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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Jul 10. 2023

우울한 ‘번개’

 “아그네스는 ‘번개’야”. 성당 교우들이 아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내가 ‘번개’로 통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꼭 필요한 곳에는 물론이고 예상 밖의 활동 반경에 놀라곤 하던 그녀들에게는 아내를 번개라고 불러주고 싶었나 보다. 이곳저곳 아프다고 골골하면서도 전화 통화할 때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아내를 훤히 알고 있어서다.

 새벽 미사를 마치고 두 여성 교우와 걸어오는 길이었다. 그녀들은 내가 왜 혼자 새벽 미사를 다녀가는지를 묻지 않았다. 아그네스가 올해 몇이지? 내게 물었다. 몰라 묻는 것도 아닐 텐데 생각하며 예순아홉이라고 했다. 아홉 수를 믿는 건 아니지만 나이 탓이라고 했다. 아홉수에는 근심과 우울이 들 법하다 했다. 10년 중 아홉 수 한 해를 무탈하게 넘어가는 게 어디 쉽기만 하겠느냐고 했다. 아홉 수를 못 넘기고 돌아가신 동네분 두 엇이 거명되었다. ‘번개 아녜스’라니 처음에는 칭찬의 말로만 알았다. 한참 뒤에야 속 뜻이 읽혔다. 주일 미사 때에도 남편이 나타나는 일은 없고 동분서주하는 건 모두 아내 몫이었다는 반성이 내 마음속에서 커져갔다.

 얼마 전 아내가 ‘연령별 여명 통계’를 문자로 보내 왔다. ‘75세 사망률 50%’에 눈이 꽂히고 계속 머리에 남았다. 70대 중반에는 한 살 차이 아내와 나 둘 중 하나는 죽는다고 통계는 말해주고 있었다.

 카톡을 보낸 아내의 마음속에도 나와 같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았다. 기분 나쁜 가래가 멈추지 않는 두 번째 감기에 아내는 먼저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사실 적지 않은 나이다. 지난 3년여 비대면 생활로부터 오랜만에 사람들 소식을 만나서 들었다. 건강부터 묻게 되고 듣다보니 느닷없는 부고가 많았다. 코로나로 돌아가셨고 백신 후유증이라고도 했고 암이나 지병으로 떠난 경우도 허다했다.

 새벽에 상추에 물은 주면서도 미사 참례 개념은 없다는 걸 나보다 잘 아는 아내가 새벽  미사라도 다녀오라고 하는 날이 많았다. 금년 사순 시기에는 큰 딸이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했다. 그동안 수술 후 좋아졌다던 신부님인 친구도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우울의 시작인가? 사순절 시기는 광야에서 지낸 예수님처럼 시련의 40일로 기억되곤 했다. 아내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워져 있는 걸 느꼈다.  아내가 툭 던진 새벽 미사 한마디를 왠지 따라야 했다.

 부인과 사별한 남편들이 점점 늘었다. 그들은 이제 익숙한 홀아비 살이로 철학자가 다 되었다. 그들에게 아내의 긴 투병에 대한 소회를 묻지 않는다. 공감해 주지도 못한 가운데 곧 다가올 나의 모습 같았다. 잔 기침을 할 때는 내가 먼저 죽을 것 같다. 감기도 자주 걸리고 걸리면 한 달씩 겪는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고 우주의 시공간을 탐구하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엄연한데 결론도 없는 상념들만 무성하다. 한 밤에도 대책 없이  깨어 있으니 한낮 시도때도 없이 졸고 있다.

 비몽사몽 중에도 아내가 번개라니? 다시 되뇌었다. 남편과 자녀들을 돌보면서 '우아와 교양'을 지키느라 번개처럼 바지런해야 했다. 아이들이 출가한 뒤에는 한숨 돌리고자 하나 곧 손주들이 늘어나며 다른 모습의 번개로 산다.  재활 중인 큰 딸과 4살 손녀를 돌보는 일은 진즉부터 할머니 몫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멀뚱한 존재일 뿐 세상의 많은 할머니들이 번개였다. 아내가 먼저 죽을 것 같은 우울한 날에는 ‘남편의 홀로서기’도 걱정거리로 자라났다. 답이 없는 고민들이 모여 새벽 미사 다녀오라는 잔소리가 되었다. 말없이 다녀오게 되었지만 깨우쳐 준 아내가 있어 감사하다.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은 찰나인데 섬광의 밝기는 원자폭탄처럼 넓다. 하늘에서 내리 꽂은 비수가 거대한 동물을 찔렀는지 우르릉 쾅 곧 비명을 질러댈 기세다. 고단한 ‘번개’ 아내가 남편이라도 은총을 받게 하느라 새벽 미사를 다녀오라는 성화였다. 커피 한 잔을 놓고 아내에게 그늘이 드리워진 이유를 겨우 듣고 알게 된 것이다. 우울해진 ‘번개’ 아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부터 일어서야 한다. 홀로서기를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게 급선무였다. 까닭을 알았으므로 행동하는 일은 쉬워졌다.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해대면 나아질까. 이제는 내가 ‘번개’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기운 빠진 내 모습부터 바꿔야하는데 불끈 솟을 힘이 어디서 나올까? 우선 아내의 눈에 안 보이는 게 상책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노래를 흥얼거리며 영어수업이라도 들으러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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