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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l 07. 2020

6년 만에 이메일이 왔다

모바일 시대의 이메일, 더 찐해진 이유

핫메일이 나왔던 때를 기억한다. 갓 중학교를 입학하고 하교 길에는 PC방에 놀러가서 방금 보고 온 친구에게 메일로 편지를 쓸 때였다. 중2병을 앓던 시절, 내 기준 '세이클럽'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대화창을 만들면 관심있는 친구가 금새 들어와 확인할 길 없는 자기허세와 허풍을 늘어놓았다.


채팅창에 입장하면 '방가' 라는 인삿말과 함께 나이와 사는 곳을 밝혀야 하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당시 강원도 깡 시골마을에 살고 있던 나는 출신을 숨기고 싶어서 생전 가본 적도 없는 강릉이나 원주 (내 기준 우리 동네보다는 나아보이지만, 너무 도시여서 내가 모르는 주제 - 이를 테면 유명 프랜차이즈 외식업체, 피자헛 따위- 를 몰라도 되는 수준)에 산다 구라를 치며 대화방을 누볐다. 그때 '피자겟' 정도가 가장 핫했던 우리 읍내에는 오리지널 롯데리아가 문을 막 열었던 시점 이었다. 물론 돈이 없어서 그마저도 잘 못사먹었지만.

인터넷이 되는 곳만 있으면 열심히 찾던 이 아이콘들, 수다가 주특기인 시골 소녀는 전국을 누비며 날아다닐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늘상 편지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어제 보고 내일도 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게 낙이였다. 편지에는 급한 성격에 놓쳤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다. 상호작용이 없어 깊은 마음을 더 털어놓기 좋은 매개였다. 이때 시작한 '이메일'은 신세계 였다. 센드 버튼에 울고 웃고를 경험했다. 편지지를 사지않고도 정갈한 편지 보내기가 가능했던 이메일은 편리한 만큼 기술 특유의 비인간적인 매체였다. 꾹꾹 눌러쓴 나의 필기체나 지금의 이모티콘 기능을 하던 나의 그림 낙서가 없는 오직 줄글의 편지라니! 국어교과서 지문과 다를바 없는 이메일 텍스트에는 친구의 체취도 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의 진지한 생각과 고민이 이렇게 쉽게 쓰고 쉽게 전달되도 되는지...  이메일은 그저 얄팍한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라 여겼다.


강산이 한번반 지날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이메일에게서 낯선 아날로그가 느껴진다. 그것도 아주 찐하게! 역시 무어든 상대적인 것인걸까? 디지털을 넘어 모바일 시대가 된 지금, 인스턴트 소통의 범람에 이메일은 슬로우 푸드 만큼이나 느리고 정제된 소통의 방식인냥 느껴진다.


이런 격세지감은 오랜 친구로부터 온 메일 회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6년만에 받은 친구의 메일에서는 예전에 느꼈던 이메일의 각박함이나 대충대충이 부재한 색다른 따뜻함이 녹여있었다. 세네줄을 채 채우지 않고 해시태그에 실린 단어 몇가지로도 live 를 누르는 세상에서 족히 15분이상 할애 했을 친구의 독백같은, 짧지않은 이메일에서 겹겹히 쌓인 진심과 정성이 읽혀졌다.


6년만에 친구에게 메일을 쓴다. 시간여행을 한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매일 아니 매순간의 소통이 가능한 이 호사스럽고 유난스러운 시대다. 1자가 사라지기 무섭게 호되게 대답을 강요하는 요즈음에는 흔하지 않은 기다림의 미학이 이메일에 있었다. 편리한 챗팅창 대신 홀로 생각을 정리해 친구에게 메일을 쓰고 기다리는 것, 이 긴 호흡의 소통, 그것이 반가운 이유는 상대에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옛스러움이 이유일게다. 마치 비인간적인 유용함을 이유로 구박받던 이서방이 더 비인간적인 것들이 가득찬 세상에서 세상따뜻한 존재가 되었달까? 기분좋은 진지함을 탑재하고 돌아온 이메일이라는 존재, 이서방이 오늘 더 반갑다.


6년만에 연락이 닿았던 친구이기에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친구는 유학을 가기 전에 나와 지금의 남편, 그리고 또래의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소외된 아동의 후원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까맣게 잊혀져 있던 과거지만, 아동복지와 학대아동의 보호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던 시절. 그때 우리는 주로 주변의 기부자들을 모아 소외된 아동들을 돕는 가정형 보육원인 그룹홈에 후원을 연결하는 일을 했는데, 시스템이 선행하지 않으면 결국엔 나아지지 않을거라는 깊은 회의가 있었다. 그런 고민을 나누던 친구는 지금 미국에서 학대아동을 위한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나비효과 처럼 우리의 별볼일 없던 청춘이 숲처럼 자라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작년에 쓴 그의 논문에 우리의 기억도 녹여있다니, 참 반가운 기억이다.


친구의 반가운 메일에 옛기억이 소환되자마자 미소가 흘러나왔다. 메일이 주는 즐거움이 반가운 헤드헌터의 잡오퍼 말고도 있다는 것. 우습지만 먹고 사는데, 돈 버는데에 혈안이 된 2020년 지금의 나에게 메일은 글쓰기 만큼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나를 너무 맵고 짜지 않게 만들어주는 글의 힘. 

계속해서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해보자는 작은 다짐도 해본다.


후원 아동들과 열었던 작은 운동회 사진이 남아있다. 대학생, 대학원생, 백수, 공무원 준비생, 중소기업 직장인 (나) 다양한 배경의 우리들, 아이들을 돕는 과정은 기쁨이었다.
당시 28살의 나와 까불이 남편 - 쟤랑 결혼할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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