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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말

황무지에서 대성당까지. 절망에서 피어난 기묘한 희망

by 이용만

단편 <대성당>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저는 누가 머리를 깎아 주는 일이나 슬리퍼나 재떨이나 옥수수죽 같은 것들에 대해 글을 쓴다는 생각을 두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부끄럽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말이다. 레이먼드 카버(1938~ 1988년)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가 다니던 제재소를 비롯해 약국 병원 등에서 일했다. 아이오와 대학교에 작가 워크숍 대학원 과정에서 수학했다. 1961년 단편 <분노의 계절> 이 문예지에 수록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6년 첫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출간되고, 이듬해 전미 소설상 후보에 올랐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개최된 작가 회의에서 시인 테스 갤러거를 만나고 1978년 아내와 이혼한 뒤 함께 살기 시작했다. 1983년 대표작 대성당을 출간하고 밀드레드 앤드 헤럴드 슈트라우스 생활기금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이듬해 대성당으로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폐암으로 5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글쓰기란 무언가를 발견하는 행위예요. 저만큼 놀란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지난 2년 동안은 시를 전혀 쓰지 않았거든요. 집에서는 매일 시를 써서 그날의 저를 비워냈고 그래서 밤이 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그 상태로 잠자리에 드는 건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 안에 무언가가 들어 있었어요"

이 책에서는 카버의 인터뷰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했다. 1977년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분노의 계절과 다른 단편들>을 엮으면서 또 1981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미니멀리스트 걸작들을 만들어내는 원칙이 되었는데, 그를 이끌고 있는 것은 에즈라 파운드의 주술적인 이런 문장이다 '진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이야말로 글쓰기가 요구하는 단 하나의 윤리다'. '성숙한 대가'라는 찬사와 '이 시대의 우화 집'이라는 평을 얻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접근법은 카버의 글쓰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4년에 카버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생활기금의 수령 조건에는 교수직을 사퇴하는 게 포함되어 있어 1984년 1월에 카버는 서부로 떠났다.

"마지막 몇 년 동안 빛과 광채와 이런 표현을 쓰자면 은혜가 제 삶에 들어왔어요" 카버가 마지막으로 남긴 대화들은 이런 축복들을 증언하고, 1989년 마지막 시집인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을 묶었다. 그해 7월 그와 아내와 알래스카로 낚시 여행을 떠났고 8월 2일 이른 아침에 포트 엔젤레스의 집에서 사망했다. 그는 마지막 책에도 '어쨌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 얻긴 했나? 그랬지. 그게 뭐였지? 스스로를 사랑받은 자라고 일컫는 것, 내가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썼다. 1990.3 마셜 브루스 젠트리, 윌리암 L. 스털의 서문으로부터.

전 늘 글을 쓰고 싶어 했어요

재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씁니다. 소설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쓰는 건 위험한 일이지요.

황무지에서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

한 부부를 찾아온 어떤 시각장애인을 다룬

<대성당>은 카버가 스스로 새롭게 마음을 열어 놓고 있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앞을 못 보는 사내에게 냉담한 태도를 취하던 남편은 TV를 켜고 대성당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다. 이 남편은 무얼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다. 그는 대답하는 대신 종이봉투와 연필을 자기 앞으로 가져온 뒤 그 눈먼 사내의 손을 잡고 눈을 감은 채 같이 그 대성당을 그려 나간다. 워밍하우는 대성당에 대해 쓴 서평에서 이제 미국 문학이 고전들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버의 단편들은 이름 없는 장소에서 이름 없는 일을 하면서 사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제대로 된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이용해 독자들을 확신시킵니다

장편을 쓰는 건 저로서는 엄청난 투자고 게다가 저는 그렇게 오랫동안 집중을 유지하는 걸 잘 못해요. 그의 단편집 <춤 좀 추지 그래 Why don't you dance?> 이 책은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제가 아는 한 최선의 예술은 실체의 삶에 근거해요". 위대한 편집자를 만나는 일도 중요해서 애즈락 파운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시들이 쓰이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걸 누가 쓰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라고.

"예술 작품은 힘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지지만 그렇게 하려면 노력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전 입 말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이 실제로 말할 때 쓰는 언어죠. '이번이 당신이 망쳐 놓는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한 문장을 종이에 썼습니다. 결국 단편 소설의 초고가 하나 나왔습니다. 그건 꼭 시를 쓰는 것 같았어요. 좋은 단편 수술 한 편은 나쁜 장편 소설 10편의 가치가 있어요"

<춤 좀 추지 그래?>라는 작품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가요?

