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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Jan 24. 2019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라면이 항상 먹고 싶다

콜롬비아, 일기 1/24

차를 석 잔째 끓였다.

보글보글 끓는 물을 바라보니, 절로 라면, 빨간 국물, 매운 냄새, 노란 계란이 연상되면서 입에 침이 고였다. 

하지만 여긴 콜롬비아. 라면은 매우 귀한 그러한 곳이다. 아. 슈퍼마켓에서 니신 베지터블 초록색 일본 라면이라도 사 올걸. (한숨)


원래 라면을 좋아하진 않았었다.

라면은 몸에 안 좋은 거 아닌가. 먹을 거 없을 때 투덜거리면서 먹는 게 라면 아닌가. 라면을 먹고 나면, 뭐랄까 나 자신을 학대한 것 같아서 기분도 안 좋았다. 라면이라 함은 집에 엄마가 없고, 끼니를 대충 때웠다를 뜻했었다. 혹은 피시방에서 대충 한 손으로 훌훌 넘긴 그런 식량이었다.


물론 이는 한국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비상식량 마냥 라면을 하나씩 모아놓고 정말 매우 기분이 안 좋은 날, 우울한 날, 몸이 안 좋은 날 하나씩 까먹곤 했다. 이제 그 기억이 강렬해서 라면을 보면 귀한 비밀의 약초, 엘릭서라도 발견한 마냥 기분이 흐뭇해진다. 


그런데 오늘처럼 그 전날 과음하고, 속은 쓰린데 그 속을 달랠 뻘건 국물이 없는 이런 날은.

그냥 차를 왕창 끓여서 대신 주야장천 마시는 것이다. 하. 라면이 뭐길래. 스위스 몽블랑 정상에서 라면을 판다고 하지? 왜 여긴 없을까. 소확행이 라면이라고 하던데. 노노. 라면을 먹는 것은 대확행 - 거대하고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다.


그러니, 라면을 먹고 있는 당신.

행복한 줄 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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