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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녹음한 책 기증하기 1

by 이용만

낭독을 전문 성우로부터 배울 기회가 눈에 띄었다. 도곡1동 정보도서관의 6주간 낭독교육 프로그램이다. 제대로 낭독을 배우고 봉사할 수 있기를 열망하는 분들이 모였다. 시각장애인에게 우리들의 목소리로 녹음된 동화를 전해주는 일이 1차 목표이다. 목소리로 봉사하는 이야기 할머니가 되는 일이다.

연습을 거친 수료작품을 장애인단체에 기증한단다. 전문성우의 지도를 받는 것도 좋은 기회요, 봉사활동도 될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AI를 활용하여 자신의 목소리로 글을 읽어내는 기술도 있다니 활용해보고 싶던 차였다. 글쓰기앱인 브런치에 올린 나의 글조차 다시 읽기는 쉽지 않다. 시력이 떨어지고 백내장끼가 있는 눈으로 각도를 조절해 가며 책 읽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냥 누가 읽어주면 좋을 때도 점점 늘어날게 뻔하다. 완전 기계음성인 Talk Free앱에 복붙(복사 붙여 넣기)해서 들어본 적도 있었다. 무감동의 활자 읽기에 곧 싫증이 났더랬다. 병상에서 듣게 된 <불편한 편의점>은 오디오로 읽은 나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었다. 훌륭한 성우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주인공을 보이는 얼굴로 만들어 낸다. 장애인이 따로 없지 않은가. 나 자신을 위해서도 써두었던 글을 육성으로 듣고 싶다.

낭독의 주체는 청중이다. 음식도 먹는 사람이 주체이듯 낭독은 듣는 사람 위주로 해야 한다, 십수 년간을 낭독 봉사하시는 전문성우 선생님 말씀이시다.

독을 공부하는 시간은 국어시간이기도 하고 음악, 미술의 시간이기도 하다. 오독은 집중력이 떨어져 생기는 일이니 낭독하면 집중력도 좋아진다. 띄어 읽기가 글쓰기에서 띄어쓰기처럼 중요하다. 의미가 같은 한 구절은 이어 읽는 것이 좋다. 결국 국어를 잘해야 한다. 한국어는 주어보다 목적어와 서술어를 강조하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주어가 되는 구절은 이어 읽어내야 하므로 독해력이 있어야 한다. 주어 부분의 꼬리는 3도 정도만큼 약간 올다. 목적어는 밀고, 어미 서술어는 내리는 것이 듣기에 좋다.

"음파 음파"하고 수영하듯 숨을 토하며 가슴으로 낭독하자. 소리를 내는 데는 가슴 목 입에서 나는 소리가 있다. 또 성악가처럼 배에서 내는 소리도 좋다. 문어체 조사인 '의'를 구어체에서는 '에'로 발음해야 듣기에 편하다. 녹음된 수료작품을 시각장애인에게 전해주는데 활자만 읽어서는 동이 없다. 그들은 시각대신 오히려 다른 감각기관이 더욱 발달해 있다. 나를 보지 못할 거라는 안도감속에 쉽게 여겼던 시각장애자들에 대한 낭독 봉사가 180도 바뀌었다. 목소리의 얼굴을 시력이 아닌 심안으로 본다니 두려움마저 들었다. 독수업이 진전될 때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더 긴장되었다. 덜덜 떨기도 하는 목소리가 되었고, 급기야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음식이라면 '먹을만하다'처럼 낭독에서라면 '들을만하다'가 우리 낭독교육의 가이드다. 앳된 목소리는 듣기에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이 하는 낭독이 유리할 수도 있다. 인생의 경륜과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듣는 정취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아시절 복식호흡 하는 아기는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단다. 누구나 쉽게 낭독할 수 있기도 하다. 낯선 사람에게 말투로 시비 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도 낯설어하는 게 자신의 목소리 듣기이다. 복지관의 녹음 봉사 경쟁률이 높지만 강사는 부럽지 않다고 했다. 목소리 좋은 이는 쉽게 떠난다며 젊은 사람은 바빠서도 오래 하기 쉽지 않다. 노인들이 낭독봉사를 오래 하신다.