"작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린다라는 술집 종업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느 날 밤 남자 친구하고 술을 마시다가 취해서 침실 가구들을 몽땅 뒷마당에 내놓겠다고 결정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얘기 누가 쓸 거야? 아무튼 저는 썼어요. 술을 끊고 나서 쓴 첫 번째 단편이네요. 단편 소설의 초고를 쓰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요. 하지만 그 작품을 여러 가지 판본으로 만들어 보는 데에는 시간이 꽤 걸려요. 단편 하나를 가지고 20~30가지 판본을 만들어 내기도 해요. 교과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사표를 쓰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어요. 완전히 전화위복이었어요. 그 주말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해고 파티를 열었어요. 1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거예요. 위로금과 실업 급여를 합쳐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어요. 아내가 학위를 받을 수 있었고 그때가 바로 전환점이었어요. 좋은 시절이었죠".

"좋은 소설이 하는 일 중 하나는 한 세계의 소식을 다른 세계로 전해 주는 거예요.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있었는데 착륙할 때가 되어 가자, 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손가락에서 결혼반지를 빼 주머니에 넣는 거였어요. 상상을 할 뿐이지요.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지 기억하나요? 어릴 때 낚시를 갔다 송어를 잡았는데 녹색이었어요. 물고기를 두 토막을 냈었는데 그때는 무지개 송어가 아닌 철갑상어였어요. 무게가 4.5kg 정도 나가는 철갑상어였는데 잊히지 않고 오래 남아 있게 되는 무언가가 뿌리를 깊이 박고 있었던 거죠. 제가 무언가 아주 특별한 걸 썼다는 사실을 바로 알았어요. 그때 30대 초반이었을 때 일 겁니다.

노동계급의 절망의 기록자

레이먼드 카버의 편집자를 맡았던 골든 리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기준을 들이대고 봐도 커버는 중요한 작가예요. 카버가 이야기를 설정하는 방식,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 제 생각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독창적이에요. 카버의 문장도 독창적이죠. 하지만 저를 가장 강력하게 설득한 요소는 카버만의 어떤 음침한 감수성이에요. 가난이나 교육이나 교육을 잘 받은 인물들이 뭐랄까 추잡스러워 보여요. 아주 막돼먹은 촌놈들 같은데 쇼핑몰에 들어와 있는 촌놈들이에요. 그리고 카버는 그런 누추함을 찬양하고 그걸 드러내고 심지어 그런 누추함을 어느 누구도 시도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요.

"제가 살아온 것과 연관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들이 노골적으로 자전적인 것은 아니라는 데에 대해서는 확고한 태도를 전제하고 있다. 한 작품의 핵심은 100만 가지 가능성을 제공하는 한 줄의 문장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문제는 연결을 시키는 과정이에요.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서로에게 상기시켜 주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이 일이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툭 튀어나온 절벽 위에 얹혀 있는 포트 엔젤레스의 집에서는 방해를 받지 않는 곳인데 10개가 넘는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빛이 가득했다. 군것질거리들을 끊임없이 먹고 있으며 이렇게 말한다. "니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아모르파티.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

저에게는 단편 수술이나 시를 쓰는 과정이 크게 다르게 느껴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모두 같은 원천에서 옵니다. 저는 문자 그대로 문장 한 개 아니면 대사 한 줄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깃털들에서 공작의 이미지가 그렇게 지배적인 것이 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지는 못했습니다. 헤밍웨이의 우리들의 시대를 읽고 그가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바로 이거야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면 이미 무언가를 성취한 거야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납니다.

바셀미, 그는 정말로 창의적인 작가예요. 그의 <60가지 이야기>를 읽었는데 점점 더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저는 보이지 않는데서 작동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데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 작품들은 작가가 끼어들지 않아도 잘 굴러가죠. 실제로 인생이 그런 것처럼 스스로 굴러가기를 바라는 거죠. 어떤 때는 너무 많이 들어냈던 것 같아요. 시든 소설이든 초고를 쓸 때에는 아주 빨리 씁니다. 그냥 종이 위에 풀어놓는 게 목적이에요. 기드 모파상이 흰색에 검정을 입혀라라고 말한 것처럼 종이 위에 뭐든지 쏟아 놓는 거죠. 마침내 모파상은 플로베르에게 <비곗덩어리>를 보여 줬죠. 플로베르는 그걸 보고 바로 이거요, 해냈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에 문학은 우리에게 부족한 걸 자각하게 하고 우리가 사는 과정에서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들의 정체를 깨닫게 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다워지는지 실제보다 더 크고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머에 웃는 건 웃지 않으면 울 것 같으니까 그런 거란 말이죠. 어떤 서평가는 <다들 어디 있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색하고 불편한 웃음이었다. 다 읽고 나서는 독한 술을 두어 잔 마셨어야 했다고 했고요.

