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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l 31. 2020

복직해? 말어?

깊고 긴 복직에 대한 고민과 드디어 내린 결정

어제 복직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앞둔 요 며칠 나는 수많은 고민과 번뇌 속에 있었다. 스트레스로 진즉 끝났을 월경이 2주째 지속되는 걸 보니 괜찮다 되내여도 몸은 안그랬나보다. 예상은 했지만 내가 속했던 팀에는 자리가 없었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 부서는 내가 지향하는 커리어패스와 괴리가 있었다. 물론 우리 회사 특성상 타부서 경험과 업무 역량이 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걸 알고있었다. 그런 이유에서 나를 제 사람처럼 아끼는 동료 선배들은 어떤 직이 되었건 일단 복직을 한 후에 넥스트를 보라는 조언이 많았다.




10년 넘는 전체 경력에서 반 이상을 보낸 직장이었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좋아한 구석이 많았다. 직전에 다닌 타 외국계 회사와 비교할 때, 지금의 회사는 외국계 특유의 비인간적인 경쟁에 치여살지도, 현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충수를 두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존버가 미덕인 회사랄까-


눈에 띄는 실력이나 배경 없이 좋은 기회가 쌓여 감사하게 이룬 자리였다... 는 건 타인에게 겸양 떨 때나 하는 말이고, 나는 지금의 자리를 얻기위해 말 그대로 나를 갈았다. 난다 긴다하는 유학파도, 알만한 유명학교나 잘나가는 아부지 어떤 것 하나 없는 나였다. 중소기업 영업사원에서 지금의 자리까지, 무명의 계약직에서 나 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일했다. 워크홀릭이었다. 아니 워크홀릭이 아니면 가능하지 못했다. 그렇게 얻은 것들은 꽤 괜찮은 것들이었다. 남들 다아는 회사 명함, 그리고 매달 들어오는 꽤 큰 돈, 인스타에서 한 컷 플렉스 할만한 것들-




이런 곳을 나온다고 했을 때, 대부분은 의아해했다. 조용히 그런대로 버티면 사기업치고는 꽤 안정적인 직장에 본국과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기업이라 경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맡은 직무가 맞지않아도 당장은 적이 있어야 이직도 되고 연봉이나 경력 산출에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걸 알고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근로자로서 최적의 선택으로 복직을 택해야만 한다.


문제는 내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스타일이 아니라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창밖에 소박하지만 너른 풍경과 산들바람이 행복한 당나귀에게 숨고를 틈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일만큼이나 괴로운 일이 있을까? 새빠지게 달리다보면 물론 두둑한 미래가 보장될게다. 가격에 개의치않고 아이에게 줄 먹거리를 담을테고, 사람들과의 만남에 긴 설명이 필요없는 유명 회사의 이름 석자가 무척 편리할 테니까- 나에게는 세계 1위 기업의 경력, 해외지사의 워크샵, 동서양 동료들과의 교류 - 하나같이 삐까뻔쩍해 보이는 그 배지를 가슴팍에 달기위해 더 큰 일상의 무게에 익숙해져야 했다. 반짝이는 그것들을 유지하는 비용은 나를 숨기고 포기하는 것- 직장생활이 대부분 그러하듯 당연한 것이였다. 그렇게 나는 쌓아올린 것들을 잃을까 두려워 '나' 없는 세상에서 치열하게 존버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힘든 걸 여즉 바꾸지 못했냐는 물음에 너무나 빼도박도 못하는 답이 있었다. 습관과 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가장 쉬웠기 때문- 월급일이 되면 묵혔던 화도 새하얘지고, 소속을 이야기할때면 나의 능력과 배경을 굳히 덧붙일 필요가 없는, 너무나도 편리한 삶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없으면 세상 끝날 것 같은 것들을 두 손 가득 꽉 쥐느라 그 사이 흐트러진 나를 매만질 여력이 없었다. 손에 쥔 그것을 놓아야 새로운 만남도, 발견도 가능하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모든 건 아이를 낳고 더 확실해졌다. 엑셀에서 크기 순 정렬을 하면 저마다 다른 값의 셀들이 그 크기에 맞춰 스스로 정렬을 한다. 싱글로 살아갈 때는 그것의 정렬이 여의치 않았다. 무리수로 가득한 각각의 셀들이 직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 리스트에 내 아이가 출현하자, 불분명했던 유형의/무형의 가치들 값 사이에 선명한 부등호가 새겨졌다. 크게는 내가 지킬 아이, 가족 그리고 육아라는 최전선에서도 잃고 싶지 않은 나 라는 사람- 이 훌륭한 축들을 기준으로 열맞춰가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 두둑한 미래도 어떻게 보면 경주마의 세상에서나 으뜸이지, 마을 한켠에 살아가는 당나귀에게는 최고의 가치가 아니었다. 그럴 재주도 부족했거니와, 그런 미래가 당나귀의 짧지않은 생에 유일한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말보다 덜 빠르고 덜 위험해서 서민들의 교통수단으로 이용이 되었다는데 당나귀도 당나귀의 기쁨을 누리면서, 쓰임에 맞는 자리에서 역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빠른게 대수냐-




나는 '고작' 내가 10년간 쌓아올린 것들을 잃지않기 위해, 앞으로 10년 아니 20년 30년동안 얻을 나만의 일, 유희를 찾아 가슴팍 무겁고 반짝이는 그것들을 내려놓기로 했다.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후회 할거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 내가 잃을 것들에 두려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미루지 않기로 한 이 결정을 자랑스러워 할거다. 적어도 내 삼십대 빛나는 시간을 앞만 보고 달리느라 내 옆에 돈으로도 살수 없는 내 아이의 눈을 맞추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다정하고 소박한 하루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을 지킬 새로운 일을 찾아낼거다. 일단 월에 백만원 벌기가 목표다. 아직은 안개속에서 영 얼굴을 비춰주지 않지만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이 든다. 뭐씨 돈 못벌면 없는대로 살지 머- 아끼는대로 살자. 어제 친구와 이야기했듯, 내가 언제부터 스테이키 오설록 먹었다고- 원룸 자취방에서 떡볶이 먹던 나다. 나는 어떻게든 잘해나갈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런 의미로 오늘 점심은 떡볶이-


어제 적어본 누구에게 보낼곳 없는 메시지-  복직 후 시뮬해본 나의 하루를 나에게 보내봤다. 깨어있는 아기를 오전에 한두시간 밖에 볼수 없다는 생각과 나는 무척 바쁘겠구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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