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당 풍경 1

이제마의 사상의학

by 이용만

사암당 제6침방. 정사각형으로 나란히 붙은 6개 칸막이 중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옆의 방과 눈높이 정도 가려진 벽을 빙 둘러 다리 없는 좌식의자가 빼곡했다. 20개 의자에는 팔배게가 함께 놓여있고 의자 앞에는 이름이 적힌 차트가 가지런했다. 남들처럼 양팔과 두 무릎을 걷고 앉았다.

젊은 한의사는 성량이 풍부해 울림 있는 목소리로 빠른 대화에 익숙해 보였다. 능숙하게 환자 한 분마다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침놓을 자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 맥을 짚고 질문해 가며 침을 놓는다. 눈을 마주치며 방금 찔러 넣은 침을 돌리기도 하고 깊이를 조절하며 말을 건다.

아내대신 접수와 예약순번을 돕다가 침을 맞기로 한 첫날이다. 한의사가 내 차례로 옮겨 앉고 침을 들었다. 그가 무언가 말을 걸었지만 내 이마에 땀이 난듯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아파 눈을 찔끔거린다. 내 차례가 지나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찡그림 불안 안도감들을 보았다. 한 바퀴를 다 돌았는가 싶으니 스피커의 음악도 귀에 들렸다. 렛잇비 Let it be를 국악 스타일로 연주한다. 음악소리에 긴장이 풀어졌다. 명곡이란 익숙해서 편안하고 그래서 더욱 명곡이 되는가 싶었다.

두 번째 침은 아까 맞은 왼발과는 대각선 쪽 오른팔에 맞는데 손톱 끝 두 방이 특히 따끔했다. 침이 들어갈 공간이 없는 손톱 끝에는 다시는 맞고 싶지 않았다. 부루퉁해진 내 표정에 '모두들 반신반의하며 맞는'거라며 아내가 웃었다. 인여성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남성들도 서넛 된다. 걷어올린 양팔에 아토피가 분명한 장년의 남자는 거의 매일 오는 것 같다. 목청 높은 한의사 때문에 둘러앉은 20명의 아픈 곳이 어디고, 잠은 잘 잤는지, 무얼 먹으면 안 좋은 체질인지도 대강 알게 된다. 배변 횟수도 물어보는데 하루 한 번이라고 답했다. 후에 관찰해 보니 3회쯤 된다. 하루 한 번이 정상 일거라는 젊은 시절 기억으로만 대답하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아내 말 특정부분은 아예 듣지않는 것도 습관으로 굳어졌다. 객관화된 나를 찾기 위해 병원 의사들처럼 제대로 보고 일러줄 타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루할 틈 없이 한 시간 동안 바라보게 되는 눈빛으로 걱정해 주고 위로받는다. 침을 많게는 7,8군데 꽂고 있으니 자세를 흩트리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기도 불편해 자유로운 명상에 들어가기도 쉽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받는 액수는 모르지만 환자의 부담은 1800원이다. 긴가민가하면서도 이곳을 찾게 하는 힘이 있다. 건강을 지키며 정신을 쉬게 하고 동년배들의 일상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 묘한 심리 때문이다. 이만한 노년의 건강을 위한 모임장소가 따로 없네 싶었다. 전쟁 역사를 돌아보면서, 히틀러 통치하에서 벌어졌다는 집단 무의식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내는 사상체질 말고도 팔(8) 체질을 두루 꿰고 있다. 다니던 한의원에 따라 간혹 체질이 달라졌다고 먹던 음식이 바뀌기도 했다. "당신은 수체질로 돼지고기는 먹지 말아야 하며..."라는 아내의 말을 귀 뒤로 넘겨왔다. 어떤 체질이냐고 묻는 아내에게 한의사는 "태음인" 한마디만 짧게 던진다. 돼지고기는 먹지 말아야죠? 네, 소고기로...

두 번째 예약을 마치고 아내에게 물었다 "나는 원래 소양인 아냐?"

"소양인이 아니고 수양인"이라고 아내가 답했다. 이건 뭐지? 물 수(水) 자를 쓰는 가보다. 아내가 몇 년 전에 심취했던 곳은 팔(8) 체질 한의원이었다. 한의사가 태음인 한마디만 던지고 먼 산 바라보던 일이 알쏭달쏭해졌다.

침을 맞더라도 꾸준히 해야 효과를 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만성질환자들이므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한의사에게 맞고 싶어 한다. 예약일은 정해졌지만 새벽부터 대기번호를 받고 당일 9시 사암당 한의원 오픈시간에 진료도착 접수까지 확인받아야 할 정도로 치열하다. 내 앞번호를 4번이라던 아주머니는 승용차에서 비상등을 켜둔 채로 내게 클락숀을 울려 창만 빼꼼히 열고는 자신이 인계하는 나의 대기번호가 5번이라고 말해 불쾌하였다. 새벽 5시 54분이지만 춥지도 않고 훤히 밝은 6월 중순이다. 보통 30번대를 넘기는 일이 경험상으로 알고 있는지라 홑 4번이냐고 되묻기까지 한 터였다. 결국 그날아침 9시 전에 모이신 100여 명의 노인들 간에 번호가 중복되는 사단이 벌어졌고 4번 아주머니의 실수로 34번으로 밝혀졌다. 실수한 아주머니는 맨 끝번호로 줄을 서라는 항의의 외침에도 모른척하고 입장했다. 침을 맞으러 다니는 해프닝이 서글퍼 보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사상체질

조선 후기 의학자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성정편급(性情偏急)과 장부대소(臟腑大小)에 따라 소음인(少陰人), 소양인(少陽人), 태음인(太陰人), 태양인(太陽人)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단순히 육체적 건강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람의 타고난 본성과 심성을 연구하여 몸과 마음을 모두 치료하는 심신의학입니다. 타고난 체질을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만들어진 ‘나’이기에 인체구조를 넘어 가족관계, 대인관계, 사회생활 전반에 이르는 삶을 모두 치유하는 의학입니다.


https://youtu.be/nx9i6ikk9-E?si=GaCf6lwApPQoD0XF

이제마의 사상의학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

이것이 그 놀이의 규칙이다.

당신에게는 육체가 주어질 것이다.

좋든 싫든 당신은 그 육체를

이번 생 동안 갖고 다닐 것이다.


- 체리 카터 스코트(1949~)의 <삶이 하나의 놀이라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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