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만든 영화, 내 멋대로 보다.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1959

by 새벽녘 연필소리

<네 멋대로 해라>를 관람하고 쓰다.

<네 멋대로 해라>가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개봉했다.
너무 행복했던 관람 후기.


인스타그램에서 영상으로 후기를 확인해 보세요.


한줄평

불연속의 점프컷 사이로 제멋대로 흐르는 새로운 물결(Nouvelle Vague).

지친 마지막 숨(Breathless)이 투명한 암호로 찍어낸 마침표,

'아, 으, 우 (I Love You).'



에세이 원문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만든 영화, 내 멋대로 보다.


지친 마지막 숨의 끝에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아, 으, 우.
우리 사랑은 비극적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소중해요. I, Love, You.

어떤 장르에서든, 기존의 문법과 관념을 깬 작품이라고 해서 새로운 사조(생각 사 思, 조수 조 潮)로 받아들여지고, 작품을 소비하는 향유자들의 무조건적인 환영을 받을 수는 없다. 새로운 움직임이 지지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새로운 흐름이 강력한 필요를 충족하여야 한다. 첫 번째 조건에서 파생되는 두 번째 조건은 새로운 흐름이 시대를 반영하는 텍스트로써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조건은 무엇보다, 새로운 흐름이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멋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범주에서 볼 때 인간은 그가 가진 취향의 합집합과도 같다. 그리고 예술의 영역에서 아비투스를 '향유자가 친숙함을 느끼거나 동경하여 속하고 싶어 하는 취향의 좌표'로 해석한다면, 인간의 취향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경향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특정 사조를 아비투스라고 느끼거나 느끼는 척할수록,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이 더 많은 지지를 얻게 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경향을 고착화할 수밖에 없다. 예술은 영원하지만 예술에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행이 발생하고 경향이라 부를만한 것이 생겨나는 이유는, 향유자와 예술가의 이런 상호작용에 있다.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로 대표되는 프랑스 영화의 신경향(French New Wave), 즉 누벨바그는 영화가 예술로 인식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흐름이자, 제작 스타일이 관객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에 성공하여 하나의 장르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 경향이다. 1950년대 중후반까지 영화는 선형적, 정형적, 전형적인 서사구조와 시간 및 공간의 이동을 보여주며, 대중에 어필이 성공한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주요 흐름이 현실보다 정돈된 이상(理想)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첫째 당시 영화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물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둘째 이상적인 삶과 아름다움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 셋째 영화 자체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그들이 처한 상황 등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흥분이 가라앉고, 일상이 복구되어 눈앞의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들 사이에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다만 느낀 대로 표현할 필요성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작가주의가 도입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누벨바그다.

누벨바그의 첫 번째 특징은 영화가 '현실의 사소한 면면'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랑, 우정, 생계와 같은 개인의 감정이나 현실적인 생의 순간이 묘사되기 시작한다.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멋대로 해라>의 미셸과 파트리시아의 위험하고도 천진한 짧은 사랑이 대표적이다. 1955년 작품으로 짧지만 아름다운 로마에서의 사랑을 그린 <로마의 휴일>과 대조해 볼 때, 본작에서는 사소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느껴진다. 두 작품은 모두 휴가 혹은 휴가의 연장선상에서 짧은 기간 동안 생긴 연애감정을 그리고 있으나, <로마의 휴일>이 앤 공주와 기자 조 브래들리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초점을 맞춘 반면, <네 멋대로 해라>는 자유분방하고 섹슈얼한 감정의 흐름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경제력, 커리어, 로비, 범죄 등의 서늘한 키워드가 로맨스, 아이스크림, 데이트, 운명적 만남 같은 로맨틱한 키워드를 대신한다. 그러나 덜 아름답지만 더 현실적인 스크린은, 첫째로 예술이 현실에서의 아비투스를 인지하게 하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관객의 필요를 충족하였으며, 둘째로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로 관객의 공감을 얻어 내는 데에 성공했다.

