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걸

<발레리나>, 렌 와이즈먼, 2025

by 새벽녘 연필소리

[발레리나 - 렌 와이즈먼] 올드 걸


한 줄 요약

싸우지 않기 위해 싸우는 사람과 싸우기 위해 싸워온 사람의 이야기


산불이 나면 겉이 새까맣게 탄 나무를 1년간 베지 않고 지켜본다. 혹시라도 아직 그 안에 웅크린 생명이 있을까 봐.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혹은 떠올릴 때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생각한다. 늙고 지쳐 깡마른 모양으로 바짝 타버린 껍질 안쪽에 도사리고 있는 사연과 이야기, 생명을. 무너져버린 일상과 자연의 섭리 앞에 속절없는 물리적 한계, 그 속에 잔뜩 웅크려 과거를 꿈꾸는 소년을. <올드보이>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나이만 먹은 오대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박탈당해 버린 소년 우진의 일대기에 더 가깝다. 일상이 없이는 삶은 하루도 나아가지 못하고, 찰나가 없으면 영겁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우진의 생(生)이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어 관객에게 들리지 않을 뿐이다. 영화가 술을 잔뜩 마시고, 한참을 이야기하고, 하루만 대충 넘기면 삶은 어떻게든 흘러간다고 주억대는, 수다스러운 대수의 삶을 조명하고 있는 순간의 이면에도, 이야기의 플레이버튼을 상실한 채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우진의 삶이 아무렇게나 포개어져 있다.

존윅의 스핀오프인 <발레리나>를 지켜보면서, 바짝 탄 껍질을 힘겹게 걸친 가녀린 나무들과 시절을 잃어버린 우진을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유일한 보호자이자 자신의 우주였던 아버지가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이브는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찾기 위해, 아버지가 죽었어야 했던 불명의 명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리하여 잃어버린 일상과 삶을 되찾기 위해, 킬러의 길 위에 선다. 사람들의 말, 추측, 생각이 쏟아지는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아버린 우진은, 어린 누나가 댐으로 몸을 던지게 만든 사람들을 찾기 위해, 세치 혀로 누나를 죽인 그들에게 어떤 저의가 있었는지 알기 위해, 그리하여 유예해 왔던 성장을 건너뛰고 죽음에 이르기 위해, 복수의 길 위에 선다. 상실의 순간 이후로 한 뼘도 나아오지 못한 여린 영혼들은, 영문도 모르고 겪어야 했던 붕괴의 이유를 묻는다. 그러나 이브가 아버지의 레거시를 이어받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행위의 목적으로 삼은 반면, 우진은 복수의 정념(뜻 정 情, 생각 념 念)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과 사랑을 오염시킨 것들을 삭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깨진 거울을 이어 붙인 것처럼, 이미 구겨진 종이를 펴는 것처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모르고. 어린 영혼들은 기꺼이 무대 위에 선다.

책장을 정리하다 보면, 마구 구겨진 상태로 책과 책, 책과 책장 사이에 끼어 있는 포스트잇이나 메모지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빼곡히 적혀 있는 생각의 단상이 종이의 주름에 사정없이 긁혀 있고, 책갈피로 갈무리되지 못한 종잇장이 책장 근처를 애달픈 마음으로 서성인다. 결론적으로 이브는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찾아내어 아버지가 죽었어야 하는 이유를 묻고 그 답을 듣는 데에 성공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데에는 실패한다. 우진은 자신과 누나의 삶을 무너트린 원인들-오대수의 혀와 자기 자신-을 제거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복수의 마지막 대상이 스스로인 탓에 잃어버린 시간을 살아내지는 못한다. 정처를 잃고 사정없이 구겨진 메모지가 두터운 책의 속살 사이에서도 원래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품고 누렇게 바래가듯이. 다행히 이브는 우진처럼 복수 같은 사적이고도 순수한 정념에 침잠(잠길 침 沈, 무자맥질할 잠 潛) 하기보다, 아버지의 꿈, 평범한 삶이라는 상속에 실패한 유산(남길 유 遺, 낳을 산 産)을 스스로 쟁취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소녀들이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계승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 집중한다.

