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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시간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by 김현아 교수

by 이용만

-- 이 글에서 연명치료의향서를 정신이 있을 때 작성해두어야 한다는 현실을 말하고자 한다. 논란의 와중에도 자매님은 의식 없는 남편의 손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새벽미사 때 1년 반의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신 스테파노형제 연미사를 100일간 듣게 될 것이라 했다 --


죽음을 배우는--시간

자연은 싸워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다. 우리 삶의 어떤 순간에도 죽음은 찾아온다는 것, 그것이 김현아 교수의 저서 <죽음을 배우는--시간>의 가장 첫 메시지이다. 서울대 의대에서 혈액종양부터 시작하였고, 현재 한림대에서 자가면역질환의 류마티스 내과를 맡고 있다. 후학들을 위해 의료인문학을 강의하기도 한다. 저자는 어떻게 죽음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천착하며 의료인으로서 소회를 책으로 엮었다. 인간 윤리와 의료기술의 발전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의료시스템 안에서 '죽음의 비즈니스'에 엮여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중심으로 임종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솔직하고 용기 있게 서술하였다. 암으로 선고받는 일, 각종 급성, 만성 질환들, 재앙 같은 사고사, 자연사 또는 자살등 누구도 단언하기 어려운 단 한 번의 죽음을 미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심장과 뇌동맥도 부실하고 혈압약과 고지혈약을 상시 복용하고 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이 있는 데다 건강진단에서 뜻밖의 우려들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을지 알 수가 없다. 임종을 준비하는 최종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예고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과정은 준비한 만큼 덜 허무한 일인 듯싶다.

대표적인 문제는 연명치료와 관련이 깊다. 인공호흡, 심폐소생의 연명치료는 않겠다는 동의를 요하지만 환자는 물론 보호자도 동의할 처지가 되지 못하는 게 큰 문제이다. 의식불명이거나 희미해진 때, 심신이 박약해져 판단조차 불가능한 때,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문 같은 때, 과연 임시방편이 되어줄 최신 의료장비를 옆에 두고 말장난을 하고 있을 수 없는 냉혹한 현장을 함께 보아야 한다. 부모님과 장인장모를 보내드린 과정마저 희미해져 가는 이때 아내와 자식들에게 비칠 나의 임종 모습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서술한 저자의 글에서, 전문 의료용어 외에 '배달'같은 의료인의 은어로 삶과 죽음, 체면과 형식, 이상과 실제등 인간 심리의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어보는 기분도 든다. 호흡이 곤란한 환자를 위한 수동식 산소 공급 장치. 기도삽관을 하고 호흡을 백으로 짜 넣는 앰부배깅(AMBU bagging), 당시 속어로 '배달'이라고 불렀다. 인턴이 주로 맡는다. '사망 집담회'란 의료기관에서 사망한 환자 예(例)를 두고 의료진들이 사망을 피하거나 늦출 수 없었는지 토론하는 행사이고, 완전 관해(Complete Remission)란 암 치료 판정 기준을 나타내는 용어의 하나로, 암 치료 후 검사에서 암이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암세포 하나라도 찾아낼 수 없을 때 치료되었다고 판정한다고? 암세포는 누구에게나 잠복해 있다가 면역이 떨어지면 나타난다고 하던데 의사와 과학자들은 '완전관해'여만 완치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보다. 침생검을 이곳저곳 찔러보고 운 좋게도? 발견되지 않으면 암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 아니면 도'인가? 역시 완전(完全)이란 말도 무섭다.

사례 3건을 통해 본 젊은이들의 돌발적 죽음은 몇 배 더 안타깝다. 중환자실에서 분투하는 환자분들과 임종을 바라보는 의료인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대학 1학년 때 목에 멍울이 생겨 입원을 했고 임파선에서 암세포가 나왔다.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원인 불명 전이암이었다. 암이 생긴 원발 장기를 찾기 위해 무지막지한 검사들을 동원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채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10여 차례에 걸친 고통스러운 항암치료가 끝나고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전**씨는 이유 없이 열이 난다며 다시 병원을 찾았다. CT 촬영에서는 정상 소견이었으나 골수 검사실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암세포가 나왔다고 했다. 항암 치료의 가장 무서운 부작용은 감염증이다. 항암치료 후 고열이 발생하고 폐에 아스페르길루스라고 하는 기회 감염성 진균증이 생겼다. 항진균제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아주 고약한 곰팡이균이다. 40도가 넘게 치솟는 열에 고통받으며 환자는 객혈을 시작했다. 진균은 입속까지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고 병실에는 악취가 진동을 했다.

