴다. 그림자 노동의 주체인 키오스크 군단이 내 정신을 번쩍 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