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근처에서 아내의 우선순위가 나와 달랐다. 미사시간이 아니더라도 성모님께 안부와 기도를 먼저 드린다. 도곡동 성당은 타워팰리스 인근 고층빌딩 1.5층을 사용한다. 위층 식당에서 자칫 한눈팔면 아내를 성당에서 찾아야 할 정도지만 화를 낼 수도 없다. 이곳에는 이름난 제과점과 소호 사무실외에 한의원 헬스케어업소등도 꽤 많다. 아내와 지인들은 새벽미사를 보며, 함께 입소문으로 다니는 단골가게도 늘어난다. 젊은 할아버지도 동네 생활권의 편리함에 익숙해진다. 수술을 앞두고 황급히 면역력을 높이려 침과 뜸을 비롯해 발 케어를 자주 받는다. 이미 노인대열에 휩쓸려 흘러가는 도도한 강물에 있음을 실감한다.
성당에 잠시 다녀온다던 아내가 도로변 차 안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달려 나왔다. 2천 원이 있으면 달라길래 "없는데.. 왜?"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급히 사라졌었다. 성모상 앞에 촛불이 한 개도 켜져있지 않은 데 놀란 아내가 촛불을 봉헌하려는 것이었다. 궁금한데 아까와 다르게 아내는 느긋하다. 성모상 앞의 촛불을 제일 처음 켜면 5개의 추가 촛불이 보너스로 켜진다는 것이 부리나케 서둔 이유였다. 이만한 행운이 없다는 것이다. 리얼(real) 촛불 시절부터 한 두 개씩 봉헌하며 함께 기도를 올려왔지만, 앞장서는 이는 언제나 아내였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정도만 내게 맡겨졌다.
도곡동성당은 건물내부 2층에 있어서인가 전자촛불이다. 성냥이나 라이터 대신 센서(sensor)로 불이 켜진다. 지금도 소주컵만 한 리얼 양초로 되어있어 라이터나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는 곳도 많이 있다. 주로 실외성모상을 모신 인근에 유리창으로 여닫는 함을 비치한다. 실내공기에 좋지 않을 수도 있고 화재를 염려해서 점차 전자촛불이 유용한 지도 알 수 없다. 양초 원가 문제도 있을법하다. 간혹 양초 하나에 2000원으로 촛불을 켜기도 한다. 전자촛불이 되면서 위치 순서도 프로그래밍되고 보너스로 켜지는 일이 가능했다. 천 원에 다섯 개의 보너스촛불로 5배 은총을 더 얻으리! 마치 영성체 때 사제가 손으로 쪼갠 성체를 사제와 함께 영하는 영광처럼 흔치 않은 일이다. 특별하게 성령을 맞는 체험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아뿔싸, 아내가 다시 성당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이미 촛불이 켜져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다른 자매 한 분이 먼저 촛불을 켠 영광을 가져간 것이다. 아내의 허탈감이 얼마나 컸을까. 천 원짜리 한 장이 나의 지갑에도 없었다니... 나의 부덕의 소치, 신심의 부족 같았다.
덩달아 풀이 죽어 아내를 위로하려는데, 아내는 의외로 활기찼다. 아~ 웬일이지? 무슨 반전의 묘수가 있었던가 싶었다. 천 원짜리를 어디서 구해왔나 싶었다. 여인의 간절함은 언제나 큰 힘을 발휘하지 않던가? 아내는 차분하고 명랑하게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자매가 얼마나 간절했기에 하느님이 첫 촛불을 켜는 영광을 주셨을까' 하고 흔쾌하게 여긴 것이다. 2층성당 앞에서 엘리베이터로 7층에 올라가 뜸을 뜨고 돌아오는 길에 성당문을 열고 안부인사를 드린다. 성모상을 바라보는데 촛불 개수가 저절로 세어진다. 촛대는 17개씩 3단으로 되어 모두 51개의 촛불을 켤 수 있지만 12개가 켜져 있었다. 언제 모두 꺼질지 기다려보아야겠다.
