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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노인

요나스 요나손

by 이용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영화를 먼저 보고 곧 책을 읽었다. 백세 생일파티 날 창문으로 도망쳐나온 알란은 29개 챕터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한다. 완성된 두 권의 책을 한 권에 묶은 것 같다. 100년이면 한 세기로 한 인간의 삶과 시대를 관조할 만하다. 금세기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지배본능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겠다는 인류역사의 연장선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에는 필연같은 권력 투쟁의 역사가 우연한 정치적 사건과 전쟁속에 우스꽝스러운 희극이 되었다. 작가는 인간과 역사속 기억의 조각들을 시니컬한 상상으로 조합하여 해학으로 읽히도록 했다. 일명 악당소설의 전형이라도 될만하다.

'아들아, 성직자들을 조심해라.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조심해. 가장 고약한 것은 술을 마시지 않는 성직자들이란다.' 알란이 겨우 여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그렇게 말했다. 유년시절에 생물학적 거세를 당한 알란에게는, 술과 함께 폭발물이 주는 통쾌함만이 유일의 취미이자 생계를 잇는 직업이 되어 백세노인의 여정을 이끌었다. 원자폭탄이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를 쥐어줄 것 같은 허풍으로 정치를 조롱하고 풍자하고 싶었나 보다.

마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철학이 말을 걸어온 듯, 관조적일 수 있는 백세 노인처럼 죽음도 삶도 무겁게 다루지 않았다. 등장인물마다 가지고 있는 심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드러내어 독자를 공감하게 만든다. 정치인을 비롯, 국가들에 대한 이미지 또한 노골적으로 재단하는 작가의 질주에 친밀감과 탄탄함이 배어있다. 우리 정서에 걸맞은 옮긴이의 자신감도 함께 읽혀 번역의 역할도 실감할 수 있었다. 책장을 덮긴 하였지만, 29개의 챕터를 현재와 과거 이야기로 나누어 다시 읽고 잊을 만하면 영화도 다시 볼 것 같다.


1. 2005.5.2 월요일

알란 칼손, 알리슨 양로원장 눈을 피해 도망을 결심하다.

2. 화단에서 빠져나올 때 그의 두 무릎은 음산하기 그지없는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100세 노인은 오줌 슬리퍼( 어느 연령대에 이른 사내들은 자신의 슬리퍼 끄트머리 이상으로 오줌발이 뻗지 않기 때문에 슬리퍼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를 질질 끌면서 길을 떠났다. 그는 지금 자신이 엉덩이를 깔고 앉은 묘석아래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친구는 61년이나 먼저 세상을 떴다. 그가 말름셰핑 역사 대합실에서 3분 뒤에 떠날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등짝에 <Never Again>이라고 새겨진 청재킷을 걸친 청년이 바퀴 달린 트렁크를 끌면서 화장실 문을 열고 있었다. 꺽다리 청년이 알란 앞으로 다가왔다. 청년은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알란이 자기 트렁크를 봐주기를 원했다. 그 소망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이! 똥 좀 싸고 올게! 하고는 100세 노인이 곧 버스를 타야 하니 빨리 다녀오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다. 알란은 기사에게 50 크로나를 내 보이며 물었다. 당신 생각으론 이걸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소?

3. 같은 시각 알리스 원장은 말름셰핑 양로원 1호실 방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이와 거의 같은 시각 화장실에서 나온 청년이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와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 엿 같은 늙은이야, 너 오늘 뒈졌다.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라!”

알란이 내린 뷔링에 역은 폐역이었다. 율리우스가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정말로 백 살이오?” “그럼 몹시 시장하겠구려?”그의 말이 서로 상관관계가 없어 보였지만 알란은 배가 고팠다. 술을 마시며 서로 살아온 얘기를 들었고 알란은 현관문 밖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기름기에 전 긴 금발에 숨긴 턱수염, 그리고 등짝에 <네버 어게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 재킷 차림을 한 그 청년’이라는 형용사구로 이루어진 인물소개는 그리스 <변신이야기>처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서술법이 친밀감을 더했다. 청재킷 청년은 기사를 기다리는 4시간 이미 짜증이 나 있었다. 기사는 겁에 질린 채 뷔링에 역 정류장에 버스를 대었다.

