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에서 바람난 가족까지
2005.3 황혜진 지음. <1970년대 유신체제기의 한국 영화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목원대 영화영상학부 조교수.
영화로 보는 불륜의 사회학 -자유부인에서 바람난 가족까지- 性에 관한 한 그리스 신화로부터 프로이트 심리분석까지 기록으로 전하는 인류유산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는 거대담론이다. 영상을 전공한 저자는 불륜이라고 매도하는 사회현상의 단면을 영화를 통해 정리하고자 애썼던 듯하다. 시대발전에 따라 여성의 참정권 확대처럼 성에 관하여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자아의 발견이 여성의 성적지위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이름 붙이기 쉬운 대로 '불륜'?을 소재로 선정한 7편의 영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작가의 카리스마로 읽게 된다. 출판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영화로서 유사한 영화도 많을 터이다. 작가의 시선이 보고 있는 연장선상에서 후속편의 책이 발간되었으면 싶다.
목차
03 바람기, 가족해체 범죄의 피고?
11 바람난 사모님의 원조 : <자유부인>
21 자아를 찾는 실패한 여정 : <애마부인>
33 애매한 양다리 걸치기 :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42 우울한, 그러나 참을 수없이 유혹적인 : <정사>
53 마녀사냥, 거세된 남성의 좌절에 대한 처방 : <해피엔드>
64 이혼연습, 커플 바꿔보기 : <주노명베이커리>
73 정직한 오르가슴은 무죄이자 우리의 희망!: <바람난 가족>
85 새로운 남녀관계, 소통의 사랑을 위하여
정비석 원작의 1954년작 <자유부인>은 6.25 전쟁의 휴전이 막 이루어진 한국사회에서 남편 태연의 생존과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가 선영에게는 기득권이었을까. 여성의 자아구성이라는 과제가 실패하는 과도기적 억압의 산물이었다.
<애마부인>에서 애마의 남편은 외도에서만 흥분을 느끼는 남성 섹슈얼리티를 보여준다. 성 역할분리에 기초한 서구 근대화과정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방황한다.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의 무력감에 남성 속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스스로를 가둔다.
1995년 김동빈감독의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최진실은 가정밖의 공간에서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유부녀의 연애는 성적탐닉과 일방적 피해자로 여기는 맞바람에서가 아니라 관계 그 자체의 향락을 통해 자아를 보살피는 것으로 재정의 된다. 은재-진우커플과 대조되는 윤수-창세커플은 몸으로 시작해서 영혼의 동반자로 관계의 진전을 보여준다. 결혼과 불륜사이의 양다리걸치기 같은 한국사회의 모호한 윤리의식의 단면을 드러낸다.
1998년 이재용감독의 <정사>. 서른아홉의 서현은 동생 지현의 약혼자인 스물여덟의 우인에게 거처를 물색하던 중이다. 금기를 깨는 불륜의 에너지는 숨길수도 없다. 어머니 없는 자리를 대신해 온 언니에게 애정과 신뢰가 극진한 동생 지현이 언니의 배신에 분노한다. 화석과 수족관이 상징하는 혈연과 가족이라는 생물학적 윤리적 가치는 산산조각 난다. 그렀더라도 정사의 엔딩장면의 유보적인 결론은 여성의 무의식적인 근심에 내재된 사려 깊은 현실인식이다.
1999 <해피엔드> 정지우감독. 옛 애인 일범과의 정사를 즐기러 온 30대 초반 최보라는 딸의 분유에 수면제를 넣었다. IMF이후 고개 숙인 남성이 사적영역으로 퇴출되면서 로맨스소설에 탐닉하는 남편 민기는 아내의 불륜에 모르는 척한다. 남녀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 여성이 출현하였다. 일범에게 뒤집어 씌운 민기의 완전범죄 살인 혐의와는 별개로 출구를 찾아 헤매는 여성의 자아가 현실과 충돌하는 지점을 포착했다.
2000년 <주노명 베이커리>. 박헌수 감독
남편 노명이 아닌 다른 남성의 시선 속에서 아직도 사랑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하는 일에 노명의 아내 정희는 눈뜨기 시작했다. 무석과 해숙 커플과의 사이에서 스와핑이 암시되며 자신의 이상화된 자아를 다른 커플의 배우자를 통해 발견한다.
2003년 <바람난 가족>. 임상수감독. 가족이란 그 구성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서적 만족을 제공하는 특별한 공동체로 정의되고, 정서적 만족이란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말했듯 집에 머무는 것을 평정, 자기에의 돌아옴이자 또는 영접, 기다림, 인간적인 맞아줌 등의 요구에 부응하는 피난처로. 돌아오듯. 자기 집에 회귀하는 것으로 느끼는데서 온 것이다. 프랑스혁명을 프로이트식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가족 로맨스의 성취로 보면서, 가부장인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공화정이라는 새아버지를 만들어냈다.
변호사 영작과 전직 무용수 호정과 입양아 수인, 실향민 아버지 창근, 어머니 병한. 낭만적 사랑이 가족의 이름으로 강화되는 대신, 가족으로 묶였기 때문에 소통의 통로를 닫는 현실이야말로 현재 한국사회가 놓인 딜레마이다. 나르시시즘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내면을 이해받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타자의 시선이라는 동력을 제공받아야 한다. 상호존중과 애정이 결핍된 가족은 그 존재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획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가족의 정의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남녀관계 불륜을 성애적 욕망의 과잉과 죄의식, 자학과 가학의 드라마로 그려왔던 과거의 관습은 1990년대 영화에서 일정하게 청산된다. 바람기는 이제 현실도피적 쾌락이 아닌 일상적 자아와 연관되면서 여성의 정체감 문제와 결합되었다. 이제 타자를 식민화하지 않고 평등한 관계로 바라보는 시선이 불륜의 사회학을 대변하던 영화에서 더욱 진정한 사랑과 소통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한 때 ‘대한민국은 연애공화국’이라는 시사주간지의 특집기사로 센세이션을 불러오기도 하였으니 중요한 주제임은 변함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