자가 면역질환의 대표적인 예가 전신성홍반성낭창(루푸스) 환자들이다. 21세 김** 씨의 몸살기가 희귀병 진단을 받게 되었다. 1년에 걸친 스테로이드 치료로 환자의 예쁜 얼굴은 달덩이처럼 둥그렇게 변했다. 스테로이드 감량에 실패하고 체중이 8kg이나 늘어난 환자에게 마지막 불평을 들었다. "대체 언제까지 약을 이렇게 많이 먹어야 하는 건가요?" 그녀는 그날 외래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목을 매 자살했다. 환자의 절반 이상이 겪는다는 우울증의 심각성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42세 이** 여성은 미열과 숨이 차서 호흡기내과에 입원했다. 면역검사로 자가면역질환의심되어 전과되어 왔다. 고열에 스테로이드 증량 불가피하였고 심정지 심폐소생박동 인공호흡기치료 중 cpk(크레아틴 포스포키나제) 수치 급상승은 심장근육이 녹는다는 의미였다. 고가의 면역글로불린 등이 투여되었어도 분당 20회로 떨어진 심장박동을 보여, 에크모(체외에서 혈액에 산소를 넣고 돌리는 심장과 폐기능 대체 장치)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심장이 멈추었다.

중환자실은 일시적인 문제로 생명이 위독해진 환자들을 위해 존재하지만, 임종을 맞기 위한 장소로 급속히 변질되어가고 있다. 현대의료에서 누구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하는 거예요. 노화조차도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치부되고 있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노화를 죽음과 노화를 병원에 일로 만들고 가족들이 그 시간에 노동을 하고 재화를 축적하도록 작동해 왔고요. 의료인문학 수업을 맡은 저자 김현아교수의 강의노트를 발췌하여 옮긴다.

볼프 에를브루흐가 쓴 <내가 함께 있을게>라는 그림책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오리는 항상 누군가가 자기를 따라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느 날 그것을 발견하고 너는 누구니 하고 묻습니다. 날 마침내 발견했구나. 나는 죽음이야. 그동안 나는 혹시나 해서 항상 네 곁에 있었는데... 혹시나 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죽음을 발견한 오리는 곧 그와 친구가 됩니다. 같이 헤엄도 치고 낮잠을 자기도 하지요. 둘은 긴 시간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른 오리들이 그러는데 우리가 죽으면 천사가 되어 구름 위로 가서 땅을 내려다본대"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날개가 있잖아. 그런데 나쁜 짓을 많이 한 오리는 지옥으로 가서 오리구이가 된다고도 하던데?" 죽음은 어깨를 으쓱하며 "누가 알겠어?"라고 답합니다. 오리는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건지는 너도 모르는 거구나" 하고 실망합니다. 어느 눈 내리는 날 오리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됩니다. 땅에 가만히 누워 있는 오리를 죽음은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어서 오리의 헝클어진 깃털 몇 가닥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오리의 시신을 안아 강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튤립 한송이를 오리 가슴에 얹고 죽은 오리를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죽음은 강물에 흘러가는 오리를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저자는 죽음은 항상 우리를 따라다니고 우리 곁에 있는 일상적인 것이라는,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아름답고 뭉클하게 묘사하지요. 저자는 의료인답게 화가들의 임종관찾아내었다. 밀레의 <죽음과 나무꾼 1859년> 그림. 피터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 1562년 경>. 에밀 놀데의 <환자, 의사, 죽음 그리고 악마 1911년>이 죽음에 대한 시각을 시대에 따라 표현한 그림으로 소개되고 있다.


