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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부 4권

by 이용만

토지 1부 4권 목차

제4편 역병과 흉년

16장 정이 지나쳐도 미치는가/17장 어리석은 반골/ 18장 우리 땅의 남의 전쟁/19장 친일파/ 20장 떠나는 사람들

제5편 떠나는 자, 남는 자

1장 황천의 삼도천/2장 꽃신/3장 농발 없는 장롱/4장 난행/5장 과객/6장 을사보호조약/7장 음지에서 햇빛/8장 봄 풀과 겨울나무/9장 별당아씨의 죽음/10장 산속의 동학 장수/11장 구천이 혹은 환이/12장 오막살이의 소리꾼/13장 밤에 우는 여자/14장 돌아온 윤보/15장 평사리 의거/ 16장 악의 생리/ 17장 가냘픈 희망이 그네를 띤다/18장 고국산천을 버리는 사람들


저자 박경리는 토지를 완간하기까지 26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문학지 등에 연재해 왔다. 마감이라는 인위적인 장치가 없었더라면 과연 20권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마무리짓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을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금년 봄부터 접하는 토지 제1부 4권까지로도 저자의 가슴속에서 그의 구상은 얼마나 절실했으며 단단하고 치밀했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눈에 잡혔다. 5,6 군데 이상의 연재처를 마련한 일도, 중단 없던 필치도 초인적이다. 드라마와 영화로도 유명했는데, 이제야 읽고 감동하는지 부끄럽고 송구하기까지 하다. 완간 기념 10주년에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래- 4권 본문 그대로 발췌 인용함

조선 500년 동안 씨 뿌려놓은 유교 사상은 끈질긴 덩굴이며 무수한 열매인 것이다. 도리(道理)야말로 생활의 규범이었다. 무자비한 수탈 속에서 가난도 이별도 견디어야만 하고 도리를 준열한 계율로 삼아온, 이 자각 (自覺) 없이 고행해 온 무리가 조선의 백성이요, 수구파의 넓은 들판이다. 이 공자의 서자들이 지금 도도히 흘러 들어오는 약육강식 무리를 맞이하는데 과연 무엇으로, 사람의 도리로 대적한다는 말인가. 망국의 정치와 외세에 떠밀려가도 시절의 청춘들은 제각각 사랑의 애증으로 맞물려 흘러가는 수밖에 없다. 난행도 모략도 배신도 죽음의 덫에 들어앉기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어린아이 소리처럼 재재거렸다.

강물을 물들여놓고 해는 떨어졌다. 숲에서 시작한 어둠은 절간 뜨락에 서서히 밀려 들어왔다. 사방은 본시의 적막한 장소로 돌아가고 대부분 재꾼들도 돌아갔다. 먼 곳에서 온 몇몇 사람과 함께 월선이는 절에 남았다. 어둠이 오기 전에 달이 떴다. 사라져야 할 밝음과 나타난 달빛이 서로 겨루듯 잠시 사방은 옅은 회갈색으로 흐리더니 여광은 아주 자취를 감춰 버리고 다른 산 허리에서 솟아올랐다. 보름달은 은가루 같은 보송한 빛을 뿌린다. 부엉이 울음이 들려온다. 처창한 적막은 저승일까 이승일까. 절간 행랑 툇마루에 걸터앉은 월선은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물 앞에 다시 두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혼자다. 삼수는 허리춤에서 수건을 뽑아 들고 수수밭을 나서며 민첩하게 마을길에 시선을 준 뒤, 발소리를 죽이고 두리 뒤편에서 접근해 간다. 인기척에 두리가 돌아보는 순간 덤벼든 삼수는 한 팔을 뒤에서 감아 가슴팍을 안고 한 손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고함을 칠 틈도 없다. 수수밭까지 끌고 온 삼수는 밭고랑에다 계집애를 밀어뜨리고 입에 물린 수건을 더욱 깊게 쑤셔 박는다. 버둥거리는 다리를 무릎으로 짓누르며 허리춤에서 풀어낸 허리끈으로 허공을 잡는 계집아이의 두 팔을 겨드랑이에 바싹 붙여서, 바로 어제 시체의 염을 했을 때처럼 묶는다. 키 큰 수숫대에 가려진 밭고랑은 병풍을 둘러놓은 듯 현장을 가려 준다. 바람이 불어서 서걱서걱 잎이 부딪는 소리는 계집아이의 몸부림과 삼수가 토해내는 거친 숨결을 막아준다.

낫 도끼 쇠스랑 대창 등 각기 연장을 들고 최참판댁을 둘러싼 마을 장정들은 삼수가 열어 주는 대문 안으로 왈칵 쏠리며 들이닥쳤다. 한 패거리는 도망치려는 하인들 계집종들을 모조리 도장에 가두고 지 서방만을 끌어내어 뒤꼍으로 끌고 가 대창으로 찔러 죽였다. 하지만 친일파 조준구는 찾아낼 수 없었다. 한편에서는 미리 끌어다 놓은 소달구지 다섯 틀에 소며 말이며 밖으로 끌어내어 곡식 피륙 온갖 물품 패물 은전 지폐, 닥치는 대로 날라다 싣는 판이었다. 윤보와 길상은 외부로 연락을 끊어 짐이 빠져나갈 때까지 최참판댁에 잔류한 뒤 떠났다.

드디어 그날 봉순이는 저녁때 무심하게 집을 나가 가마를 타고 구례 쪽을 향했고, 그날 새벽녘에 길상과 월선에 의해 서희는 육로로 읍내 이부사 댁에까지 이르렀다. 5월 16일 일행은 하동을 떠나서 부산에 닿았다. 배편을 이용해 간도로 떠나기로 객줏집에서 하루를 더 기다렸으나, 애기씨 서희 추격을 회피하는 작전을 무사히 끝낸 봉순은 길상이 염려한 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https://youtu.be/dqMYlinlD4A?si=hmgaaZQl5Z4eXiXI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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