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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l 23. 2020

결혼이라는 컬처쇼크에 대하여

배우자가 이상한 나의 가족을 사랑하게 만드는 묘안

이러쿵 저러쿵 말은 많지만 따뜻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다정한 엄빠 사이에 태어난 나는 화도 많고 흥도 많은 가족을 닮았다. 성격에 대~한민국을 담았달까? 후끈한 냄비 근성에 빨리 빨리를 얹어 장점으로는 무어든 늘 신속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만, 화병이 좀 있어서 내 기준, 공정치 않다는 생각이 들면 위아래와 물불 안가리고 달려드는 기질이 있었다. 좋은 말로 사회생활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사람, 나쁜 말로 사회생활 오래 하기 참 어려운 타입이라는 소리- (아이고 내 팔자야..)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래도 부모님을 닮아 붙임성 있고 싹싹한 편이었다. 늘상 하트와 사랑해를 달고사는 우리 부모님과의 카톡을 보면 적지않게 놀라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가족에겐 밥먹어, 집에가 만큼 사소한 표현일 뿐인데요?




런 내가 경상도 출신의 시부모님과 자란 우리 남편을 만난 건 어쩌면 예견된 갈등의 시작이었다.


남편은 말수는 없지만 세상 다정한 남자로 섬세함과 배려가 매력인 남자였다. 말도 많고 억울한 것도? 많은 여자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특기가 있었다. 연애때부터 늘상 나에게 빌붙는 게 익숙한 백수 남친, 하지만 불편한 주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는 신사였다. 늘 상대를 존중하는게 몸에 벤 사람이라 좋았다.


그런 남편을 키운 시부모님은 꽤 낯선 구석이 있었다. 남편과 전혀 다른 외모의 아버님은 그런 남편의 성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답안지처럼 보여주시는 하얀 연두부 같은 분이셨다. 반가운 식상함이 이어질때쯤 반전이 있었다.


여장한 남편이 연상되는 시어머니셨다. 야! 로 보통 시작되는 어머니의 사시사철 일관된 돌직구 화법이 화근이었다. 돌려서 말씀하시는 법이 없는 어머니셨다. 사회생활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캐릭터의 어머니.. 로맨틱코메디, 때때로 주말드라마 정극 정도로 예상한 내 결혼생활에 다음주에 뵙겠다던 결혼과 전쟁 한편이 예감되는 이유였다.




결혼 하기 전이었다. 상견례를 하기도 전이었는데, 사무실에서 어머님의 전화를 받았다. 결혼 전부터 '시월드'의 전세계 보편적 편견, 아니 지금 생각해볼때 악성루머쯤을 귀에 딱지가 앉오록 들었던터라 더 두려웠던 통화였다. 사실 그 전달쯤 남편과 나는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결혼 계획을 잡았었다. 그맘때쯤 결혼하고싶어병 말기 환자였던 나는 창업과 사회운동에 빠져사는 남편에게 결혼할래 죽을래를 외치고 있었다. 졸업 후 취업원서 한장 안낸 남편은 결혼 같은 정형화된 루트와는 결이 다른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런 남자가 백기투항을 한 것이다.


남편이 계획을 부모님께 전달한 모양이었다. 말도 없는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수화기를 울린, "너 돈 얼마나 모았니?" 예상하지 못한 하우머치 공격에 정신이 아찔했다. 사실 결혼 준비를 도와주시려는 의도에 시작된 질문이었으나, 전후 설명이 없는 질문은 부풀었던 결혼생활에 대한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하루는 어머님께서 신혼집 이불에 쩐내가 난다고 한참을 언짢아 하셨다. 없는 살림에 친정아빠가 주신 돈들까지 모두 모아 영끌의 전세집 빌라를 마련한 터였다. 이불 한채 살 돈도 없던 우리 부부는 결혼 전에 같이 산 마지막 자취방, 망원동의 반지하 빌라에서 쓰던 이불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어머니의 힐난이 신경쓰여 인터넷으로 최저가 이불을 뒤지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그 이불을 모두 가져다가 세탁해 가지고 들어오셨다. 새이불 한채와 함께.