100세 시대. 이제는 '노화에 의한 자연사'라는 만고의 진리가 무색한 시대가 되었다. 결국 쇠약해진 노인이 사망하는 맨 마지막 단계 즉 [근력 약화에 의한 활동력 저하—> 식이 섭취 부진—> 영양실조 및 탈수에 의한 장기 기능 저하—> 인두근약화에 의한 흡인과 폐렴—> 사망]이라는 과정이 모두 처치가 가능한 질환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사망 진단서에는 더 이상 노환이 사망 원인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신부전, 신부전, 폐렴, 감염증... 모든 사망에는 의학적인 진단명이 붙어야 한다. 병원은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접촉조차 금지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임종 치료의 두 갈래길이 연명치료와 완화 치료이다. 완화의료는 죽음의 각 단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환자가 통증이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것을 최소화하는 치료를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기관지 흡인의 경우 완화의료 전문의들은 흡인기로 구강과 비강 및 인후부의 분비물을 시도 때도 없이 흡인하면 큰 효과도 없을뿐더러 요란한 소리로 인해 오히려 환자와 주변 가족들에게 더 큰 불안감을 줌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보다는 히우신(자율신경 조절제로 흔히 멀미와 구토 치료에 사용되며 분비물을 줄이는 작용을 한다) 같은 약물을 사용하여 부교감 신경 반응을 감소시키고 기도 분비물을 줄이는 방법을 권한다. 마찬가지로 호흡곤란이 왔을 때도 모르핀이나 진정제를 사용하여 환자를 안정시키는 것을 권장한다. 다만 진정제나 모르핀은 호흡 중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임종을 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와 완화 치료 전문의 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장 평화로운 임종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1 불안함에서 벗어날 것. 2 혼자서 임종하지 않을 것 3. 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 완화 치료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죽음은 스님들에 의해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대통령 염장이'라고 불리는 유재철 연화회 대표가 말했다. "팔순 할머니 염을 해 드리는데 일주일간 곡기 끊으시고 가셨어요. 대소변도 없이 너무 깔끔하셨지요. 본인이 임종 끝을 맞이하며 스스로 염습도 다 하신 겁니다. 그 할머니 같이 가고 싶네요. 제일 좋아하는 옷 입고 누우면 후손이 관뚜껑은 닫아 주겠지요."

2018년 11월 신성일이 폐암 3기 진단이 화제가 되었다. 35년 전부터 금연을 했고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식 하며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향을 피웠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폐암은 샘암, 편평 세포암, 소세포암의 세유형이 90%를 차지한다. 2002년 코미디언 이주일 씨 폐암 때도 흡연과는 연관성이 낮은 비흡연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샘암이었다. 암 환자가 흔히 찍는 양전자 방출 컴퓨터 단층 촬영 CT는 방사선 피폭량이 자연 상태 피폭량의 8년 치를 한꺼번에 맞는 수준이다. 검사하다가 암에 걸릴 가능성은 모르고, 조기 암 진단을 받을 수 있게 정밀 촬영을 해 달라고 한다니.

갑상선암은 죽을 때까지 갖고 갈 암인데 불구하고, 조기 검진 시 초음파 검사가 화근인 셈이었다. 결국 생체 검사인 침생검을 진행하고 중요한 갑상선을 제거한다. 2016년 미국 종양의약학회는 갑상선암 가운데 상대적으로 예후가 좋아 생존율이 높은 암은 종양으로 명칭을 바꾸겠다고 밝히면서 처음으로 암으로 부르던 병명을 암이 아닌 것으로 개정하게 되었다. 유사사례로 전립선암도 전립선 특이 항원을 쉽게 측정하게 되면서부터 PSA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수술을 선택하게 된다. 전립선암은 생존율 향상을 가져오지 못함에도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는 보고도 있다.

의사의 고유 행위들 중에는 시간당 수가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것들도 있지만 검사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이윤이 보장된다. 제대로 코스트 시프트가 일어나는 것이 한국 의료다. 일단 암을 진단받으면 페트-CT라고 하는 고 이윤 검사를 여러 번 할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이 아니라 조장하는 법안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애매한 상황에서는 일단 처벌을 피하기 위해 무조건 연명 치료를 시작하는 관행이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혜진 연세대학교 종양내과 교수는 "임종과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사전 연명 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가 없는 환자에게 연명 의료 의향이 없음에 동의하게 하거나 녹음기를 대고 진술을 받는다는 게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했다.

