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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l 01. 2020

초보엄마, 운전대를 잡고 독립을 외치다.

육아 일상에 작은 성취가 가져온 설렘을 기록하며

임신하기 전부터 아니 시험관을 마음먹기 전부터도 아기를 갖게 되면 남편으로부터 필히 운전 독립을 하고 말리라는 결심을 했었다. 벌써 근 4년은 된 결심이었다. 아기가 새벽이라도 아프면 엄마가 태우고 병원 가야 한다는 출처 불명의 조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간 어딜 가든 남편의 운전 도움 없이는 그 좋아하는 코스트코도, 망원시장도 통 갈 수 없는 뚜버기 신세를 벗어나고 싶었다. 정확히는 남편에게 의지해서 하는 일상의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남편이 미워서가 아니라 남편을 좋아해서. 연애할 때는 어떤 주제로든 상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때로는 애틋하고 또 존재의 당위를 확인하는 꽤 괜찮은 장치였지만 아기를 낳고는 조금 달라졌다. 할 일이 테트리스처럼 떨어지는 육아라는 게임에서 서로의 블럭을 지워주는 치트키는 관계의 건강함을 배가한다.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서로 의지하는 것들을 독립적으로, 또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는 모습 역시 필요하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연애할 때부터 남편은 하루 24시간을 남보다 최소 두배 이상은 쪼개서 쓰는 말 그대로 시간을 금처럼 쓰는 청년이었다. 사귄 지 얼마 안되고 그와 헤어지기 싫어서 선약들을 동행했는데 지하철로 총 8건의 약속을 해치우는 걸 보고 혀를 찼다. 다음 날 나는 앓아 누웠다. 그런 그였기에 큰 기대를 하진 않지만 유독 마트 쇼핑에는 더 바쁜 척을 해왔다. 십 년을 꼬박 소비재 마케팅을 업으로 살아온 나는 매장에 갈 때마다 디스플레이는 어떠한지, 신제품들은 또 뭐가 나왔는지, 기획팩 디자인은 어떠한지, 쇼퍼 동선은 어떠한지 세상 궁금한 것 천지인 마트 안에서 시간 가는 것만큼 쉬운 일 없다는 게 문제다. 그는 나와 참 천생연분? 인게다. 그만하고 집에 가자는 소리가 튀어나올까봐 카트를 밀고 따라오는 남편을 저 멀리 뒤로하고 제일 보고싶었던 구역부터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쇼핑을 한지가 벌써 십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집에 가자고 보채는 남편도, 애미를 찾는 아기도 없이 홀로 마트에 들어선 순간 의식의 흐름대로 모든 통로를 돌아다녔다. 사고 싶은 것들, 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보면서 오랜만에 오프라인 쇼핑의 즐거움을 느꼈다. 아무리 코로나며 이커머스가 대세라며 쿠팡을 손에 못 놔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손으로 만져보면서 눈으로 즐기는 이 즐거움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쇼핑이 아니라 기쁨이고 취미랄까. 많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취미는 소비이기에.


오늘 홀로 운전을 해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그간 돈 들여 운전 레슨도 여러 차례 받고 연습한 몇 개의 루트는 혼자의 힘으로 나갈 정도는 됐던 것 같았는데, 실제로 혼자 운전하기까지 이렇듯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력의 문제는 아니었고 용기의 문제, 정확히는 용기를 촉발할, 혼자 차 시동을 켤 만큼의 갈급할 일이 없었다. 드디어  몇 년 만에 생겼던 오늘의 이벤트, 역시나 아기 때문이었다.


아기는 지난 두 달간 중이염과 코감기를 앓다 지난 토요일 중이염 완치 판정을 받았다. 신이가 난 애미 애비는 아기를 데리고 숲이며, 공원이며 쏘댕겼다. 한낮의 찌는 땡볕을 가르는 냉방 차 안에서 서울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하던 아기는 중이염 완치가 무색하게 바로 편도염으로 옮겨탔다는 슬픈 이야기가... 일요일 오후부터 39도를 육박하던 숲이는 결국 40도를 찍고 이틀만에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으나 급성 설사를 동반해버렸다. 하아.... 애미의 닥크서클이 무릎에 닿을 무렵, 이모님이 출근 하셨다. 나는 부리나케 차를 끌고 설사분유를 사러 동네마트에 나갔다. 처음이었다. 며칠전 레슨이 끝나고도 남편과 아기를 함께 태우며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었는데, 아기 설사를 멈춰야 한다는 사명감, 아니 솔직히 그 설사가 멈춰야 어린이집을 보낼수 있다는 절실함이 나를 움직였다.


그간 남편과 연습했던 긴장된 도로 위는 그이 없이 새삼 더 편안했다. 남편의 잔소리가 듣기싫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로 곳곳의 포인트마다 교훈을 주려는 운전 꼰대 혹은 아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다정한 남편의 다급함이 부재한 차안에서 고요한 만족감을 느꼈다. 며칠째 잠도 못자고 아기와 고군분투한 육아와 일상에 벗어나 오롯이 나 혼자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해 빠르게 혹은 천천히 내페이스대로 움직이는 상황이 꽤 마음이 들어서 였을까? 홈플러스를 가는 길 위에서 그간 배운 노하우들을 복기하며 움직이면서 나도 되는구나를 느꼈다. 나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주 평범하고 작은 경험 속에서도 가능한 주문이었다. 자신감은 개나 준 요 근래에 작은 성취였다.


한시간 반의 짧은 외유지만 기동력까지 생긴 나 라는 사람의 창창한 미래을 상상하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이제 차도 끌고 나갈 수 있고, 누가 부르면 지방에도 가고, 무거운 짐도 차로 옮길 수 있는 그런 사람. 이제 누구한테 차편 징징대지 않고도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차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도 더 잘될 것이다- 아기만 어린이집 갈 정도로 건강해지면 ? 다시금 엄마의 홀로서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봐야지. 숲, 엄마도 꿈을 꾸고 실행해야 하지 않겠니? 얼른 낫자.


홈플러스 월드컵점 도착, 무사고로 도착했다는 이 소식을 각 채팅창에 올리기 전에 벌써 심장이 뛴다! 엄마 나 해냈어~!


아기 설사분유를 사러 왔지만 궁금한 것들을 다 담아본다. 그래봤자 절반은 육아템이지만 이것 저것 나에게 주는 선물들.


돌아가는 길, 주차하고 나와 정갈한 주차라인에 또 반한다. 나란 사람 주차도 잘해~ 하앍 :P 육아로 지친 애미는 이렇게 자신감을 충전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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