4. 1905년~1929년

알란 엠마누엘 칼손은 1905년 5월 2일 태어났다. 알란의 아버지는 짐을 꾸려 차르를 타도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열 살이 된 알란은 플렌 시市의 교외에 공장이 있는, 니트로글리세린 ltd의 한 자회사에 사환으로 들어갔다. 3년밖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쓰기와 읽기와 셈하기를 배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알란은 자신이 차린 다이너마이트 회사를 위해 일요일에는 자갈 채취장에서 폭파 실험을 하며 성능을 높였다.

일본과 미국은 동맹을 맺었다. 영국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바그다드를, 그다음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또 그리스는 불가리아와 아랍은 터키와 치고받고 싸웠다. 그리고 얼마 뒤 레닌 부하들은 차르와 그의 가족 전체를 학살했다. 알란의 어머니는 구스타프 손에게 외상으로 거래하고 있었는데 빚을 갚지 않은 채 죽었다. 그 식료품상이 자갈 채취장에 들어왔을 때 폭발 사고를 당했다. 알란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고 4년이 흘렀다. 국회는 ‘생물학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거세’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1929년 봄 병원 측은 알란이 다시 사회생활에 복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선언한 뒤 기차표 한 장을 살 수 있는 돈과 함께 그를 거리로 내쫓았다.

(우리나라 법원이 2013년 1월 3일 미성년자 성폭행범에 대한 검찰의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바 있지만, 서구에서는 그 역사가 훨씬 깊다. 덴마크는 1929년에 유럽 최초로 외과적 거세를 합법화했고 1973년부터는 화학적 거세를 적용했다. 스웨덴에서는 1944년에 외과적 거세를 도입했다.)

5.2005년 5월 2일 월요일

경비견은 노인이 명백히 버스터미널 대합실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냉동실에 갇힌 볼트는 보스에게 전화를 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망설이는 동안 냉동실의 온도는 계속 내려갔다. 결국 그는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불행히도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들은 시체를 들고 층계를 내려왔다. <네버 어게인>은 공식적으로는 오토바이 라이더 클럽이었다. 그렇게 이름이 지어진 이유는 다시는 조직원들이 콩밥을 먹게 하지 않겠다는 보스의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다. 보스는 범죄의 강도를 좀 더 높여 이번에는 미트볼에 포르말린을 섞어 보기로 했다. 아시아에서는 이것이 관행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필리핀에서 저가의 미트볼을 선편으로 수입하기로 했다.

7. 알란이 4년 동안 룬드보리 교수의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사이 윅스홀트의 농장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알란은 고향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고, 정확히 30분 뒤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했다. 농가는 콩가루가 되었고 이웃 농부의 암소는 두 번째로 유산을 했다.

대포 제조 공장을 뒤로하고 알란과 에스테반이 스페인에 도착해 보니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다. 국왕은 로마로 도망갔고 대신 공화정이 수립되어 있었다. 좌파는 혁명을 부르짖고 우파는 스탈린이 지배하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며 덜덜 떨었다. 스페인도 같은 운명을 겪지 않을까 하고.

만찬은 사령부 막사에서 진행되었다. 맛있는 적포도주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알란의 아버지는 더욱 영적인 인물로 변해 갔다. 프랑코 장군은 그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사내는 내 생명을 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황가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대단한 인물이었군!

