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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n 04. 2020

젖을 물리는 기쁨에 대하여

출산해서야 알게 된 생경한 것들에 대한 고찰 1


 사실 나는 임신을 그토록 갈망하고 어렵게 아기를 가져 낳은 케이스 치고는 모성애에 대한 확신이나 태어날 아기를 향한 애틋함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저 나이 더 먹기 전에 가족이라는 나의 구성원을 더 늘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자손을 번창하게(?) 하고자 하는 막연한 소망이 있었을 뿐.. 거기에는 '내'가 있었지 단 한 번도 '아기'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특히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다. 가슴 쪽이 예민하기도 하고 또 뭔가 어떠한 생명체가 그렇게 내 몸을 빨아서 에너지원을 가져간다는 게 이상하달까? 아들인 것을 알고는 왠지 모르게 더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무척이나 유별난 엄마다. (나만 이런가?)

 그런데 출산에 관련된 숱한 나의 추측들 가운데, 가장 많이 달랐던 부분이 바로 이 젖 먹이기였다. 출산의 전 과정에서 가장 강렬하고 (긍정적으로) 충격적인 경험이 막 태어난 내 아기가 나의 젖을 무는 순간이었다.

 

수술로 출산을 하고 수면마취가 막 깨어 회복실에 누워있는데 간호사샘이 나에게 물어봤다. "아기 지금 보시겠어요? 아니면 이따 보실래요?" 궁금한 마음에 마취가 덜 깨 몽롱한 상태에서도 "지금이요" 외쳤다. 금세 내 곁에 온 푸르스름하고 조그맣던 아가, 간호사샘은 나의 의중을 묻기도 전에 내 가슴을 풀어헤쳐 아기를 갖다댔고 아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또 힘차게 내 젖을 빨았다. 수술 마취기운이 더해져 그때의 기억이 영화 속 슬로우장면처럼 기억에 남았다.


신기한 건, 그저 징그러울 것만 같았던 아기의 젖을 빠는 행위에서 예상치 못한 기쁨이었다. 작은 아가의 의외의 주도적이고 힘찬 모습, 내 젖을 문 느낌- 작은 입술이 내 젖 끝에 닿은 촉감.. 모든 게 좋았다. 아마도 걱정하던 아기를 무사히 잘 낳고, 또 그 아기가 건강해 보이는 징후로 보여준 젖 빠는 모습에서 큰 안도감을 얻었던 것 같다. 참 내 인생영화 속 경이로운 장면이 하나 더 추가된 날이었다.

 

그후로 모유수유에 대한 기존의 거부감은 모두 사라졌다. 그저 내가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는.. (아직은 어색한 아기와 나의 관계에도) 누군가를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생각에서 열심히 수유했다. 계획 임신과 선택 제왕절개 수술, 임신 출산의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나였다면 그 중심이 아기로 바뀐 첫 경험인게다.


분명한 건, 아기를 위한 엄마의 희생 이라는 의미만은 결코 아니었다. 아기가 나의 젖을 통해 배부른 경험은 나에게도 무척이나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새벽녘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아기를 생각하며 새벽 수유도 열심히 다녔다. 세상이 온통 새까만 밤에도 신생아 방만큼은 훤했기에 조리원에서의 생활은 마치 바깥세상과 다른 시간을 사는 느낌이었다. 7월 한여름 새벽 3-4시의 조금은 꿉꿉하고 인적 없는 고요한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공기를 지나 자지않고 나를 기다리는 작은 생명체를 만날 생각에 느꼈던 설렘이 그때의 큰 기억이다. 같은 기간에 있던 산모들 중에는 밤중 수유 일등이 나였다고 하니 뜻밖에 발견한 성실한 엄마, 나의 발견! 나도 놀라울 뿐이다. 세상 게을렀던 난데!! :)



새벽 네시에도 열심히 수유했던 산후조리원 시절~ 아기를 위한 희생/노력이라기보다 그냥 아기에게 젖 물리는 체험은 뜻밖에 행복하고 보람차다는 걸 발견해서였다.


그당시 아기의 모습


너는 참 귀엽고 젖을 잘 빠는 친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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