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
잡담이 능력이라고...?
<곁에 두고 읽는 니체>로 친숙해진 사이토 다카시는 또 다른 그의 저서 <잡담의 능력> 말미에 이렇게 썼다.
잡담력 그것은 잡초가 갖는 생명력과도 같다. 잡담력에 능한 사람이란 그런 잡초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이든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다. 누구나 주위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살아간다. 현대 사회는 인간관계가 희박해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토대가 되는 것이 일상의 대수롭지 않은 대화이며 잡담이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잡담력을 익힌다는 것은 강하게 살아남는 힘을 익히는 것 그 자체나 다름없다. 또한 자신이 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힘인 동시에, 그 힘은 주위 사람들을 살리는 힘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구원받고,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람은 치유된다. 언어를 가진 인간만이 갖는 잡담력은 살아가기 위한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심오하게 말하자면 잡담은 인생의 모든 것이다. 태어나서 잡담을 익히고 성장하고, 잡담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리고 마지막도 잡담을 남기고 떠나간다. 그것이 인간이다. 잡담이란 ‘사랑하는 힘’ 그 자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무릇 가지고 있던 것을 잃게 되면 잃어버린 것의 소중한 가치를 새삼스레 알게 된다. 건강이 그러하고 사랑도 그렇다. 잡담조차 할 수없을 때 그의 효용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매력이 자본'이라는 말도 그럴듯했다. 매력자본이 부족해진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불편한 진실이 되었다. '매력자본'이라는 말은 2010년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의 'Erotic Capital'을 번역한 것이다. 디지털 사진과 인터넷, 부유해진 세계, 화이트칼라 서비스업이 늘어나며 일하는 환경이 변화되었고 매력자본 Erotic Capital에 주목하게 되었다.
의상이나 자동차 취미로도 매력을 과시하고자,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까? 부유하다면 매력을 발산하기에 유리할 것이다. 품성이 사교적이면 더욱 좋다. 그것들 외에 건강미와 지성도 매력발산의 포인트가 된다. 상상이 안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나의 오랜 취미인 댄스도 그렇다. 정말 춤을 춘다고? 하며 놀랄 만큼 호기심을 일으켰나 보다. 예술을 이해하고 나름 철학을 갖춘 듯한 건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5년 10년 20년 사이 손가락사이로 물이 새어나가듯, 사라져 버린 근육이 줄어든 속도와 비례하며 '매력자본'이란 말이 실감 난다.
스포츠댄스를 시작한 지도 수십여 년이니 '관록'이란 게 없지 않다. 댄스기량은 늘었는데 낯선 파티에서 내 게 춤을 청하는 여인이 없다. 기량이랄 것도 없던 시절에도 낯선 여인들이 응원하며 줄을 서 주던 환상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젊음이라는 가장 강력한 매력자본이 없어진 것이다. 사교적이기는커녕 말을 걸기도 힘든 화난 듯한 표정으로 보인다면, 여인이 먼저 다가오기에는 더더구나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만남의 모임도 줄고 홀로 지내는 게 편하니 잡담을 하는 일도 없어진다. 오랫동안 내 안의 나를 방어하느라 굳어진 무표정 무관심이 악순환을 키웠음을 안다. 무도회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표정관리가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기량은 다음 문제, 우선 춤출 마음이 동해야 댄스 기량을 조율할 일이다. 매력자본(Erotic Capital)이 거의 소진되었음을 알게 되니 '잡담이 능력이다'는 말이 '매력이 자본'이란 말과 좌우 어퍼컷처럼 뒤통수를 한방 더 먹인다.
잡담은 스몰 톡(small talk)이다. 스몰 톡은 변화무쌍한 기후의 영국에서 보수적 심성의 영국사람들이 조심스러워하며 주로 하는 대화를 말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자 피부로 느끼는 날씨의 변화를 소재로 하기에 무난하다. 스몰 톡은 잡담처럼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중립적이면서도 짧은 인사에 덧붙일 수 있다. 말문을 연후 물꼬를 트려는 데 유용하다. 원어민과 소통을 위해 영국문화원에서 수업을 받은 기간이 적지 않았다. 수업 본론에 바로 들어갔으면 할 만큼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음에도, 스몰 톡에 비중을 많이 두었던 게 불만이었다. 돌이켜보니 본질을 놓쳤던 조급한 성격 탓이었던 것 같다. 사이토 다카시는 책의 말미에 잡담력이 영어회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썼다. 격식이나 형식이 필요 없고 의미와 소통이 되면 족하므로 언어능력보다 순발력이 더 필요하다. 외국인과의 조우에서는 낯선 여인과 춤을 추듯 잡담처럼 대화를 트이게 하는 일이었고 유용했다.