8 2005년 5월 3일 화요일~5월 4일 수요일

양동이는 마침내 <더 바이올런스>라는 이름의 오토바이 폭주족 클럽을 결성했다. 영어에 약한 이사벨라는 10벌의 가죽 잠바에 당초 계획한 이름 대신 < 더 바이올린스>라는 글자를 새겼다. 가죽 장갑 안쪽에는 이름과 주소를 정성껏 수놓았다. 다음 날 아침 경찰이 신문을 위해 들이닥쳤다. 양동이는 마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예쁜 언니는 두 발 동물들을 위한 커피와 개를 위한 별식을 준비하여 베니와 부스터와 함께 베란다에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요컨대 버스는 며칠 만에 코끼리용 캠핑카로 탈바꿈한 것이다. 월요일 아침 찬장과 냉장고가 텅 비어 버려 예쁜 언니는 로트네에 장을 보러 가야 했다. 코끼리 소냐는 "앉지마"라는 말에서 예쁜 언니도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앉지 마"에서 많은 후피동물의 어휘 집에 "마"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테킬라 1리터를 다 마시고 나서 단 1초 만에 정신이 말짱해졌다고 말한다면 좀처럼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건 실제로 해리 트루먼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음을 접한 부통령은 알란과의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를 부득이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소로 돌아온 알란에게 학자들은 왠지 그를 약간 거북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해리의 요청으로 중국 국민당의 수장인 장제스의 부인인 쑹메이린을 만났다. "최대한 많은 다리를 폭파해 줘야 해. 공산주의자들의 통행로를 가급적 많이 파괴하여...""앉아요"라고 말하는 쑹메이린의 말투에 한마디 해 줄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알란 칼손은 지금까지 정신병자와 파시스트를 비롯해 별의별 취급을 다 받고 살아왔지만 개로 취급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쑹메이린은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저지하고, 그 어릿광대 같은 마오쩌둥이 이지방 저지방으로 독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 왜 그렇도록 시급한 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자기 남편 장졔스는 문제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악수를 청해 온 그녀가 "영영 안 하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하는 편이 낫겠죠?" 하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러시아 혁명이 터지기 바로 전날 니콜라이 차르에게 가서 붙은 자기 부친의 한심한 예도 있지 않았던가? 국민을 데리고 있으면 국민의 지도자 되기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쑹메이린도 이해하고 있고 마오쩌둥조차 이해하고 있건만, 오직 그 칠푼이 같은 장졔스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다.

이란 땅을 밟기 무섭게 국경 순찰대에 붙잡힌 것이다. 짐 속에서 이란어로 쓰인 공산당 선언이 한 부씩 발견되어 새 공산주의자는 그 자리에서 총살되었다. 알란은 외국인처럼 보여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12. 2005년 5월 9일 월요일

다음 날 양동이의 동생은 차에 새 번호판을 붙여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차를 가져가게 했다. 이럴 경우 라트비아 인들은 위조 번호판과 위조 서류를 만들어 차가 스웨덴에 정식으로 역수입될 수 있게 해 준다. 합법적인 차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렇게 양동이가 타고 왔던 포드 머스탱은 자신의 시체가 실린 채 해체되고 말았다. 시체와 함께 분쇄되어 버렸다. 알란은 그의 부친이 해 주었던 말처럼 '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며,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절도범들이 경찰에 신고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왜냐하면 절도범들은 본능적으로 경찰을 멀리하기 때문이라고...

13 1947~1948년

이란에 수감된 알란은 케빈 퍼거슨 성공회신부를 만난다. 근 여덟 명의 개종자를 만들어냈는데 이란 비밀경찰의 스파이 일수 있다는 점을 불현듯 깨달았다고 했다. 해리 트루먼이 CIA를 통해 이란 비밀경찰에게 고문을 포함 못된 것을 가르쳐주었다니 지옥불에 갈 거라고도 했다. 하느님은 침묵으로 답했다. 그분이 때때로 보이는 이 짜증 나는 버릇을 퍼거슨 신부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비밀경찰 보스는 언제나 최대한 정중한 예를 갖추어 신문을 시작하곤 했다. 잠시 뒤 사람을 죽이게 된다고 하여 반드시 뒷골목 양아치처럼 굴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수인의 눈에서 희망의 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었다. 인간들이란 왜 이리도 순진한지... 비밀경찰 보스와 알란은 마치 친한 친구처럼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짰다. 이게 공산주의자들의 테러로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란이 잘 알고 있단다...