현재 모든 의료기관의 디폴트 옵션은 연명 치료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완화의료는 심각한 질환을 가진 환자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치료인 반면 호스피스는 기대여명이 6개월이 안 되는 환자에게 행하는 치료다. 호스피스 서비스의 경우 병원에 입원하는 입원형과 가정에서 돌봄을 받는 가정형 서비스로 구분된다. 중환자실에는 항생제에 저항성이 높은 극강의 병으로 우굴거린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연명 치료에 대한 의사를 따로 밝히지 않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심정지가 일어나면, 의료진은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단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이 디폴트처럼 되어 있다.

DNR(Do Not Resuscitate)는 소생시키지 말라라는 의학용어이다.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수 있어야 법적으로 DNR이 성립된다. DNR요청서에는 이를 설명한 의사 및 환자와 보호자들의 서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뉘앙스 때문에 AND(Allow Natural Death) , '자연사 허용'이라는 용어로 바꾸자는 움직임도 있다.

연령 치료에 있어 비용은 아무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연령 치료를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논의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조력 자살이 불법으로 되어 있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조 할아버지 사건은 임종 치료가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바버라는 비록 모르핀 약병을 주고 아버지가 자살을 하도록 독려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약을 단숨에 들이켜는 아버지를 그저 지켜보았다. 호스피스 간호사는 자초지종을 바버라로부터 전해 듣자마자 경찰을 불렀고 재판은 1년이 걸린 끝에 무죄로 풀려났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실현을 윤리적 행위의 목적으로 본 공리주의자들의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설계한 유명한 생각 장치인 '생존 복권'의 도입부는 이러하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서 장기를 취하면 될 것 아닌가? 희생자는 한 명이고, 우리는 두 명이다. 두 사람의 목숨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 중하지 않는가?

뇌 기능을 전부 상실한 환자들도 심장은 제일 마지막까지 뛰어요. 심장이 뛴다면 아무리 식물인간 상태여도 살아있는 거지요. 이건희 회장의 심장이 멈춰서 살린 기계 체외막형산소화장치인 에크모로 소생했지요. 그럼 그거야말로 영생이 아닌가?

2013년 구글은 켈리코라는 회사를 세워 인간불멸에 야심 차게 도전장을 던졌다. 두더지쥐 연구이다.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동아프리카에 사는 설치류로, 평균 수명이 32년이다. 다른 쥐들의 평균 수명이 3년 정도인 것에 비하면 10배 더 오래 사는 셈인데 나이를 먹어도 사망률이 일정하게 유지되어 과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사람도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이 현저하게 감소한 1950년대 이후 사망률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나이에 의존하는 사망률은 여전히 감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간의 불멸에 대한 환상은 깨졌다.

현재 인간의 최대 수명은 125세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두더지 쥐가 이런 곰페르츠의 법칙(나이를 먹음에 따라 사망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을 깰 수 있는 동물로 일약 유명해진 것이다. 이 쥐는 암에 걸리지 않고 통증도 느끼지 않으며 무산소로 18분을 버틸 수 있다. 피를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능력과 대사율과 호흡량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데 이 기능이 장수의 비결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쪽에서는 영생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를 안 낳아 문제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만약 영생이 가능하다면 새 생명이 태어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저자는 어떤 죽음을 그리고 싶은가? 우선 세 가지 사례를 보여주었다.


드라이빙 미스 노마, 91세 할머니의 버킷 리스트였다. 자궁암에 걸린 백발 할머니가 아들 부부와 함께 여행을 하며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2015년 8월 여행을 시작하고 1년 동안 미국 32개 주 75개 도시를 돌며 21,000km를 누비고 다녔다.

호주의 유명한 식물학자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2018년 4월 4일 104번째 생일이던 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나이까지 살다니 정말 유감이다. 죽고 싶다. 진짜 슬픈 것은 죽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2018년 4월 30일 구달 박사는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로 여행을 가서 죽겠다고 선언한다. 인터넷 모금으로 스위스행 편도 항공료와 여행 경비로 17,000 호주 달러가 걷혔다. 2018년 5월 10일 그는 베토벤 교향곡 <합창>을 들으며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 손으로 넴부탈이 주입되는 스위치를 누른 뒤 죽음을 맞이했다.