평생을 속옷 보따리 상으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는 면소재 직물의 도사셨다. 새 이불을 준비하시려는 어머니 스타일의 애교적 투덜거림이신게다. 어머님st. 서프라이즈 (어머님은 화를 내신게 아니었다는)


시어머니는 늘 따뜻한 의도를 감춘 맹렬한 질문 공세로 자식사랑을 실천하셨다. 허나, 그 차이를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해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컬처쇼크를 극복하는 것 역시도.




물론 며늘아기만 힘든 건 아니었다. 사위에게도 처가월드는 처가였다. 남편은 시골 스타일 특유의 정겹고 거친 (?) 우리 부모님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나 우리 엄마는 요리 중에 완성도 안된 음식을 손으로 집어 입에 넣어주시는 의식이 있었다. 당신 딴에는 간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들게 만드는 중이야. 그러니까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런 장모님의 원치않는 적극성에 내성적인 남편은 당황한 적이 많았다. 외아들로 나고 자란 그가 딸 셋에 사위 셋까지, 말 많고 가족 행사가 많은 처가월드를 만나 아노미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 사이에서 자라 눈치와 막내로서의 예의가 빠삭한 나와는 다른 구석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숱한 오해와 속풀이를 건너 이해의 도구를 찾았지만 처음에는 너무 다른 그들이었다.  시월드와 처가월드라는 벽은 우리 부부에게 큰 과제였다. 결혼 초에 몇번의 말다툼을 반복하고 오해를 줄여나갈 요량으로 룰을 하나 정한 게 있었는데,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지금 우리 부부에게 서로의 가족이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으니 꽤 성공적인 룰이었다. 그것은 '서로의 가족에게 영업은 각자가, 수익은 함께' 라는 룰이었다.


룰의 기본 전제는 부부의 양가족은 다른 문화와 환경 이라는 걸 인정하고, 결혼을 했으니 무작정 사랑하고 이해하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직설적인 어머니가 힘에 부치듯, 남편에게도 조직생활 처럼 위아래가 있는 형제자매들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결혼을 이유로 담박에 사랑에 빠지라는 건 무리수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닐까.


두번째 전제는 양가 가족에게 사랑받는 노하우는 각자가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처가월드의 열쇠는 그 집에 살아온 내가, 시월드의 정답은 그 댁 아드님이 잘 알수 밖에 없다. 가족들이 어떤 지점에 예민하고 좋아하는지 잘 아는 각자가 서로의 배우자를 위해 영업을 해주어야 사위와 며느리라는 상품이 더 잘 팔릴 수밖에 없다. 


나는 그를 나의 가족에게 살뜰한 막내사위라는 포지셔닝으로 적극 어필했다. 그의 인상을 가장 좋게 남길 기가막힌 시나리오는 늘 내손에 있었다. 시어른들에게 다정하지만 일도 잘하는 며느리로 인정 받는 근거 역시 내 아들피셜 스토리에 존재했다.



서로가 각자의 가족에게 사랑을 받았을 때 생기는 가장 큰 수익은, 바로 내 배우자가 내 가족을 사랑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좋은 영업맨이 되어 광을 팔아주면서 자연스럽게 그 가족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 결과 배우자는 받은 사랑에 감사해 다른 가족에 의지하게되고 친해지게되는 그런 것. 화목해진 확장된 가족 + 내 가족을 아껴주는 배우자 라는 공동의 수익이 생긴거다.


배우자가 서로의 가족에게 사랑 받을 당위를 만들어 주는 의무는 서로에게 있다. 그 행위를 부담이나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로 만들어줄 인과과정을 만드는 일, 그게 이 룰의 성과였다. 이런 선순환이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장시켜주었다. 사실상 우리 부부는 인센티브가 무한대인 보험상품을 파는 영업맨 처럼 움직였으니.


그리하여 지금은 그집 며느리가 세상 정겨운 시어머니와  스트레스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처가월드 속 우리 남편, 어색해도 최대한 상냥하고 세상 순한 표정을 지어본다. 귀여운 구석이 많다.


쑥쓰러움 많은 울 어머니, 알면 알수록 매력부자! 나도 나의 아들을 낳고 어머니가 나같고 내가 어머니같은 애틋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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