영국령 인도는 벌써 균열이 가고 있었다.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틈만 나면 싸웠고, 그 중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 빌어먹을 마하트마 간디는 뭔가 못마땅한 게 있으면 먹는 걸 중단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따위 전략이 다 있는가? 윈스턴 처칠은 간디를 나치의 폭탄이 쏟아지는 영국 땅에 데려다 놓고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고 싶었다. 영국의 생존을 위해 싸우느라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골치 아픈 내전까지 떠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인도인들에게 수차례 독립을 약속해 주었다.

알란은 자기가 단 1분 사이에 쥐와 개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스탈린은 확실히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먼데?' 스탈린이 폭발 직전의 상태로 소리쳤다. 어쨌든 알란은 계속 모욕당하면서 앉아 있는 게 지겨워졌다. '그 지저분한 콧수염 좀 싹 밀어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날 만찬은 이 질문으로 끝이 났다. 통역은 기절해 버렸다.

알란이 연극을 너무도 잘했다고 칭찬하자, 헤르베르트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진짜 바보가 바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러나 알란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난 다른 바보들은 모두가 똑똑한 척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11년 만에 스웨덴에 도착한 알란은 스웨덴 군 연구소가 운영하는 원자력 회사의 에콜론트 박사를 만났다. 그는 알란에 대해 아무리 사회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기회 평등의 이론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알란을 자격 불충분자로 생각했다.

14. 2005년 5월 9일

검사는 아론손 반장과 함께 사건을 정리해 보았다. 패거리 전체를 살인죄로 기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과실 치사죄, 살인 공모 및 방조죄, 범인 은닉죄 등 뒤집어씌울 것은 얼마든지 있었다. 또 시신 관련 법규 위반 같은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이건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노인은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없단다. 하지만 취조실의 그 숨 막히는 분위기를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네 놈이 우리 유산을 관리한 방식이 바로 그랬지. 네 놈의 경우엔 떳떳한 건 법이고, 보류한 건 양심이었지만..." 보세가 내뱉었다. "뭐야, 그럼 누가 먼저 내 오토바이를 부숴 버렸지?"베니가 맞받았다. "그건 네 놈이 용접 학위 코스를 중간에 그만두어 버렸기 때문이잖아!" "형이 항상 대장 노릇하는 게 지겨워서 그랬어!" 하지만 이때 알란이 두 형제의 말을 끊으면서 말하기를, 자기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대개 <네가 멍청해! 아니야 멍청한 건 너야! 아니야 멍청한 놈은 너라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둘이서 보드카 한 병을 함께 비우고 나서 앞일을 생각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영감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을 보드카 한 병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거요? 이 분쟁은 구약 성경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골 깊은 이야기인데?" 보세가 물었다. 그 분쟁을 해결하려면 술병 개수를 좀 늘려야 되지. 하지만 원리는 같아.

15. 2005년 5월 9일 월요일

그들이 식탁에 자리 잡고 있을 때 페르군나르 예르딘은 잠에서 깨어났다. 놀랍게도 글러브 박스 안에는 자신의 권총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농가를 한 바퀴 돌며 창문마다 서서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거 곤들매기 아냐. 보세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 정말 너네 야 곤들매기 이거 얼마 만이야 세상에! 너, 나쁜 놈 보세 아냐! 이번에는 페르군나르 예르딘, 일명 곤들매기가 외쳤다. 향유 때문에 품질이 두 배이고, 물 때문에 중량도 두 배며, 스웨덴 닭이기 때문에 인기도 두 배지! 신토불이 스웨덴 닭에 보세는 상표를 붙인단다. 알란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비아냥 의도는 전혀 없었다.

16. 1948~1953년

알람의 벤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굿 애프터눈, 미스터 칼손"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보스는 조금 특별한 분이며 칼손씨에게 직접 소개하고 싶어 하신다고 남자는 대답했다. 어쨌든 전장 97m에 달하는 잠수함이 얼음을 깨고 출현했다. 자기에게 세례를 준 윅스홀트의 목사님 이후 자기를 이 중간 이름 알렌 엠마누엘이라고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단다. 서로 유리와 알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잠수함은 이미 레닌그라드 항해 정박해 있었다. 부두에는 베리야 원수가 기다리고 있는 크렘린 궁전으로 그들을 태우고 갈 자동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유리는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 책임자로 임명된 베리야 원수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숨김없이 얘기했다. 까놓고 말하면 베리야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란다.

