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da 린다 Jul 28. 2020

아이의 첫 여름을 장악한 코로나의 기억

코로나가 날려버린 것들 그래도 남은 것들

벌써 8월.


코로나 창궐 이후 한여름을 어떻게 견디는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걸 기억한다. 코로나 그 질긴 숨통 때문인지 그 사이 쑥 자란 우리들의 위생관념 때문인지 거리의 사람들은 여전히 반은 가려져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말을 걸고 "고생 많습니다" 하고 싶을 정도다. '토닥토닥' 대신 '쓰담쓰담' 하고 싶은 우리들의 일상-


여름내 육아를 하느라 실내에 있던 애미는 택배기사님의 반쯤 가린 버얼건 얼굴에서 그 심각함을 알았다. 냉수라도 한잔 드리고 싶어 택배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부엌을 오갔다. 짧은 사이, 기사님은 없고 지나간 엘리베이터 소리만 허공을 울렸다. 송골송골 물방울 맺힌 냉수 컵을 든 채, 일하고 있을 남편 생각이 났다. 저마다 노동의 현장에서 이 놈의 마스크와 싸우고 있겠구나. 코로나 시대에 가장 짠한 우리네 생업전선의 병사들이여-




일의 세계로 예열 중인 애미가 (주기적인) 바깥출입을 시작한 것 한 달전쯤이다. 몰랐던 코로나의 민낯을 절절히 느꼈다.


뙤약볕에 잔뜩 성이 난 날숨이 마스크 표면에 반사돼 얼굴을 지지고 있으면 얼굴인지 찜통인지 모를 몰골이 되었다. 적어도 화장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안된 얼굴에 분칠까지는 필요 없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오후에는 완전 무장을 하고 아기 유모차를 끌고 홍제천을 나가본다. 조깅하는 사람들,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젊은 부부들 주위의 많은 보통의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위생규칙에 협조적이다. 기침이나 땀을 닦을 요량으로 개인용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청년들도 는다고 하니, 우리 아빠 세대의 유물 인 줄만 알았던 옛날 것들도 코로나 덕분에? 다시 쓰임을 찾고 있다. 통 어렵고 씁쓸할 것 같은 세상에도 또 다른 유행이 생기고, 배려가 생기고, 배움이 생기니 인간은 모름지기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그래, 세상의 모든 일에는 나쁜 점만 있으란 법이 없으니까.




코로나 시대의 애미의 일상은 더 바쁘다. 소형 중형 대형 세가지 범용으로는 당최 맞지 않는 아기의 얼굴의 마스크 찾아내는 일이야 일도 아니다. 문제는 마스크를 씌우는 일- 아직 모자도 쓰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을 가린다는 건 신 내린 점잖음을 타고난 아이나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종국에 애미는 아이가 앉은 유모차를 봉쇄해버린다. 아이의 얼굴이 유모차 커버의 반사광으로 흐려질지언정 아이 마스크 쓰세요 라는 잔소리는 안 들어도 되니까.


방구석에는 중고장난감이 하나 둘 늘어, 베이비까페 못지않은 번잡함을 들였다. 잠든 아이는 알턱이 없지만 그 모든 중고템들을 모으느라 새벽 퇴근길 아빠는 장난감을 픽업하러 참 많이 돌아다녔다. 아이에게 새로운 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 기껏해야 문짝과 자동차, 소리 나는 것들을 모아 시간 때우기 육아로 돌입한다. 애미도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방구석 육아는 유통기한이 슬슬 다다랐음이 느껴진다. 코로나가 전멸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육아로 진화하는 것. 언제까지 방구석이라는 성역에 내 아이를 가둘수 없을테니 말이다. 내 주위 엄마들도 슬슬 아이를 보호할 각종 장비를 무장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코로나에 대한 강박을 이기는게다. 우리의 시선은 두려움에서 다시 아이들에게 간다.




내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함께 천이나 바닷가를 거닐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는 현장학습을 늘 꿈꿔왔다. 책도 좋지만 오감으로 느끼는 놀이형 교육이 제일 눈이 갔던 건 아무래도 시골 흙속에서 자랐던 애미의 어린 시절에 기인했다.


지난 주말에는 큰 맘을 먹고 제주의 한 바닷가를 향했다. 아이가 처음 발을 담가 본 바다였다. 겁먹은 소리로 내 옷자락을 쥐던 아이는 금새 발가락 사이 모래알에 관심을 보였다.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사람들과 떨어진 구석 바닷가지만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물장구 소리가 뒤섞여 마치 오랜만에 들린 옛날의 유행가처럼 반가웠다. 내가 참 좋아했던 그 소리들-




어제는 살고있는 곳 구청에서 진행하는 온라인 독립군을 선착순 지원했다. 서대문 독립민주축제라는 이름의 공익행사에서 역사적 사건을 퍼즐로 만들어 아이들 놀이교육으로 배포한다고하니 동네 엄마들 모두 부리나케 줄을 섰다. 돌아오는 광복절을 떼울 요량이었다. 요새 엄마들은 아이에게 뭐 하나라도 체험 시킬 색다른 일들을 지독하게 탐색 중이니, 뭐라도 꺼리를 찾아 헤맨다. 나 역시 일단 줄을 서고 생각한다. 이런 엄마들을 극성맞다고 하지 말자. 엄마는 늘 바쁘다- 언택트 온택트 무엇이던간에 아이의 교육과 체험은 계속 되어야하니 말이다.


우리 가족에게 광복절은 삼일절, 416,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이어 꽤 중요한 행사다. 아이 아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나열한 일들이기도 하고, 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게 우리 부부의 철학이기도하다. 고로 지난 부부싸움을 잊은 부부에게 내일이 없는 게고. (남편이 잘못했네- 기승전 남편욕?)


광복절이 특별한 소소한 이유는 우리 아이의 아침 쑥쑥이 스트레칭에 나오는 내 단골멘트가 "대한 독립 만세" 이기도 하다. 아이는 그 말이 나오면 으레 만세자세를 기대한채 웃는다. 만세 삼창은 해줘야 아침이 온거지 암-




코로나 시대, 우리들의 초상을 생각한다. 나의 눈길은 고생하는 남편의 쉽지않은 사업, 현실경기의 침체, 대량 실업의 흉흉한 시대상에서 다시 내 앞에 앉아있는 작은 아이의 등으로 간다.


이렇게 넋을 놓고 있다가 다시 더 치열해질대로 치열한 사회에서 남겨질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아이들의 손에는 잔뜩 설레는 엄마 손을 잡고, 흙에서 학교에서 바다에서 산에서 그렇게 체험하고 성장하는게 그들의 업이거늘. 지금 아이들의 손에는 엄마 손 대신 반짝반짝한 핸드폰이 보인다. 유투브 게임실황 따위에 이 아이들을 내주기에는 너무나도 천금 같은 시간인 것을 모를 턱이 없지만 말이다.


다시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한다. 엄마는 다시금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과 역사, 예술을 잔뜩 안겨줄 해결사를 꿈꿔본다. 아이를 안고 오늘은 또 속삭여줘야지 금방 좋아질거야. 우리는 잘해낼거야. 우리가 늘 그래왔듯이.


아이의 흐트러진 퍼즐을 정리하며 오늘도 빠샤를 외치는 코로나시대 엄마의 단상 끝.




아이의 첫 바닷가- 애미는 오늘도 휑한 곳을 찾아 헤맨다
애기의 첫 비행, 이불 돌돌 말기 신공과 주위의 배려로 무사히!



이전 15화 초보엄마, 운전대를 잡고 독립을 외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