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파크골프 편
양재역 오전 7시 파크골프회원 40명이 베이지색 버스에 탑승하여 정시 출발이다. 처음 출전하는 파크골프다. 동네 스크린파크골프를 2회 경험했으니 아주 비기너는 아니다. 동네 경로당 한 곳을 스크린파크골프장으로 개조할 때였다. 평소 알고 지내던 70+시니어센터 관장의 급한 요청으로 '시니어로 적당히 팔팔'해 보였는지 강남구청 파크골프 홍보 모델이 되었다. 강남구 라이프잡지에도 소개되어 친구가 알아보고 전화도 해오니 은근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파크골프채도 장만했던 게 지난봄이다. 파크골프채는 채 1개로 퍼팅까지 커버한다. 1백만 원 거금? 에 아내 것만 구입했다. 골프에서 이미 경험했다. 아내가 전혀 사용하지 않는 3번 우드를 내가 잘 쓰지 않았던가? 또한 파크골프를 정말 치러 다닐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골프 십수 년 치다 보면 퍼터 페어웨이 우드 등 여벌의 채가 골프모자처럼 수도 없이 늘어난다. 사용하지 않는 드라이버를 잘라 파크골프채로 쓰겠다고 생각할 만큼 단순 무지했던 거다.
첫 야외 라운딩은 양양 남대천 파크골프장이고 바닷바람도 쐬고 오는 일정이다. 동해로 흘러 세상을 돌고 온 수많은 연어가 회귀해 온다던 그 남대천 수변공원을 이렇게 만났다. 너른 공간에 54홀 파크골프장 입구는 파란 잔디로 가지런하게 연회장의 리셉션 장소처럼 여백의 공간과 주차장까지 넉넉해 좋았다. 가을 하늘의 구름은 높고, 넓고 파아란 캔버스에서 구름이 변화무쌍하였다.
기념으로 받은 주황색 골프모자에 큼지막한 이름표도 붙였다. 매표소외에 보관용 락카는 없고 펜스걸이에 걸 수 있는 정도라 하니, 각자 채와 볼 운동화 모자 장갑 물 등 눈치껏 지참한다. 볼 색깔이 엇비슷해 자신의 공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경험 많은 서울연맹 총장과 女총무의 노련한 안내덕에, 첫 홀 티샷인데도 OB 또는 멀리건 따위 없이 그냥 똑바로 잘 굴러간다. 홀아웃한 뒤 다음 홀로 이동이랄 것도 없으므로, 앞팀 치고 나갈 때까지 올려다보는 하늘은 목화솜 솜이불처럼 몽글거리다가도 새털처럼 날카로운 획을 그린다.
코스가 지그재그로 다닥다닥 붙어있고, 매우 낮게 띄우는 볼이 되도록 클럽(파크골프채)이 설계되어 있다. 공이 다른 홀로 넘어가지 않도록 충분한 안전망은 없다. 낮은 관목과 1m 높이만큼의 철망만이 이동 칸막이처럼 막아 세워져 있을 뿐이다. 안전사고도 많이 일어난다니 주의를 요한다.
파크골프에서도 골프 드라이버처럼 채를 휘두르며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골퍼였던 노익장들이 스위트스폿과 풀스윙의 마력을 잊기까지야 했겠는가? 고정관념에 당혹해하며 발생하는 쌩크 또는 로브샷등 타구에 맞으면 큰 사고다. 공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되어 1억 원에 합의를 보았다는 말까지 풍문처럼 듣게 되었다.
스코어카드에는 송이 연어 은어 황어 대청봉 남대천코스 등 6개의 9홀 코스가 적혀있다. 게임하면서 80홀을 도는 분도 많을 정도로 걷기에도 최적이다. 부부조로 출발한 우리 팀은 스코어 기록할 것도 없는 명랑 파크골프로 한 사람이 버디를 잡으면 모두 버디다. 하지만 골프장에서 비거리 욕심은 사라질 성질이 아닌 병폐요 습성이다. 오버스윙이 금기임을 알면서도 휘두르고 싶다.
너무 여유를 부렸나? 굴려 보내는 공에 지루해진 건가? 저지르고 말았다. 순전히 옆코스의 고수들이 꽤나 탄도 높은 강력한 티샷을 해내는 스윙을 본 탓이다. 저런 게 된다고? 잠시 유혹에 한 눈 판 죄는 심각한 후유증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골프 스윙을 해버린 거다. 당연히 공은 빗맞은 듯했고 위로 튀면서 앞으로는 날아갔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파크골프장에서 로스트볼이란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름까지 적어놓은 노란색 공을 못 찾다니. 공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공 한 개 값이 3만 5천 원이라고?
골프공 한 개 6,000원쯤이던 시절 OB(아웃 오브 바운드) 나면 ‘생닭 한 마리 숲으로 날아갔다'며 애통해하지 않았더냐. 기가 막힌다. 멀리 날아가지도 않는 플라스틱 볼을 시야에서 놓친 죄. 마인드 컨트롤도 안 된 교만한 마음에 자책까지 더해져 제풀에 화가 났다. 갑자기 발이 풀리고 저혈당이 느껴졌다. 아~ 멘붕이 이렇게 오는구나. 떨떠름하다. 사탕을 입에 넣으며 추가 9홀 라운딩은 포기했다. 인근 수림식당에서 맛난 생선구이로 점심을 먹고 북쪽 동해바다에 연한 <바다정원 카페>에서 한가한 담소들을 나누고 귀경길에 오른다. 버스 안에서도 ‘파크볼 잃어버린 바보’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왜 그랬지? 멍청하게!'
잠을 청하며 매일미사책을 열고 양양 행사로 빠진 오늘의 복음 부분을 찾아 읽는 김에 내일의 복음도 읽는다. 그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음식은 물론 지팡이도 가지고 가지 말 것이며, 받아들여지지 않은 마을에서는 그 증표로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라는 말씀으로 꽤 익숙한 구절이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노랫가락이 떠오른다. 나는 마을에서 만나는 개도 두려운데 지팡이도 가져가지 말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말씀 같았다.
이튿날 새벽미사는 이달 초 새로 부임하신 주임신부님의 강론의 초점은 '지팡이, 먼지, 털어버리라'였다. 신부님도 '지팡이도 가져가지 말라'를 언급하며 이는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라는 뜻이며, ‘먼지’는 연연하지 않을 일을 일컬음이요, ‘털어버리라’는 것은 생각을 보내버리는 것이라며 '털어버리라'를 두 번 외치고 강론을 끝내신다. 새벽미사 후 자매님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린 파크볼과 털어버리라는 복음에 대한 소회를 말하였더니 새벽미사로 받는 은총이 바로 그런 것이라며 큰소리로 말해주신다.
파크 볼을 잃어버린 것도 따지고 보면 30년도 넘는 골퍼로서 파크골프를 낮추어 본 속마음 때문이었다. 까짓것 좀 더 큰 스윙으로 볼을 띄우고 말리라는 오만이 빚은 일이었다. 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그러고 보니 예수님이 엊그제 내내 양양 파크골프장에서 나와 함께 계셔 주셨구나 하고 미소 짓게 되었다. 아니면 잃어버린 '파크볼'에 숨어 계시면서 오늘도 누군가의 교만을 깨트리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40년 동안 골프장에 오신 적은 없었는데(수도없이 다녀가신 은혜마저 잊었나보다) 파크볼이나 찾아 줄 한가로운 분이 아니시긴 하다지만, 내게는 왠지 든든하고 감사한 파크골프여정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