고정마이크 앞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나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대본을 읊조려 본다. 성능 좋은 마이크 앞에서 입으로 큰소리 낼 필요 없고 가슴으로 낭독하라. "나이 들고 떨릴 데도 없으실 텐데 이런 때 떨어보자." "다른 파트로 다시 해도 돼요?" "다른 거 해도 차이 나지 않아요" 15명 학생들 요구를 맞춰줄 시간여유는 없다. 꼬맹이들이 이것을 듣는다라고 생각하며, '이름 000입니다'를 넣고 녹음 큐! 녹음할 글 한 줄만 읽어봐요. 잘 들려요? 네. 자기 음성을 들으며 녹음하는 느낌이 어때요? 사투리걱정? 표준말만 하면 재미없지요. <어린 왕자>는 광주 버전, 제주 버전도 있어요. 선생님의 독백이 이어진다.

비디오와 달라서 오디오만이라면 오버해도 괜찮다. 낭독소리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오글거려도, 보이질 않아서 낭독 때는 용인되는 법이다. 낭독을 떢볶이에 비유하며 설명한다. 만들어 맛있게 먹고 싶은 떡볶이가 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게 3년쯤 되면 봉사하는 낭독을 잘 해내는 달란트도 생기더라. 할머니 학생들에게 일장연설을 마치고 첫 녹음이 시작되었다. 핀마이크는 1차 연습 녹음이다. 과자를 깨물듯 핀마이크를 입에 가깝게 대고 '그래가지구, 이래가지구' 소리에 율동을 넣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듯 읽어보자. 핀마이크와 본마이크로 녹음한 2개의 파일을 단톡방에서 들어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음 주에는 좀 더 잘할 거야, 마음은 저만치 앞서간다.


낭독교육 연습대본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지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당신을 빛나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감이다. 당당하게 미소 짓고, 초조함으로 말을 하지 않고, 걸을 때도 어깨를 펴고 활기차게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위 환경에 기죽지 않으며,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당신은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것이고 당신의 노력은 세상 속에서 당신을 빛나게 할 것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 재킷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피천득의 詩).


함부르크 대학 앞 하이네 서점을 에돌아 걸으면 허름하고 재밌는 골동품점이 나온다. 삶의 체취가 묻어나는 그곳의 골동품들은 내게 “이봐 인생을 예술품처럼 멋지게 살아봐!”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예술가로 보이는 젊은 주인은 피아노를 치고 있다. 그 곡이 듣기 좋아 “선생님이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신동 같아요”라고 칭찬하자 주인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이처럼 좋아했다.


홈쇼핑 광고 낭독 훈련도 실습했으나 쉽지 않다. 정관장 홍삼대보, 팻다운 썸머 패키지, 엑스 바이크등 3가지의 상품을 홍보하는 문구를 발성해 본다. 음메 하듯 소울음소리로 발성하면서 웃으면서 말한다. 주문 많이 들어오게. 날리는 장음으로 말하거나 느리게 말하는 것은 안 좋아. 단음이 70%. 변사의 톤도 습관일 뿐이다. 감정이 잡히면 친절한 소리가 따라 나온다지만 발음 예쁘게 할 틈도 없다. 말도 느려터진 나는 빨리 말하는 게 급선무다. 듣는 사람 생각해서 애써보자.

환경보호 홍보글도 실습한다. '북극곰의 집을 지켜주세요, 플라스틱 환경보호, 지구를 구해주세요' 3개 중 한 개를 골라 도와달라는 호소력 가득한 톤으로 낭독한다.

요즘 젊은 피디는 "일반인스럽게 해 주세요"라고 내추럴한 낭독을 원한단다. 성우가 하던 낭독도 오히려 감정이입을 살리려 연기자를 선호하는 추세이다. 오디오북 시장도 성우가 하는 것을 넘어 작가가 직접 한다. 나이 든 작가의 오디오북을 젊은 친구가 읽으면 의미가 잘 전달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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