멍청한 세계 챔피언이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어머니인지, 아니면 이 스웨덴 핵무기 프로그램 책임자인지 알 수가 없군…베리야 원수는 중얼거렸다.

17 2005년 5월 10일 화요일

18 1953년

3년 후, 거의 40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희생됐지만 상황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북은 북이고 남은 남이었다. 38선은 여전히 반도를 가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 네놈 막사는 왼쪽이야!" 경비병이 등 뒤에서 악을 썼다. 어떻게 인간이 저다지도 멍청할 수가 있지?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즉 전속력으로 달려 멀리뛰기하듯 펄쩍 뛰어 그 문제의 38선을 넘는다는 거였다. 오른팔의 오른팔의 오른팔을 통해 이제 김정일의 의심은 씻은 듯 사라졌다. 이 아저씨는 정말 메리츠코프 원수 아저씨가 맞는 모양이야.... 내일 당장 위원장을 뵐 수 있게끔 이 김정일 동무가 주선해 주겠단다. 하지만 우선 자기를 꼭 안아 달란다.

19 2005년 5월 11일 수요일에서 5월 25일 수요일

날이 가고 주가 감에 따라 기자들은 3중 살인범과 그 패거리의 이야기를 가지고 장사를 해 먹는데 갈수록 어려움을 느꼈다. 알란 칼손의 스토리는 단물이 다 빠져 버린 것이다. 그동안은 <기적의 최신 다이어트 비법>으로 대충 때울 수 있을 터였다. 이건 언제 내놔도 통하는 주제니까. "그놈들이 세금을 얼마나 내고 있어? 그놈들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몽땅 죽이려고 들어왔다고! 그 빌어먹을 대량 이민 정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해! 내 말 듣고 있어?" 아론손 반장은 물론 잘 알아들었으며 제보에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계속 지껄였다. "하지만 우리는 수가 많고, 우리 편은 나날이 불어나고 있어. 당신도 다음번 선거 때 확인하게 될 거야!" 아론손으로서는 정말 그렇게 될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

20 1953년에서 1968년

마오쩌둥은 알란과 헤르베르트의 손에 위조 영국 여권을 쥐어 주었다. 그들은 발리에 도착했다. 웨이트리스의 이름은 니 와얀 락스미 올해 32살로 주문한 음료를 제대로 가져온 적이 없었다.

헤르베르트는 자기만큼 둔한 사람은 지금까지 만나 본 적이 없었고, 그녀와는 공통점이 꽤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인이 된 아만다는 아예 자동차 운전학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어떤 운전이 좋은 운전인지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야. 내가 살아 보니까, 옳은 것이 옳은 게 아니고 권위자가 옳다고 하는 게 옳은 거더라고..." 헤르베르트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래 무슨 얘긴지 알 것 같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는데 돈 가방은 여전히 빵빵하고 휴가를 즐기는데 조금도 지겹지 않았다. 어느 날 폭발했던 아궁화산은 진정되었으나 스카르노의 뒤를 이어 수하르토가 권좌에 올랐는데 그는 먼저 공산주의자들을 공격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자 2억 명의 인도네시아 국민 중 공산주의자는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아만다는 파리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로 임명되었다. 1968년이었다.

23 1968년

드골과 존슨은 공식 회담에서조차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대사 아만다를 자리에 합석하도록 조치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이제 18살이 된 클로드는 자기 부모가 스탈린 치하에서 혁명의 양상에 대해 회의적인 어조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부모의 발언을 상부에 고발했다. 미셸 페낭과 모니크 페낭은 즉시 반 혁명죄로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그리고 클로드는 훈장을 수여받고 특수 공작을 훈련받았다. 프랑스 파리에 파견되고 권력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여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의 최측근 위치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내무부장관 크리스티안 푸세의 오른팔이 되었으며 푸세와 드골은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이 깊숙이 침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위험은 없다는 CIA의 분석도 사실은 페낭이 제공한 정보에 근거한 거였다. 내무부 장관 푸쉐의 보좌관은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왜 욕실 체중계 속에 무선 송신기가 설치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그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24 2005년 5월 26일 목요일