법정 스님은 2007년 폐암을 진단받은 후 "이 병고도 나를 찾아온 친지 중 하나"라며 병과 함께 지내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주변 사람들의 간곡한 권유로 치료를 시작했다. 미국의 MD 엔더슨 병원에서 100일 동안 방사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체중이 40kg까지 줄었다가 회복 판정을 받았으나 귀국 후 암이 척추로 전이된 사실이 확인됐다. 2010년 3월 11일 78세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임종 준비기, 임종기, 임종 후의 일련의 준비가 필요하며 추가로 세 가지를 저자는 덧붙인다.

첫 번째, 재산을 정리한다.

두 번째, 사전 연령 의료 의향서 작성 후에도 다양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에는 내가 어떤 경우에는 병원에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결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세 번째, 죽음의 장소를 결정한다. 집에서 죽는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1. 노인 장기 요양보험에 1등급을 받는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24시간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1등급으로 정의가 된다. 우선 월 15만 원 정도를 내면 1일 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다. 2. 간병인을 고용한다. 재택 간병인에게 월 460만 원의 비용이 지불하고 있었다. 3. 환자용 침대와 물품을 대여한다. 식이 어느 시점이 되면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 된다. 유동식 형태의 영양공급용으로 코로 삽입하는 레빈튜브는 환자에게 결코 편한 방법이 아니다. 4. 언제 병원에 가야 할까? 사망 과정을 문제 삼을 만한 가족이 있는 경우 환자의 방해 CCTV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5 언제 가족들을 불러야 하나? 다음 증상이 생기면 환자의 상황이 임박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낮과 밤이 바뀐다. 식욕과 갈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대소변의 양이 줄어든다. 통증을 더 많이 호소한다. 혈압이나 호흡수 맥박이 평소 수준과 달라진다. 체온의 변화가 심해진다. 의식이 나빠진다. 목 뒤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사람의 몸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어서 두 가지 통증이 있으면 더 심한 통증이 덜 한 통증을 누른다.


끝으로 저자는 딸들에게 유언처럼 남긴다. 저자의 엔딩 노트이다.

항암 치료를 해도 완치 가능성이 없다면 항암치료 같은 건 받지 않을 거야. 죽을 때도 병원은 안 가. 혼자서는 바깥 외출을 못 할 거야. 그다음 단계가 침대 밖을 못 나가게 되는 건데, 밥을 못 먹는다고 영양제 같은 걸 달아선 안 돼. 가장 큰 문제는 엄마가 이런 결정들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먼저 찾아오는 거야. 엄마는 죽음보다 치매가 훨씬 더 두려워. 스틸 앨리스( 2014년) 영화는 엄마 나이 정도의 자기 분야의 뚜렷한 업적을 남기며 한창 일을 하던 대학 교수가 치매에 걸리는 이야기야. 주인공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자신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 뒷날 증상이 심해져서 일상생활도 못 하게 된 그녀는 영상 편지를 보게 되는데, 건강했던 시절의 자신이 나와서 이렇게 말을 하지. “앨리스, 지금쯤이면 상태가 아주 나빠졌겠지. 파란 전등 아래 서랍 맨 뒤에 있는 약병을 꺼내서 그 안에든 것을 모두 먹어. 혼자 있을 때 해야 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돼.” 하지만 약병을 꺼내 든 순간 간병인이 들어오는 바람에 계획은 실패해. 사랑하는 딸들아 엄마가 너희를 못 알아보는 그날부터, 엄마는 죽음을 준비할 거야. 그리고 그런 엄마의 뜻에 절대로 반해서는 안 돼. 엄마의 뜻을 잘 이해하고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죽음이 있기에 삶도 있는 것이고 죽음은 삶과 결국 같은 것이란다.

https://youtu.be/xlTU6a4NLIk?si=TcgrcJjoVu8z9I--

내가 함께 있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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