존윅은 싸우지 않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녀의 흔적이 남은 것들마저 모두 잃은 채, 싸우지 않고 싶은 자신을 싸우게 하는 세상에 화가 난 사람. 그녀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이제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 문 밖으로 나서려고 애쓰는 사람. 이브는 싸우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평범하게 흘러야 했던 유년 시절을 문드러지는 발끝으로 디디고 살아야 했던 사람. 자신이 살아야 했던 시간들이, 자신이 살아내지 못했던 시간들이, 어디로 모두 흘러가 버렸는지 묻는 사람. 그러면서도 문 밖으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 버린 사람. 그래서 존윅은 냉철한 이성과 철저하게 짜인 전략으로 싸운다. 반면 이브는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한계와 어떤 판에서도 힘으로 이길 수 없으므로 girl 답게 싸워야 한다는 루스카 로마의 전략을 받아들여 수류탄, 화염방사기 등 강력한 보조도구를 이용하여 가능한 한 잔인하게 상대방을 뭉개뜨린다. 특히 루스카로마가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만들어주기 위하여 킬러들을 발레리나로 육성한다는 점도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브가 여성이라는 점, 감정적인 측면에서 그녀가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였다는 점, 그리고 서사적인 측면에서 이브가 살아내는 비극적인 질곡(차꼬 질 桎, 수갑 곡 梏)의 삶과 영화언어적으로 효과적으로 맞물린다.

이브가 발톱이 뽑힌 자리에서 피가 마르고 새살이 돋기를 기다리며 벼린 정신력과 그녀가 체화한 동작들은 - 아쉽게도 직관적으로 영화에 표현되지는 못하지만 - girl 답게 싸워야 하는 이브의 또 다른 무기로 기능했을 것이다. 이브가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였고, 아버지를 잃고 킬러가 되어가는 중에도 여전히 훈련의 일환으로 발레를 연습했다는 점은, 그녀가 여전히 꿈을 꾸는 평범한 소녀의 속내를 지니고 있음을 표상한다. 그리고, 이브를 찾는 할슈타트 마을의 서치라이트와 발레리나의 동작을 비추는 핀조명이 유사해 보이도록 설치되었다던지, 그녀가 발레를 훈련하는 모습과 킬러가 되기 위한 각종 훈련에 임하는 모습이 비슷해 보이게 하는 연출을 통해, 단 한순간 때문에 망가져버린 이브의 삶 그 자체와 그 이야기가 지닌 비극성이 조명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브가 친구의 무대를 바라보는 장면은 이브가 일상을 빼앗기지 않고 아빠와 평범하게 살아왔더라면, 혹은 루스카 로마에서 그녀가 스스로를 킬러로 단련하기보다 발레리나의 길을 선택했더라면, 그녀 역시 평범하게 무대 위에 오르는 발레리나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이브가 평범한 발레리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궁극적 원인이 타인에게 있다는 사실과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발레를 연습하는 과정과 킬러가 되어가는 과정이, 각각 예술의 단련과 세속적인 임무 수행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병렬하였을 때 이미지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은 바로 상기한 바와 같은 연출과 각본 단계에서 촘촘히 설계해 놓은 은유를 활용하는 서사 구조 덕분이다. 본작은 번뜩이는 은유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애초에 개연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존윅의 세계관에서, 현실적인 묘사보다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 더 영리한 선택이 될 것이다. 또한 이브가 자신의 수단부터 목표까지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점, 젊은 킬러답게 앞뒤 안 가리고 달리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바바야가가 이브에게서 자신의 것과 비슷한 상실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도 존윅 세계관을 좋아하는 관객 입장에서 반길만한 포인트였다. 아쉽게도 본작은 속도와 정도가 획일적인 탓에, 긴장도가 계속 유지되어서 오히려 전체적으로 맥이 빠진다. 서사-개연성-이야기-은유처럼 동일선상에 있는 텍스트들은 좋았지만, 연출과 편집에 아쉬움이 남는다. 흔히 관객들이 이야기하는 떡밥을 회수하는 방식도 아쉬운 편이다. 특히 한국 배우 정두홍과 수영이 출연하는 전투씬이 높은 비중에 비해 퀄리티가 낮고, 맥거핀으로 소비된다는 점도 아쉽다(사진 속에 무메가 말했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래빗풋 정도의 공들인 맥거핀도 못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이브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 함께 훈련받았으나 발레리나가 된 친구의 무대를 바라보다, 자신의 현상금이 인상된 것을 확인하고, 뒷문으로 위험이 도사리는 현실로 나아가야 하는 이브의 뒷모습이야 말로, 그녀가 겪어야 하는 비극의 함축이자 현실에 발 붙이고 사는 관객의 일상이다. 이브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삶의 의미를 쟁취했으나,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 정한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따라 새롭게 정의된 일상(날 일 日, 항상 상 常) 위에 선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그녀가 살아낼 일상은, 싸우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던 존윅의 그것과 닮아 있을 것이다. 원치 않는 주목과 수요에 시달리는 고독한 숙명. 수호자가 되고 싶었던 키키모라는 자신이 선택한 킬러라는 수단이 발밑부터 차올라 자신을 잠식하는 모습을 고요하게 바라본다. 타티아나는 그 위에 발끝으로 서서 무대 위를 끊임없이 달리듯이 날고, 이브는 발끝으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전투의 현장 위를 날듯이 달린다.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토슈즈 대신 총을 들고 선 올드걸의 모습은 이토록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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