25 2005년 5월 27일 금요일

보세 융베리의 권유에 따라 요한복음 8장 7절 부분을 펼쳐 들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모세는 이렇게 모세와 로마인들의 논쟁에서, 그리고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나도 내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지금 <네버 어게인>은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의 법을 위반하지 않을 것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법은 더더욱 위반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아, 그래서 볼트는 대학 터미널 대합실을 파손했고, 매표 창고 직원에게 폭행했고, 또 버스와 운전기사를 납치했던 거요?” 검사가 반문했다. “혹시 검사님은 그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요? 어쩌면 내 몸에서 벌써부터 시체 냄새가 나고 있는지도 몰라.” 알란이 대답했다. “그래서, 난 이해가 잘 안 돼. 이 뒤죽박죽 이야기는 아인슈타인이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 거요.” “에, 아인슈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알란이 다시 시작했다. 됐어 칼손 씨! 라넬리드 검사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만일 그 경찰견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다면? 만일 개가 미쳤다고 믿게 할 수만 있다면 검사는 진창에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애초에 스몰랜드의 궤도 차이는 시체가 실린 적이 없고, 따라서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26 1968년~1982년

“이봐, 자네 스파이 일 해 보고 싶은 생각 없어? 내가 요즘 그걸 하고 있는단 말이야, 되게 재미있더라고! “스파이요?”유리 보리소비치 포포프 부부가 눈을 크게 떴다.

27 2005년 5월 27일 금요일~6월 16일 목요일

아만다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생존해 있었다. 이제 84살이 된 그녀는 그녀의 장남 알란이 경영하는 호텔의 한 스위트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발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스터 달러. 당신을 맞이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빨리는 모든 게 가능한 곳이지” 알란이 대꾸했다.

28 1982년~ 2005년

뱌체슬라프 몰로토프(1890~1986)는 소련의 정치가로 스탈린 시대에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1939년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해 <겨울 전쟁>이 발발했는데, 이때 물자가 부족한 핀란드군은 화염병을 만들어 던졌고, ‘나는 핀란드인의 친구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몰로토프 외무 장관에게 주는 술이라는 비꼬는 의미로 화염병에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적어도 똥은 마음대로 쌀 수 있겠지? 알란이 물었다 이것이 만난 지 15분도 안 되어 알란과 알리스 원장의 관계가 악화된 결정적 계기였다.

29 2005년 5월 2일 월요일

이 내용은 1번 챕터와 완전히 똑같은 문장이다.

에필로그

알란과 아만다는 함께 있어 무척 행복했다. 그들은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감정이 유난히도 따스해진 어느 날 저녁, 1925년 8월에 어느 날 메스를 휘두른 룬드보리 교수가 약간의 실수를 범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왜냐하면 이날 알란은 그때까지 영화로만 보았던 그 일을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만다는 그녀의 여든다섯 번째 생일날 인터넷에 연결된 노트북을 선물 받았다. 알란이 준비한 선물이었다. 아만다가 로그인하는 법을 배우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황소걸음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몇 주 후에는 자신의 블로그까지 만들었다. 그녀는 매일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거기에 썼고,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해서도 글로 적었다. 그녀는 이 글은 발리에 사는 자기 친구들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 말고 누가 이런 사적인 페이지를 찾아낼 수 있겠는가? 알란이 평소처럼 베란다에 앉아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을 때 정장 차림의 신사 한 명이 불쑥 찾아왔다. 알란은 인도네시아 정부 특사에게 앉으라고 청했다. 그런데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소? 알란이 물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염소 젖을 증류해 화주를 만드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이지. “네, 우리가 관심 있는 게 바로 그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염소젖? “아니요, 염소 젖은 아니고.””어, 그렇다니 참 기쁘네요. 그렇다면 내가 기꺼이 도와 드릴 수 있지!” 알란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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