누벨바그의 두 번째 특징은 영화가 더 현실적인 텍스트를 담게 된 만큼, 영화의 표현론적 관점도 현실적인 감각을 재현하는 데에 더 적합한 방식을 채택하였다는 점이다. <네 멋대로 해라>는 작품의 도입부, 미셸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장면에서부터 누벨바그를 상징하는 촬영 기법을 선전포고하듯이 제시한다. 구도는 하나로 유지하되 화면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는 것을 반복하면서 인물의 행동과 화면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급격히 전환되는 점프컷, 앵글의 흔들림 그대로를 담아내어 깔끔하지는 않지만 카메라를 거치하여 촬영하는 기법에 비해 꽉 찬 현장감이 담기는 핸드헬드, 미셸이 보조석에 있는 렌즈를 바라보면서 연기하게끔 하여 몰입도를 방해하는 방식의 브레히트식 거리두기. 누벨바그가 감독이 인식한 현실을 자신의 문법으로 표현하는 제작 방식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을 중요시하고 관객에게 상황을 주입하기보다 관찰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기를 유도하는 촬영 기법은 매우 유효한 선택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을 기법들은 미셸이 경찰을 총으로 쏘고 히치하이커가 되는 것과 겹쳐지며, 고다르가 기존의 질서에 총을 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현실을 표상한다.

미셸은 제멋대로 기존 체제에 저항하면서도 허무를 드러내고, 이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장 뤽 고다르 또한 고착화된 영화 문법과 기득권이 주류로 내재화한 예술적 표현 방식에 무심한 반기를 든다. 그리하여 세 번째로 관객은 이런 진솔한 방식을 멋있다고 생각하고, 누벨바그를 아비투스로 여기거나 여기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으며, 결과적으로 장 뤽 고다르와 <네 멋대로 해라>는 영화사(史)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러나 그 어떤 필요나 공감에 대한 분석에 앞서, 무엇보다 본작은 사랑스럽다. "결국 내가 멍청했었던 거야." 하는 자괴감으로 시작하는 미셸의 여정은 "이제 지쳤어. 자고 싶어. 다 역겹다."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환멸로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본작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두 남녀가 침대 위에서 세상에 슬픔과 허무뿐이라면 슬픔과 허무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 진지하게 논하고,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도 내던지고야 마는 순수성을 띄기 때문이다. 순수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여전히 동화적이기 때문이다. 본작에는 보통의 경우 양립하지 못하고 대신 서로를 동경하는 특성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관객의 다양한 미적 지향점, 요즘 말로 하면 '추구미'를 동시에 충족하면서 공감을 얻는 것이다.

미셸은 사랑에 눈먼 자신을 탓하면서도 사랑이 없는 세상을 싫어하고, 슬픔은 바보 같고 복잡해서 싫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nothing) 허무를 선택하겠다고 천진하고 진지하면서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작중 내내 등장하지 않던 베루티는 일부러 미셸을 피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싸돌아다녔을 뿐이고, 미셸과 조우한 후로는 앞뒤 안 가리고 미셸을 도울 만큼 의리 있다. 생경한 문화권, 그것도 파리에 내던져진 미국인 파트리시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타인이었던 미셸과의 사랑에 누구보다 진지하고, 엉덩이와 등허리 사이 애매한 자리에 총을 맞고 도망치는 미셸을 진지한 비통함으로 바라본다. 생애 마지막 순간 지친 상태로 마지막 숨을 내쉬는 미셸은 여전히 사랑을 믿고, 혼자 남아 곤욕을 치를 연인을 위해, 그녀를 영원히 밀고자로 남겨두기 위해, 역겹다는 단말마와 함께 그들이 나눴던 뾰로통한 표정으로 암호를 남긴다. 아, 으, 우. I Love You.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남은 연인은 뭐가 역겹다는 거냐고 말하면서, 렌즈를 바라보고 미셸 특유의 동작을 한다.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어내리며 그녀도 암호를 남긴다. 화면 안에서 그들이 나눴던 명시적 애정행위는 키스가 유일하기에 그녀의 답장은 서글프다.