의욕도 줄어든 만큼 매사에 웃음도 줄더니 잡담을 시간 낭비로만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 고독의 길로 향했다. 과묵한 게 미덕이려니 여기다가 이제는 농담 한마디 하기 어렵다는 자각이 커졌다. 사이토가 지적한 대로 의도를 갖고라도 잡담을 하는 일이 절실하다.
1. 어색함이 사라지는 잡담
우리는 무의식 중에 이 사람에게 다가가도 좋을지 어떨지를 잡담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이용하여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당신이 지닌 본래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잡담은 필요하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감과 안도감을 주어 좀 더 많은 만남과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잡담은 반드시 필요하다. 잡담이 곧 알맹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잡담이 필요 없는 이야기라는 말은 큰 오해다.
잡담에는 알맹이가 없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 외관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건물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배관 공사이다. 배관이 막혀 물줄기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면 불편한 집이 되어 버린다. 잡담은 건물의 배관 공사처럼 인간관계를 막힘없이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요소다.
잡담은 인사 플러스 알파이다. 잡담은 간단한 인사에서 시작된다. 잡담에는 결론은 필요 없다. 잡담은 어디까지나 잡담이지 토론이 아니다. 결론이 없어도 오케이다. 잡담에서는 결론은 필요 없지만 깔끔하게 끝내는 것이 좋은 ‘잡담의 조건’이다. 잡담이란 대화를 이용하여 그곳의 분위기를 조성해 내는 기술이다. 따라서 잡담에 능한 사람이란, 화술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시간을 잘 때우는 사람이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요컨대 대화라기보다 사람 사귐에 가깝다.
2. 잡담의 기본 매너
우선 칭찬부터 한다. 눈앞에 있는 상대의 보이는 부분을 칭찬한다. 칭찬의 내용보다 행위가 중요하다. 흥미 없는 화제나 싫어하는 것이라도 일단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동의하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상대의 장점을 찾아라.
상대가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는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 절대 빗나가지 않는 화제란 상대가 흥미 있어하는 이야기다. 따라서 말솜씨가 서툰 사람일수록 잡담의 잠재 능력이 높다. 상대가 하는 말에 질문이라는 형태로 되 받음으로써 자신보다 상대에게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게 한다.
화제 지배율을 고려하라. 골이 아닌 패스에 능해야 한다. 상대의 화제를 그대로 따른다. 모든 조언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것을 그대로 말하면 된다. 테이블만 있어도 한결 말하기가 수월해진다. 일문 일답은 당신과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거절의 태도이다. 일문 일답 이상으로 상대에게 공을 패스한다.
일상생활의 사건 사고는 절호의 잡담 기회다. 금연 열풍이 거세지고 있는 요즘, 흡연자의 처지는 그야말로 처량하기 짝이 없다. 애연가들은 “담배를 피우는 것만으로 범법자 취급을 받는 것 같다”며 탄식을 쏟아낸다. 흡연 공간은 생각하기에 따라 아주 이상적인 잡담 공간이 된다. 이를테면 '피난온 동지끼리 서로 의지하는 곳'이랄까. 다수파에 밀린 소수파끼리는 쉽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법이다. 사소한 동지 의식 속에서 잡담은 피어난다. 험담이나 뒷담화 등을 꺼내는 일은 삼가야 하며 우스갯소리로 슬쩍 바꾼다. 잡담일지라도 기분 좋게 끝내야 한다.
3.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잡담 단련법
상대와의 구체적인 공통점을 한 가지 찾는다. 상대에게 맞는 잡담 한 가지는 기억하자. 편애 지도(골프 맛집 육아 강아지)로 맞춤 소재를 제공한다. 상대와의 최강의 접점을 찾는 편애 지도를 적어 보자. 지금 핫한 화제를 입수했다면 바로 활용한다. 정보나 뉴스는 살아있는 것이다. 게다가 발이 빠르다. 생선회와 마찬가지로 잡담거리도 신선해야 분위기를 띄울 수 있다. 일상의 궁금증은 훌륭한 잡담 소재다.
아기, 강아지, 아줌마를 상대하라. 장사를 하는 사람 중에는 남녀 상관없이 잡담해 능한 사람이 많으므로 자신의 행동반경에 잡담을 하는 사람이 여럿 있으면 좋다. 인형 뽑기이던 캔디이던 분위기를 살리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찾아라. 남에게 들은 이야기도 잡담 소재로 훌륭하여 친구의 친구 이야기도 좋다.
잡담이 늘지 않으면 택시를 타라. 연령별 핫한 키워드에 안테나를 세운다.
