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 rpm의 고요 속에서 만나자.

<포드 v 페라리>, 제임스 맨 골드, 2019

by 새벽녘 연필소리

[포드 v 페라리 - 제임스 맨 골드] 7000 rpm의 고요 속에서 만나자.

어느 영역에, 어떤 코스에, 어떤 랩 위에 있든. 목표가 있고, 그 목표로 가는 길 자체가 삶의 큰 기쁨이고, 그 과정에서 몰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고독한지. 그리하여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몰입의 순간에 찾아오는 역설적인 평온,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는 심연에 대하여.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과 깨달음 그래서 이어지는 행복한 웃음. 그것은 캐롤 셸비처럼 죽음으로 질주하던 차를 멈추고 두 발로 땅을 딛게 하는 성숙이 되기도, 뜨거운 엔진을 적시는 냉각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켄 마일스처럼 스스로를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과열되어 고장 나버린 브레이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를 죽을 만큼 아프게 하기도 한다.
본작은 그 모든 순간을 고스란히 겪어내면서도, 퍼펙트 랩 위에 찍힌 묵묵한 발자국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발자국이야말로 존재자체만으로 클래식이라고 칭해지며 존경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레이싱이라는 소재의 본질에 충실하게 이야기하고,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에 집중하며 그려낸다.

본작을 구성하는 요소는 균형감과 아이러니다. 감독은 철저한 균형감을 유지하며 모든 등장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 각자의 꿈, 같은 꿈이더라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각자가 선택하는 서로 다른 방법들, 그 결과에 대하여 논한다. 그러면서도 어떤 판단(판단할 판 判, 끊을 단 斷)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인간도 각자의 퍼펙트랩을, 그 길을, 그 속도를, 옳다 혹은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다. 이야기를 매만진 전지적 존재마저도.

관객은 영화를 따라 한 개 코너만 지나면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난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들이 반전으로 직결된다. 제목부터 그러한데, 상징성이 강한 포드와 페라리를 선택하여 대결구도를 만들지만, 사실 본작은 포드와 페라리의 대결이 아니라 포드와 페라리가 자기 스스로와 대결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포드는 대량생산, 자본주의, 효율성, 획일적인 디자인, 미국, 젊음과 기회, 신흥세력을 상징한다. 페라리는 수공업, 장인정신, 기술력, 아름다운 디자인, 유럽, 보수세력, 기득권을 대변한다.

직관적인 이미지부터 포드와 페라리는 각각 상반된 프레임의 아이콘으로 기능해 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그러나 포드, 정확히는 포드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마일스는 ‘소비자가 원한다면 모든 자동차를 만들 수 있으나, 그 자동차는 검은색일 것이다.’라는 기조 아래, 운행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저렴한 자동차를 생산해 왔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도전한다. 요컨대 스스로 만든 프레임, 이제는 한계(한할 한 限, 경계 계 界)가 되어버린 과거의 슬로건을 깨고 성장하고자, 르망에 도전한다.

마일스는 밖으로는 포드 내부의 방해공작, 권모술수와 싸우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 페라리는 수년간 르망 24에서 맹주 역할을 하던 자기 자신의 아성을 스스로 보호하고 지켜내며, 그보다 더 나아가고자 경기장 위에 선다.

본작이 속도와 대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은, 크리스찬 베일과 맷 데이먼의 호연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쌓은 서사의 구조에서도 탐지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감독이 균형과 아이러니를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생(生)은 의미들의 축적이고, 어떤 가치나 존재도 한 가지 의미로는 해석될 수 없다는 점에서 메타포로 가득 차 있다. 본작은 관객이 흘러가는 그대로, 해석 없이 본작을 장면의 나열로 이해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르망 24가 끝나고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는 마일스와 엔조 페라리의 모습만으로, 관객은 이 서사가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길 위에 오른 모든 사람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스스로와 상대를 존중하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본작은 자기 자신이 누군지 묻고 그 답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포드, 페라리, 마일스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서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길을 지키며 걸어갈 뿐인 것이다.

이외에도 메타포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상태가 계속 만들어진다. 마일스는 세계대전 당시 탱크 운전사였고, 포드는 전쟁에 탱크를 만들어 납품하였다. 마일스는 기회를 찾아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나, 미국에서 유럽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았다. 신흥세력인 포드는 페라리의 아성에 도전하나 헨리 포드 2세는 특권의식에 젖어 직원들의 충언에 눈 감는다. 마일스는 미국인 신분으로 포드팀에 소속되어 르망 24에 출전하지만 완전한 미국인이 아니기에 포드팀을 대표하여 1위를 기록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상들은 인물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이 조명하고자 하는 현대(나타날 현 現, 대신할, 시대 대 代) 세계의 본질적 자아의 여러 면모를 은유한다. 관객은 이 메타포를 통해 개인이 국가, 자본, 이념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또 저항하는지를 고찰하며, 그리고 그 모순적인 투쟁이야말로 현대인 자아의 본질임을 확인한다. 결국 마일스는 '미국인'도 '영국인'도 아닌, 오직 '레이서'로서 자신의 길을 증명해 낸다.

인생은 얄궂고, 운명은 짓궂다. 그러나 인간은 그 안에서 선택을 하고 선택은 운명의 바퀴가 다른 길 위로 구르게 하고 때로는 선택의 주인공이 다른 차 위에 오르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쉘비와 마일스는 7000 rpm에서 자기 자신과 만난다. 바늘이 레드존을 넘어서면 차도, 도로도,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도, 그 속의 누군가들도 없다. 그저 심연 속의 자신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그 레드존까지는 혼자서 갈 수 없다. 르망 24에서 마일스가 신기록을 세우고, 자신의 신기록을 또다시 뛰어넘고, 1분에 7000번 뛰는 엔진의 고동소리 속에서 자신을 만나기까지. 누군가는 피트에서 땀 흘리며 스패너를 조였고, 누군가는 그가 쪽잠을 자는 동안 대신 코스를 돌았다. 생이라는 르망 24에서 쉘비와 마일스는 한 팀을 이루어 교대하며 고독한 레이스 코스 위에 오른 셈이다.
그리고 트랙 밖의 누군가의 삶도, 지금 코스 위를 달리는 누군가의 생도 마찬가지다.

고독한 길 위에서, 7000 rpm. 자동차의 심장이 분당 7000번을 뛴다. 계기판의 바늘이 레드존 위에서 춤 춘다. 삶은 계속된다.

그러니 부디. 언젠가 우리 또한 각자의 트랙 위에서.
7000 rpm의 고요 속에서 만나자.

2019. 12. 17. 쓰고, 2025. 8. 20. 에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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