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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댄스댄스 2

by 이용만


<댄스댄스댄스>를 번역한 유유정은 작품해설을 첨부해 두었다.

현대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과 성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것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를 정의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해설해 놓은 책 10여 종도 인기를 끈다.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처럼 3개월 만에 완성했다. 머릿속에 먼저 소설이 구상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양을 쫓는 모험>은 권력기구의 중추를 지배하려 했던 양의 야망을 양의 몸 안에 이식한 ‘네즈미’라는 친구가 '결단=자살'에 의해서 이 세상으로부터 소멸하는 이야기다. 1970년 작가의 '전공투 운동'을 청산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정치와 젊음의 죽음 후에 오는 재생을 소설로 썼다. 춤을 추는 행위에서 관계성을 회복하는 가운데 젊은 세대들의 삶의 의미와 가치관, 사랑과 섹스,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추구하는 일이다.

서른넷의 이혼경력이 있는 ‘나’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친구 '네즈미'를 자살로 잃고, '키키'는 실종으로 잃는다. 키키는 환상의 여자로 등장하여 양사나이와 함께 나를 현실에 안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섯 구의 백골은 죽음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는 ‘과거=관념=환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갈 수 없음을 나타낸다. 작가는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을 갖고 있는 ’ 딕 노스’, 키키의 동료 콜걸 ‘메이’, 중학 동창생인 배우 고탄다’를 죽게 하였다. 돌핀호텔의 프런트에서 근무하는 '유미요시' 양과 ‘이곳’에서 나의 재생을 알아차리는 순간 최후의 백골은 과거의 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양사나이의 실체 또한 <양을 쫓는 모험>에서도 등장하여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며, 사람의 마음속에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이쪽(현실)과 저쪽(관념)의 세계 중 양 사나이는 관념의 세계를 상징한다. 또 '이루카'란 돌핀, 그러니까 같은 호텔이지만 고도 자본주의사회를 상징한다.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불안은 낭비가 최대의 미덕이기 때문인데, 물질=상품만이 낭비의 대상이 아니고, 사람=개인 역시 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에 삼켜지고 버려지는 존재가 된다.

’나’가 춤을 추는 까닭은 상실한 것들을 되찾는 일이다. 키키는 "나는 당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요" 라며 벽 저쪽으로 사라져 간다. 나는 마침내 돌핀호텔로 돌아가 유미요시와 결합한다. 양사나이는 사라지고 없다. ’나’가 더 이상 양 사나이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아다.


사람이 한 명 죽었어. 우리의 공통된 친구인데, 경찰이 움직이고 있어. 고탄다는 수화기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능변 이상의 조용한 침묵이었다. 짝사랑 그 영화 속 아저씨 친구가 그 여자를 죽였어요. 유키가 계속 말했다. 정말이에요. 이상한 얘기지만 범죄 같은 느낌이 들지는 않았어요. 마치 의식 같아요. 나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마세라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광경을 그려 보고 있었다. 창문 틈으로 물이 스며들어 호흡을 할 수 없게 되는 그런 광경을. 고탄다는 그런 자기 파괴의 가능성을 가지고 유희함으로써 가까스로 자신을 현실 세계와 결부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읽은 과학책 생각이 났다. 만일 마찰이 없으면... 하고 책에는 쓰여 있었다. 자전의 원심력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것이 우주로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나는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마키무라 히라코에게 유키와 함께 하와이에 다녀와도 괜찮겠는지 물어보았다. 바라는 바라고 그는 말했다.

눈 치우기를 하는 노동자에게도 휴가는 필요해. 경찰이 괴롭히지도 않을 테고. 자네가 와이키키 해변에서 뒹굴고 있을 동안, 나는 치과의사 흉내를 내면서 빚을 갚고 있을 거야.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인생이 있지라고 나는 말했다. 사람마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Different strokes for different folks. 미안하지만, 괜찮다면 자네의 스바루를 얼마 동안 빌려주지 않겠나? 대신 마세라티를 두고 갈 테니까. 실은 아내와 몰래 만나는데 마세라티를 타고 가면 남의 눈에 띄거든.

점을 따라 선을 그어 갔더니, 이렇게 되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와 버렸다. 오후의 깊은 침묵. 창밖에는 강한 빛의 입자들이 티끌처럼 떠돌며, 원인遠人의 두개골 모양을 한 흰 구름은 아직도 아까와 같은 모습으로 수평선 위에 떠 있었다. 나는 능숙하게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해변에 엎드려 있는 유키는 어른스러워 보였지만. 목덜미만은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린애 다움이 남아 있었다. 여자의 목덜미는 나이테처럼 차례로 나이를 먹어 간다.

'아메'에 대해 '딕 노스'가 말했다. "천재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은, 천재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해야겠죠.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혹독한 체험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자아를 바늘처럼 찌릅니다." 이상한 가족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우주 가족. 행동파 작가와 천재 여류 사진작가, 영매 같은 소녀와 게이 서생과 시인인 보이프렌드"외팔이 서퍼는 몇 명 있어요." 하고 딕 노스는 말을 계속했다. "노를 움직이는 작업을 발로 하는 거예요.". 환각을 일으킬듯한 확대 가족이다.