한 주일쯤 지났을까? 월요일 새벽미사는 대천사 축일로, 아마 내 평생 최대의 잔칫날인 것 같았다. 우선 두 분 신부님이 대천사인 미카엘과 라파엘로서 지난 주일 이미 자신의 영명 축일떡도 돌렸다. 대천사이신 두 신부님이 집전하시는데, 가브리엘 천사까지 대천사 세례명을 쓰는 이들에 대한 생미사(죽은 이들을 위한 연미사와 별도로)를 봉헌하는 분들이 넘쳐나 호명하는데만 10분 정도 소요되었다. 모처럼 미카엘 대천사인 나도 호명되어 직접 듣고 있으니 보람 있는 일이었다. 건강진단에서 혹을 떼내고 겸손해지며 신심이 늘어난 결과이다. 그보다도 더 축하할 일은 마침내 오후 4시 성모님 앞에 5개의 촛불만 나란히 켜있는데 이는 곧 촛불이 동시에 꺼질 것이었다. 첫 촛불봉헌자에게 1+1 서비스 상품처럼 5개의 촛불이 켜지므로 지갑에 항상 천 원짜리 한 장은 지참하고 다니던 터였다. 절호의 기회가 왔으므로 얼른 꺼지기를 바랐다. 아내보다 더 빨리 촛불 봉헌을 할 태세였다.
초가 꺼지기만을 기다린다는 게 어쩐지 유치하고 무색했다. <십자가의 길>을 바치자는 아내의 말이 다행스럽게도 할 일이 생긴 것으로 들렸다. 텅 빈 성당에서 제1처부터 기도문을 외우며 십자가상을 깊이 묵상하였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성당에 촛불봉헌을 먼저 하게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다. 그래도 간절한 누군가에게 그 기회를 드려야 한다면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럴수록 정성을 더해 마지막 14처까지 <십자가의 길>을 진지하게 마쳤다. 성모상 앞에 이미 촛불은 모두 꺼져있었고 아내에게 1000원을 내밀었다. 아내는 자신이 준비한 천 원을 손에 쥐고도 나에게 직접 봉헌해 보라고 권한다. 지폐 끝이 함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전자촛불은 바로 커져 놀란 손으로 넣다 빼는 사이 두 개가 더 켜진다. 함에 떨어뜨리고 나니 보너스 촛불 5개와 또 다른 2개에 불이 들어와 도합 9개의 촛불이 점등되었다.
그로부터 다른 어느 날, 성당이 있는 빌딩 7층으로 뜸케어를 받으러 가는데 7,8분의 여유시간이 있다. 나의 전자출판 책인 <하모니의 리듬>을 세실리아자매님에게 전해주려는데, 잘 읽고 도움이 되길 바라며 성모님을 찾아 기도를 드린다. 아니 오후 2시 이 시간에 이런 일이 있다니. 성모상 앞에 켜져 있는 촛불이 하나도 없음을 알았다. 한 달포쯤 전 천 원짜리를 급히 찾던 아내에게 놀란 뒤로 촛불봉헌을 대비해 나는 천 원짜리 두장을 지갑에 꼭 넣어 다닌다. 성모님 봉헌촛불을 켤 기회가 왔으니 오롯이 홀로인 나에게 뜻밖에 기쁜 날이 되었다. 기도를 올리며 지폐를 살짝 넣으니 촛불 1개가 켜졌으나 서비스 촛불 5개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한데.. 하며 두세 번 지폐를 넣다 뺐다 망설이다 봉헌함에 떨어뜨렸다. 망설이던 횟수만큼 촛불이 3개가 먼저 켜진다. 그리고 1.5초 후, 중간 단 한가운데에 비로소 5개의 보너스 촛불도 불이 들어왔다. 모두 9개의 황금색 촛불로 성모님과 내가 환해졌다. 시작기도는 직장일로 고민 중인 막내를 비롯하여 손녀네 가족, 세실리아자매,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부모님 순으로 마쳤다. 7층 마사지샵에서 뜸을 뜨며 촛불봉헌이야기를 신이 나서 들려주니 다들 기뻐하였다. '요즘같이 수능(수학능력시험)이 코 앞인 시기에 은총의 촛불을 켜시다니...'라고 왁자지껄 축하를 받으며 뜸자리는 벌써 완치되어 있었다.
열기와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야 촛불 5개가 즉시 켜지지 않아 망설였던 나의 믿음이 스스로 심판받고 있었다. 지폐를 넣기가 못 미더워 망설인 삼세번 횟수가 마치 닭울기 전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 할 것이란 말이 되어 떠올랐다. 토마에게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행복하다' 하시던 말씀도 귓가에 자동으로 켜져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