"작가님의 유머는 고통에 가깝습니다. 안 그런가요?" 그게 인생이에요 아닌가요? 많은 경우에 유머는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제 이야기들에서 누군가 유머를 발견했다니 반갑네요. 대성당에 들어 있는 신경 써서라는 작품은 귀에 귀지가 꽉 찬 사내 이야기인데 그 사나이는 아주 암울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지난달 처음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읽었는데 다들 박장대수를 하더군요. 어떤 부분들이 그렇게 웃긴 모양이더라고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종류의 유머는 아니고 다크 유머인 거죠.

'나는 윤리적인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걸 써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운이 좋을 경우 작가에게서 흘러나오고 그 작품에서도 흘러나오는 선율이 있게 됩니다. 확실한 건 작품은 무엇보다 먼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그 뒤에 지적인 연결이 이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카버나라의 리얼리즘

카버는 말한다. 저와 같은 더 큰 목표와 포부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과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고 테스처럼 제가 사적인 공간과 고독을 필요로 한다는 걸, 제가 글을 이해하듯이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마 애즈락 파운드가 한 말로 기억하는데요 "위대한 시들이 쓰이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걸 누가 쓰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의미 있는 것 중요한 것을 써라. 그리고 만약 운이 좋다면 누군가가 그걸 읽을 것이다"

정서가 있는 것과 감상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정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상에서 사적이고 육체적 정서적으로 내밀한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문학에서 이런 관계를 다루지 않아야 할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발'이나 '선물'에서 드러나는 밀착의 경험은 어떤가요? 그런 경험들이 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뭐가 있나요? 존 가드너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인가 전에 이렇게 말했어요. "밭에서 뒤를 돌아보면 짚단이 많이 쌓여 있지만 앞에는 아직 전부 다 베어야 할 것들이야" 저도 같은 느낌이에요. 제 생각에 모든 작가는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쓴다고 봅니다. 자기를 즐겁게 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 좋은 독자들도 즐겁게 할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거고요.

그는 단 한 가지 기준을 무조건적으로 지키라고 요구한다.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쓸 것 그리고 엘리트 그룹이 아니라 대중에게 말할 것 싸구려 속임수는 안 된다 나는 내 세계에 대해 말하고 오직 그것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 작가를 다른 작가들로부터 구분하는 그의 스타일 이상을 의미하는 그만의 세계다 단순한 실 한 가닥에서 정금의 규칙이 나온다. '단순함은 진실의 인장이다' 고대 로마인이 한 얘기로 알고 있다. 아마도 세네카? 글쓰기란 무언가를 발견하는 행위예요. 제 묘비에 시인이자 단편 소설 작가- 그리고 이따금 에세이스트라고 이 순서대로 새겨 주면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시는 제가 소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시에서는 소설에서 보다 스스로를 덜 통제하면서 좀 더 내밀한 모습을 보여 주고 그래서 좀 더 취약한 상태가 되는 듯합니다. 소설에서는 아마도 제가 좀 더 떨어져 있고 좀 더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주제나 상징처럼 무겁게 들리는 말들을 피했어요. 주제나 의미 같은 건 작품 자체에서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고 저는 본능에 의존하는 작가예요. 제가 가지고 있고 또 거기에 목소리를 부여해 주고 싶은 어떤 강박이 있어요. 우리가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는 자산을 얼마나 잘못 관리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이죠. 그리고 사람들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스스로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얼 할 수 있는지 같은 생존에 관한 것에도 관심이 있어요.


<깃털들>이 얼마 전에 영화화되었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도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존 치버의 <헤엄치는 사람>을 영화로 만든 걸 봤습니다. 저는 미니멀리스트라는 명칭에 대해, 저는 미니멀리즘을 넘어섰습니다. 제 소설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어요. 더 있다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냥 꼬리표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개념이 그에게는 들어내기의 예술가인이 사내에게는 거의 폐수술 수준으로 ( 무시무시해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제 소설에서 한 군데만 들어내면 소설도 사라집니다. 카버는 그렇게 말하고는 좋아했다. 끝내야 할 책이 한 권 있어요. 회고록(믿어져요?)을 써야 되고 출판해야 할 시들도 있어요.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자신의 문학만큼이나 담백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카버는 기침을 멈췄는데 예의를 갖춰가면서 인터뷰를 연기하고 있는 동안 그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한 듯했다.



역자 고영범은 “2012년에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을 번역한 것으로부터 이 책으로 끝나게 되었다며, 살아오면서 어느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 성의 있게 들여다본 적이 또 있었나 싶다”라고 고백한다. 2024년 5월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 단편집 <대성당>을 읽고... 참고서가 필요했다.

https://youtu.be/J3Qsn8mIMdM?si=8RlTiCFAF8iTIKLx

https://youtu.be/qyxE8hNnTSY?si=2p8EOMXWox6xa9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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