준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분이 돈을 치렀어요. 일본에서. 당신을 위해. 이게 그거 말하는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손목에 핑크색의 리본을 감고 있는 것이다. 아마 마키무라는 내게 여자를 안겨 주면 유키가 안전하리라고 생각했으리라. 달리 말할 방법도 없었다. 3회분. 틀림없이 마키무라는 내 몸에서 정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뽑아내려는 것이겠지. 고도 자본주의는 모든 틈새로부터 상품을 발굴해 낸다. 환상, 이것이 키워드다. 매춘이든, 인신매매든, 계층 간의 차별이든, 개인 공격이든, 도착적 성욕이든, 무엇이든 간에 예쁘게 포장하여 예쁜 포장을 씌우면 훌륭한 상품이 되는 것이다. You can rely on me!

내가 보기에, 자네는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고 고탄다는 말했다. 어느 부분에선 그래. 하지만 결코 행복한 건 아니야. 내게도 어떤 종류의 것이 결여되어 있어. 그래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그저 댄스 스텝을 계속 밟고 있을 뿐이야. 몸이 스텝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계속 춤을 출 수는 있거든. 개중에는 감탄해 주는 사람도 있지.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나는 완전한 제로야. 이제 콜걸이 세 명으로 불어났다. 키키와 메이와 준. 모두 사라졌다. 한 명은 살해되고, 두 명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모두들 마치 벽에 흡수된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그리고 모두들 각기 나와 관련되어 있다.

흠뻑 땀에 젖어 깨어났지만 꿈은 아니다. 내가 그것을 본 것을 유키도 꿈이 아님을 알고 있다. 풍화한 여섯 구의 백골.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왼팔이 없는 백골은 딕 노스의 것일까? 그러면 나머지 다섯 구는 누구의 것인가? 키키는 내게 대체 무엇을 전달하려 하고 있는가? 문제는 키키다. 키키가 모든 일의 중심에 있다. 그녀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내게 접촉을 하려 하고 있다. 삿포로의 영화관에서 호놀룰루의 다운타운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그림자처럼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고 있다.

그녀가 나의 질투를 간파할까 두려웠다. "이봐요, 당신은 수영 교실에 질투를 느끼고 있는 거죠? 남자로서 가장 볼품없어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수영 교실에 대한 망상이 점점 확대되어 갔다. 수영 교사는 물론 고탄다였다. 그는 말한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자고 싶은 상대는 아내뿐이야" 그리고 그는 '유미요시'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발기한 페니스를 잡게 한다. 물속에서 발기한 페니스. 마치 산호 같다. '유미요시'는 아주 황홀해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순식간에 유미요시가 키키로 변하곤 했다.

나는 새벽녘에 키키의 꿈을 꾸었다. "그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을까? 여섯 구의 백골". "당신 자신이에요"라고 키키는 말했다. 여기는 당신의 방이에요. 여기에 있는 건 모두 당신 자신이에요. 내 방?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돌핀 호텔은? 거기는 뭐지? "거기도 당신 방이에요. 물론 거기에는 양사나이가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는 내가 있고. 당신은 당신의 그림자를 파트너 삼아 춤을 추고 있었던 거예요. 나는 당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이 눈물을 흘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소리 내어 우는 거예요." 나는 그녀가 빨려 들어간 부근의 벽을 향해 걸어갔다. 마침내 몸이 벽에 부딪혔지만 아무런 충격도 없었다. 내 몸은 불투명한 공기 층을 빠져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 방의 침대로 돌아왔다. 이건 꿈일까? 꿈일 것이다, 아마. 하지만 누가 그걸 알겠는가?

유미요시가 내 몸을 흔들어 일으켰다. 그 어둠이 또 왔어요 하고 내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오른쪽 복도 끝 틈새로부터 빛이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어둠이 교활한 물처럼 소리도 없이 우리를 에워쌌다. 방 안의 어디에도 양사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도대체 누가 있었던 거죠? 하고 유미요시가 물었다. 그리고 그 방에 있던 백골은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그것은 양사나이의 뼈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 백골은 나 자신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그 멀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내 죽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굴 속에 모피를 덮어쓴 양이 숨어 있었다.

키키가 그 죽음의 방 벽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미요시의 몸은 마치 물기를 머금은 모래에 삼켜지듯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유미요시!"라고 나는 한 번 더 외쳤다. 벽 너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정말 간단해요, 벽을 빠져나오면 금방 이쪽으로 올 수 있어요." 키키가 벽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벽을 빠져나갔다.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불투명한 공기의 층. 시간이 흔들리고, 연속성이 구부러지고, 중력이 흔들렸다. 그것은 내 유전자다. 나는 육체 속에서 진화의 기운을 느꼈다. 나는 복잡하게 뒤얽힌 자신의 DNA를 뛰어넘었다. 바다는 거대한 사념인데, 그 표면으로 소리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굴 없는 사람들이 파도가 밀어닥치는 물가에 서서 앞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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