4. 실력 발휘에 필요한 비즈니스 잡담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잡담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그 사람의 집안이다. 잡담 질문에도 능숙해져야 한다. 면접을 보면서 회사에서 점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유연성과 위기 능력, 그리고 사회성이다. 중립적인 사람은 입장에 흔들림이 없다. 잡담력은 그 사람을 중립적인 존재이게 하는 사회성 넘치는 지성이다. 조직에서의 평가도 결국 잡담 능력에 달려 있다. 잡담에 뛰어난 사람은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랑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중립적인 잡담은 최강의 무기다.
기획 회의는 술자리처럼, 술자리는 기획 회의처럼. 이것이야말로 비즈니스맨이 업무 중에도 오프타임에도 공통되게 분위기를 띄우는 요령이다. 단순한 업무를 할 때 잡담의 기회가 생긴다. 따라서 잡담을 어려워하는 사람일수록 복사나 자료 파일링 자료 정리 같은 단순한 작업을 솔선해 보는 것이 좋다.
사장의 일은 잡담과 결단이다. 사장의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잡담과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은 새로운 니즈를 찾고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영업을 주의하고 때론 사내를 돌며 사원에게 질타와 격려를 하며 현장 정보를 수집한다. 이 모든 행위와 관련된 것이 바로 잡담력이다.
잡담은 상대와의 거리를 단번에 좁힌다. 집배원 한 분은 배달을 오면 꼭 개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잘 지냈니? 하고 개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넨다. 그러니 개도 그 집배원을 잘 따른다. ‘장수를 쏘려면 쏘려면 먼저 말을 쏴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먼저 개를 쏘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우편물을 배달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개를 좋아하는 푸근한 아저씨인 셈이다. 잡담력이야말로 비즈니스의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 잡담으로 구축한 인간관계가 비즈니스에서 실수가 발생했을 때 안전망이 되어준다.
5 잡담의 달인에게 배우자
<바보 과장 일대>라는 만화가 있다. <돌격, 크로마티 고교>를 그린 노나카 에이지의 개그 만화다. 이 <바보 과장 일대>는 내가 잡담의 교과서로 애독하고 있는 명작이다. 집 화장실에 두고 매일매일 읽고 있다. 예를 들면 “왜 새파란 신입이 대선배 말을 듣지 않는 거야?” 하며 혼쭐을 낸다. 그리고 계속 노닥거리다가 마지막에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월급쟁이는 점심시간에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지!” 이것으로 끝이다. “과장님, 혹시 사인펜한테 복수할 마음 없으세요?” “그래 어떻게 복수할까?” “뚜껑을 열어 놓고 말라비틀어지게 하는 건 어때요?” “그럼 사인펜이 날 미워하지 않을까?” 이런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한층 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방식이다.
얼굴은 잊어도 잡담은 기억한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때 oo 이야기를 했던 ooo입니다. 잡담의 기억이 상대와의 다리 역할을 유지할 수 있으면 다른 화제는 저절로 따라온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리액션이 중요하다. 오사카 사람들에게 미토 고몬(에도시대 번주였던 토구가와 미스쿠니를 모델로 한 일본의 시대극이다. 미토 고몬은 권선징악을 대표하는 인물로 한국의 암행어사와 비슷한 위상에 있다)의 인롱(약 따위를 넣어 허리에 차는 타원형의 작은 합)을 보인 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기획을 TV에서 한 적이 있다. 당시 오사카 거리를 오고 가는 일반 시민들은 거의 90% 이상의 사람들이 “우와”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심지어 넙죽 엎드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오사카 사람들은 항상 체온이 따뜻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많다. 때론 뻔뻔하다거나 번잡스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너무 차가워서 꺼려지는 도쿄 사람은 본받아야 마땅하다.
잡담에서 본론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배운다. 잡담은 땅 고르기다. 능숙한 만담가일수록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도입 부분에서 하는 이야기인 스카미 솜씨가 기가 막히며 절묘하게 본론으로 유도해 간다. 갑자기 본론이 아니라 그전에 미리 땅 고르기를 한다. 잡담은 이 땅 고르기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격의 없는 익살로 잡담력을 키운다. 바디 터치나 익살이 잡담력을 높이는 방법일 수 있다.
6. 잡담력은 살아가는 힘이다.
잡담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확인한다. 능숙한 어리광이 필요하다. 사람은 사실 누구나 수다쟁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이야기에 굶주려 있다. 젊은이의 잡담을 듣고 싶어 한다. 잡담도 베푼 만큼 돌아온다. 남에게 인정을 베풀면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속담도 있지만, 잡담 역시 베풀면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잡담 타임으로 집중력을 높인다. 잡담으로 인간관계의 불필요한 가스를 빼는 것이다. 이 가스 빼기는 매우 중요하다.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가스를 빼 준다. 잡담으로 마음을 디톡스 한다.
잡담력을 익히면 영어 회화 실력도 오른다. 잡담력은 영어 회화력을 능가하는 스킬이다. 잡초처럼 강한 잡담이 깊은 관계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