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로코
정호승 -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커피숍에서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우연히 읽게되었는데 웬지모르게 마음이 뻐근거렸다. 컴퓨터를 챙겨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붉게 물든 마라케쉬의 도로가 그렇게 낯설어 보일 수가 없었다. 황토색의 건물, 깡마른 나무, 제멋대로 운전하는 차들, 메마르다 못해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이 여기는 사막기후라고, 너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마라케쉬에 서있는 이방인이라고 알려주는것 같았다. 그순간 무언가 울컥 치밀어오르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렸다. 흘러넘치는 눈물을 애써 닦으며 생각했다. 글을 써야겠다. 정말. 이제는 글을 써야겠구나.
2012년 시작했던, 나의 뮤즈, 나의 물고기, 나의 사업, 스타트업 이라는 딱딱한 단어보다 그 이상의 것이었던. 나의 꿈, 나의 즐거움!
2015년 하지만, 너무 커져버려서, 제멋대로인 내가 안고가기에는 너무 거대해진, 나의 것이 아닌, 책임감을 내던졌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내가 살기위해서는 더이상 안고 갈 수 없다고, 기꺼이 내려놓고, 훌훌 가벼워졌다며 한국을 떠났다. 겨울에는 돌아올거야. 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길을 떠났다. 애초부터 3개월을 예상했던 여정이었던지라 여름옷 뿐이었던 가방은 가벼웠다. 물론 이 길로 1년을 혼자서 유랑을 하게될지는 나도 몰랐었지.
캐리어는 쓰잘데없다. 당신이 출장을 간다거나 호텔 중심으로 여행을 하지 않는 이상.10킬로 배낭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미니멀리스트 이니 뭔지는 몰라도 그저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 혼자서 떠난다
- 언제 끝날지 모른다
- 난 부자가 아니다
위의 3가지 조건만으로도 가방은 당연히, 생존에 필요한것 위주로 꾸려질수 밖에 없었다. 뭐 여느 사람처럼 여행을 떠나기전 리스트를 체크하여 물품을 꾸린것도 아니다. 첨엔 필요없는것들이 많았는데, 인도에서 베트남으로, 베트남에서 인도네시아로 이렇게 움직이면서 자연스레 필요없는것들은 버려졌고, 마침내 최저 6킬로-최대10킬로 구간의 배낭이 만들어졌을때 마치 내 인생도 그렇게 된거마냥 뿌듯했다.
인도 2개월, 베트남 2주, 인도네시아 1개월, 태국 3개월, 약 6-7개월을 혼자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나를 보니 그렇게 대견할수가 없었다. 무슨 여행의 달인이 된 것 같았다. 캐리어를 끌고다니는 또래의 여성들을 보면 촌스럽다며 비웃었다. 두손을 꼭잡고 여행하는 커플 여행자를 보면 부러우면서도 말했다. 혼자 여행을 해야 진짜인거야. 저들은 제대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아.
아시아는 너무 쉽다는 헛소리를 하며, 북아프리카의 붉은 별- 모로코로 훌쩍 떠났고,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나는 모로코에서 무너져내렸다. 어느새 모로코에서만 4개월. 왜? 왜인지모르지만, 다른 곳과 다르게 모로코에서는 나는 나를 만나야만했다. 애써 피하고 있던 나 자신을.
모로코는 아랍권, 그림인듯한 아라빅으로 쓰여진 간판들과 외국인들을 위해서 불어로 방송을 해주는, 영어는 실종되어있는 아프리카 국가이며, 하루에 5번씩 '알라 악바르"가 울려퍼지고, 쌀은 구경도 못하고, 아시아인은 반경 100킬로미터 내에 나 혼자 뿐인것 같고, 뭔가 오픈되어있는듯한 친구를 만나도 불어를 능통하게할뿐 영어는 떠듬거리는 그들을 만나면서...절대적으로 홀로인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애써 부인하고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나는 왜 떠나온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