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노벨문학상인 존 스타인벡의『에덴의 동쪽』을 다시 찾는다. 1955년 엘리아 카잔 감독이 제임스 딘을 캐스팅해 영화로 만들어 유명해졌다. 10대 때 본 옛 영화이어서인지 스토리보다 제임스 딘만 기억한다.『이유 없는 반항』과『자이언트』에서 묘한 눈빛의 명연기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그가 먼저 떠오르는 탓이리라.
여배우 피어 안젤리와의 슬픈 사랑도 안타깝다. 그녀는 어머니의 반대로 가수 빅 데이몬과 결혼하지만 마음속의 사랑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빅 데이몬이 제임스 딘을 찾아와 아내를 잊어달라는 말 때문이었을까? 촬영장을 빠져나온 제임스 딘은 안갯속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죽은 제임스 딘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알 수 없다. 피어 안젤리는 39세에 자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 내재된 갈등을 연기한 제임스 딘과 피어 안젤리는 그렇게 유명을 달리했다.
존 스타인벡은 자신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의 셀리너스를 배경으로 트라스크와 해밀턴 두 가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반부에서는 선조들의 서부 개척시대의 이주와 정착의 삶을 다룬다. 영화에서는 책의 후반부만을 다루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던 시대를 배경에 두고 있다. 사랑과 미움, 질투와 복수, 애증과 잔인함 등이 선과 악으로 짜인 그물망 안에서 엮인다. 주인공들의 이름이 창세기의 카인과 아벨의 이름과 오버랩된다. 선과 악은 타고나는가? 선택할 수 있는가? 과거에도 물었고 현재에도 묻고 있다.
영화에서는 생략된 부분이 책의 내용을 더욱 선명하게 하기도 한다.
아담 트러스트(레이먼드 메세이 粉)의 부인이었던 캐시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바라본다. 캐시(조 밴플리트)는 등교를 거부하다 부모로부터 꾸중을 듣는다. 반성하는 척 때를 기다려 집에 불을 질렀고 부모는 불에 타 죽었다. 이웃 마을로 달아난 캐시는 순박한 아담의 아내가 되어 쌍둥이 형제 아론과 칼을 낳았다. 만물박사인 이웃 해밀턴이 그녀의 해산을 도울 때 캐시는 해밀턴의 팔을 물 정도로 기이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농장 생활과 청교도적인 아담을 못 견뎌하며 그에게 총을 쏴 상해를 입히고 달아났다. 두 아들마저 버리고 매춘부가 되어서도 캐시는 당당했다.
캐시역의 조 밴플리트는 증오의 화신을 생생하게 연기하여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캐시가 케이트로 이름을 바꿔 산 넘어 몬테레이에서 매춘과 도박장을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은둔자 아담은 해밀턴으로부터 그 사실을 듣고 담담하게 캐시를 찾아간다. 캐시는 여전히 아담을 비웃으며 증오한다. 캐시는 총을 테이블에 꺼내놓고는 종이로 가렸다. 아담은 아론과 칼마저 자신의 이복동생인 챨스의 아들이라고 내뱉는 캐시를 단념하고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는다. 그는 채소를 냉동하여 동부 뉴욕으로 수송하는 사업을 벌였으나 실패한다.
말썽만 피우는 칼(제임스 딘)은 술집을 드나들며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 이야기를 듣는다. 칼은 어머니가 그리웠다. 그리고 왜 아버지에게 총을 쏘고 달아났는지 궁금했다. 칼은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외면한다. 캐시는 모든 것을 증오한다. 칼은 자신이 악한 것은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모범생인 형 아론과는 전혀 달랐다.
칼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를 만회해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사랑을 얻기를 갈망한다. 칼은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 전투식량으로서 콩 선물(先物) 거래가 돈을 벌 수 있음을 안다. 캐시는 칼이 자신을 닮았음을 알고 5천 달러를 내준다. 투자에 성공한 칼은 번 돈을 모두 아버지에게 생일선물로 드리며 사랑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쟁으로 얻은 이익이라며 칼을 내친다. 존경받는 징병 위원회 일을 한다고 자부하던 아버지다. 큰 아들 아론이 에브라(줄리 해리스)와 약혼한 소식에만 기뻐한다.
칼은 아버지가 극도로 미웠고 복수를 결심한다. 아버지와 형에게서 그들이 못 견뎌하는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아론이 좌절과 분노로 미쳐 날뛰도록 만들고 싶었다. 칼은 아론에게 어머니를 만나 진실과 마주할 것을 강요한다. 이 일은 캐시도 두려워했던 일이었다. 아버지를 빼닮은 아론을 만나게 되자 캐시는 칼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감정에 괴로워한다. 결국 캐시는 오래전부터 죽을 결심을 한 듯 준비했던 독극물로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모든 유산은 아론에게만 남긴다.
아론은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알고 충격을 견딜 수 없었다. 아론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미친 듯 전쟁터로 향한다. 아버지는 만류하러 기차역으로 달렸다. 플랫폼을 떠나는 자원입대 열차 차창에서 아론은 아버지를 보았다. 아론은 머리로 유리창을 깨어 부수며 아버지를 경멸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 아담마저 뇌일혈로 쓰러졌다. 아론은 입대하고 곧 전사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닥친다는 말 그대로였다. 칼은 죄의식에 빠지고 멀리 떠나려 한다. 영화에서는 에브라를 통해 병상의 아담에게 칼을 용서하기를 간청한다. 아버지의 사랑만이 죄의식에 사로잡힌 칼을 구할 수 있다고. 마지막 기운을 쓰며 아담은 칼의 간호를 받겠다며 속삭였다. 비로소 칼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마음을 열고 영화는 막이 내린다.
어린 시절 형제들과 함께 한 놀이와 경쟁들을 떠올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형제들과 관계도 소원해져 간다. 가정을 꾸린 자녀들 간에 투닥거리던 갈등과 부부간의 애증도 어찌할 수 없다. 손주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분주했던 나의 지난날을 본다. 3대 이상의 이야기들을 각 개인은 어떻게 기억할까. 아무튼 살아있는 삶 속에서는 갈등과 협력, 미움과 사랑이 계속된다. 삶의 끝에 가서야 한 인간이 선이었는가 악이었는가로 대별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구약의 창세기에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면서 '인간의 원죄'를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동생 칼이 아론을 죽음으로 몰았다. 소설 속 장치로 반대적 역할 설정을 한 것이다. 어쩌면 카인과 아벨, 선과 악은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동전의 양면이다. 저자는 인간 본성은 어찌할 수 없다 하더라도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게 아닌가. 제임스와 피어리처럼 재능 있고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삶에서조차 내면의 갈등은 한없이 깊고 넓어 보였다. 제임스 딘의 눈빛만을 기억하던 시절, 영화를 추억하던 소년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