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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리허설, 아저씨 돌아가시다

by 이용만

댄스클럽 송년파티를 성대하게 개최하느라 여념이 없다. 1년 전 예약한 호텔파티로 전체예산의 절반이 드는 메인행사이다. 회원들의 시범댄스와 게스트초대로 멋진 파티가 되도록 섭외와 콘티는 마쳤다. 새벽부터 댄스플로어설치는 이미 마쳤고 D-5시간 전부터 공연팀과 시범자들이 최종 리허설 중이었다. 음악이 생명인 댄스파티 특성상 선곡과 음향 조명 영상 등을 연결하는 중에도 예기치 못한 불안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사무팀장의 전화벨소리가 다급하게 아내에게 전해지는 느낌이 불길했다. 갑자기 회원부인으로부터 노를 아침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파티참석을 못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박 00 전 회장이 죽었다고? 오늘 아침? 아내도 나도 믿어지지 않아 보이스피싱이 아닌가 싶었다. 문자메시지를 다시 보았다. 나도 잘 알고 있는 회원 부인이 보낸 문자가 분명한데 요즘 부고를 사칭한다는 사기와는 거리가 멀다.


안녕하세요.

다름 아니라. 갑자기 저의

아저씨가 사망을 해서 오늘

파티는 참석을 못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전 11시 30분 보낸 시간이 찍혀있었다. 황당하고 난감했다. 그렇다고 정말 돌아가셨냐고 묻기도 어려워 공연자 대기 룸에서 잠시 서성인다. 우선 파티를 주관하는 회장으로서 160여 명 파티분위기가 걱정거리였다. 일단 이 급작스런 부고사실을 아내와 나 그리고 사무팀장까지만 비밀로 하였다. 다른 경로로 부고소식을 듣는 회원들에게도 공지시점을 가능한 늦추게 하여 암울한 분위기는 피해야 할 것 같았다. 회원들에게 공지할 타이밍을 폐회 때까지 미루기로 작정하고 공지문안을 작성했다.


- 폐회에 임하여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오늘 아침 갑자기 박 00 전임회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믿기지 않는 부고를 접했습니다.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쿠르즈여행을 함께 했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좋으신 성품대로 하늘나라에서 저희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잠시 묵념을 하겠습니다. 바로 -


그러고도 당사자의 부인에게 위로전화는 망설여졌다. 벌써 3 커플의 불참으로 심란한 데, 작은 이슈는 큰 문제에 가리는 법인가? 소소한 걱정거리들은 모두 묻혔다. 마음을 정하니 홀가분해졌다. 아내가 전화를 걸어 위로하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고인이 되었을 박 회장 부인의 독특하고 익숙한 억양이 들려왔다. 그렇게 슬픈 게 아닌 덤덤한 목소리다. 파티불참은 둘째치고 위로를 해야 하는데 아내는 별일 없냐고 어디냐고 더듬거린다. 반가운 목소리가 크게 들렸고, 삼촌댁 장례를 위해 시골 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 번 놀라 아내는 더 긴 말은 하고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삼촌이라고 했어야지 쯧.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남편으로만 여긴 터였다.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알고리즘에 익숙한 세상 탓으로 한바탕 웃고 말았다.


읽히지 않은 정기총회 인사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뼈만 남은 참다랑어를 배에 매달고 돌아온 노인을 만난 소년이 "그래도 큰 물고기를 결국 잡았잖아요"라고 위로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선 부족한 회장에 불안했을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해 4번의 파티를 마치고 나니 아쉬움이 많네요. 보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신입회원 3 커플과 재입회 1 커플에 의미를 두고 싶고요. 청리움과 볼플랫이라는 새로운 파티장소를 개척했습니다. 작은 변화들도 있었습니다. 파라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별회비규정을 보완했고, 봉사임원에 대한 기념품지급을 없앴고, 모바일 초대장 도입으로 업무와 비용효율을 개선했고요, 음향과 조명 영상 사진부문도 견적을 받아 규모에 따른 운용노하우를 축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고 의연한 파티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회원수를 늘려야 1급 호텔급 파티를 개최할만하다 하겠습니다. 숙제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 차기회장님들에게 짐을 맡긴 것 같아 송구하고요. 저희 집행부임원 9인으로 일했던 소중한 경험으로도 파라클럽에 힘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무난하게 임기를 마치도록 물심양면 애써주신 총무, 재무님, 감사님 그리고 유 팀장께 감사박수를 부탁드립니다. 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유증

파티는 호평을 받았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24. 12월 워커힐 송년 파티로 1년 동안에 봉사도 끝나는데 아직 정기총회와 결산이 남아 있긴 하다. 그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려 안도감에 취해 밤잠을 못 이루었다. 바로 이튿날부터는 어지러워서 못 일어날 정도로 몸이 많이 휘어져 있었다. 아내는 원인도 모를 두통에 휩싸인 것 같다. 동네 내과에서 가서 이상한 병명을 하나 달고 약을 먹기로 했으나 그 이튿날이 되어도 증세가 개선되지 않는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처럼 걱정되었다. 또 수소문해서 찾아가는 것이 이번엔 신경과 전문의를 찾았다. 두어 가지 검사를 하고 의사의 소견을 함께 듣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이고 어지러운 증세이다. 동맥경화증은 일단 아니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아 다행이구나 하는 것도 잠시 의사는 검사 소견을 말하면서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게 좋은 겁니다라고 한마디 흘렸다. 다 아내는 어느 쪽은 눈 떨림 현상까지도 어지럼증세에 포함해서 두통을 호소한다. 그렇지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눈동자 옆의 눈꺼풀 근육은 원형이라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장력 때문에 눈 떨림이 생긴다는 설명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고 신기하게 여겨졌다. 일단 카페인 섭취는 전년 금지한다가 주요 처방이다. 의사로부터 들은 증상과 처방의 내용은 별거 아니었다. 신경이 안 좋은데요 절대 흥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혈류가 10%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예민한 정도가 이런 상태를 유발하는구나 싶었다. 수치로 말해 주는 그 말의 무게는 권위가 있어 보였고 각성 흥분제인 카페인을 줄여야 하는 이유도 확실했다. 혈류 10% 빨라진다!

병원을 나서는 그 허망한 기분에 당신이 예민하다는 것뿐인데 이런 걸 가지고 고민을 하는가 어쩐가 푸념을 늘어놓고 말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또 화가 치미는 거라고 벌컥 지지 않았다. 온종일 병원에 동행하는 공이 순간에 날아가버렸다. 절대 안정하고 흥분하지 않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주범은 늘 남편 '바로 너'라는 것이 명백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도 아니었지만 또 그런 확신이 들었다. 총회 때 이런 나의 각성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누가 듣겠는가. 허탈해졌다. 박 회장 아저씨가 아니라 당신의 이 아저씨가 돌아가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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