거리두기 방식의 일환이자 감독의 메가폰을 대신하는 장치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사운드와 옥외 전광판에 흐르는 자막을 이용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도 사랑스럽다.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딱 맞는 영화의 대사, 그들의 앞날을 전조 하는 문장이, 몰입을 방해하면서 끝까지 관객에게 '네 멋대로 (감상)해라'라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순간, 현실은 얄궂다. 본작은 그 점을 간과하지 않고 리얼한 순간을 그대로 그리면서도, 얄궂은 현실이 스크린 위에서 생생하고도 아름답게 현현(顯現)하게 만든다. 본작은 트뤼포와 고다르가 지하철에서 대화를 하다가 만든 시나리오 원전을 바탕으로, 그날그날 아침에 쓴 쪽대본을 받거나 혹은 그저 던져진 상황만으로 배우들이 연기를 통해 즉석에서 디테일을 만들었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촘촘하게 짜인 각본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생동감이 어떤 영화 문법을 만나 영화로 표현되는가, 연출과 연기가 삶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또 표현하는가가 영화를 만들 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현실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장면들이, 사랑스러운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물론 장면을 직접 만들었던 쟝 뽈 벨몽도와 진 세버그의 압도적 비주얼과 사랑스러움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특히 파트리시아 역의 진 세버그의 짧은 머리, 사랑스럽고도 자유분방한 패션은 아름다운 작품의 화룡점정이 된다. 두 사람이 파트리시아의 아파트에서 나누는 주제만큼이나 시간의 흐름도 종잡을 수 없는 긴 대화는, 산발적으로 아무 주제나 주워삼기는 불안한 청춘들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겉도는 듯 하지만, 시대 상황과 시대정신의 본질을 직시한다. 아이젠하워와 드골의 만남. 냉전의 끝. 르누아르. 슬프면 사라지는 코끼리. 이불 위에 나뒹구는 담뱃재. 특히 파트리시아가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를 언급하는데, 인간의 자유와 사회적 종속성, 사랑과 배신 삶과 죽음, 유산(남길 유 遺, 낳을 산 産)과 유산(흐를 유 流, 낳을 산 産)에 대하여 논하며 두 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교차되는 이 작품을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앞날에 대한 복선과 이 정신없는 대화에 담아내고자 했던 알맹이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것을 싫어하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당시까지는 관객은 좁은 공간을 드넓게 쓰며 화면 밖까지 쏟아질 듯 넘실대는 아름다운 씬에 공감하면서도 멋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이 답 없이 허무하고, 제 멋대로 슬픈 이야기를, 누벨바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작품 안팎으로 충분히 차고 넘친다.

잠들면 함께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것과 같다. 사랑이 두렵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여자와 두려울 것이 없이 네 명의 아이가 있는 아버지를 쓰러트린 남자 중에 누가 더 겁쟁이일까. 젊은 개예술가의 초상. 세상에 슬픔과 허무뿐이라면, 슬픔이 어정쩡한 중간이라 싫어서 허무를 선택한 남자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싫어서 슬픔을 선택한 여자 중에 누가 더 용기 있는 인간일까. 딜런 토마스와 장 뤽 고다르의 예술은 운이 좋았다. 좋은 시기, 예술에 관심 많고 작품과 감도가 맞는 향유층, 변화의 시기, 파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상황, 블록버스터의 부재.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시대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들이 겁 없이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내지 않았더라면, '전에 없던' 예술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며, 시대는 한걸음 더 늦게 걸어야 했을 것이다. 평론가였다가 네 멋대로 영화를 만든 장 뤽 고다르와 그런 그를 믿고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이 없었다면, 현대인이 보는 영화는 지금과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멋대로 보고, 읽고, 이해하고, 쓰고, 살자. 작가주의적으로 살자. 어쩌면 내 멋대로 하는 용기 있는 지금을, 누군가는 예술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 관객이 나 자신, 단 한 명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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