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커뮤니티를 이루는 가장 큰 첫 번째 요소는 결국,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 "나랑 비슷한 종족"이다. 뭐 그 이유는 아래 링크에 입 아프게 열심히 설명해놨다.
https://brunch.co.kr/@@1W2S/29
내가 치앙마이를 칭송 칭송했던 이유는, 치앙마이에는 변화를 꿈꾸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왜일까? 그런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1. 저렴하다.
발리보다 저렴하다. 발리는 아무래도 관광지 인지라, 가격이 오르고 있고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현지인들처럼 산다면야 가격이 저렴할 수 있지만, 무엇이든 관광 인프라 기준으로 조성되어있어서 아차 하는 순간 돈을 많이 쓰게 된다. 하나, 치앙마이는 발리 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아파트를 순식간에 구할 수 있다.
2. 따스한 기후와 자연.
무엇이든 일단 날씨 좋아야 한다. 아무리 멘탈이 건강한 사람도 우중충한 영국 런던에 살면, 뭐랄까 멜랑꼴리아 적으로 변화하기 쉽다. 그건 당연한 거다! 아무리 북유럽 북유럽 하더라도, 정작 오후 2-3시에 해가 지는 순간 기운이 팍- 꺾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치앙마이라 할 것 같으면, 일단 한겨울인 11월부터 1월까지에도 연평균 2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너무 뜨겁지 않고, 춥지도 않은 선선한 기분 좋은 날씨를 항상 선사해주고는 했다. 그뿐인가 스쿠터 부웅 타고 10여분 나가면 아름다운 계곡과 멋진 temple을 구경하러 갈 수 있다.
3. 영어 됩니다.
중요하다. 의사소통. 기본 정착의 조건이라고나 할까? 태국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
4. 인터넷 빠름.
이놈의 인터넷.... 인도(2-3?)에서 암 걸리고, 베트남(3-5?)에서 쿨럭 거리고, 발리(5-10?)에서 한숨 쉬다가.. 아. 치앙마이 오는 순간. 감동의 눈물. ㅠ-ㅠ 대략 2-30은 스피드가 나왔던 것 같다.
5. 관광지가 아니다. (아직은)
자 보자... 싸지, 따듯하지, 자연 좋지, 영어 통하지... 여기까지는 발리와 다 비슷하다. 기본 정착 조건은 거의 다 갖추었음. 심지어 인터넷도 발리보다 빠름. 게다가~! 관광지가 아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하다. 뭐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난 관광지가 정말 (곱하기 천만 개) 싫다. 관광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분위기가 다 둥둥 떠있다고 해야 하나? 흥청망청 분위기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노는 파티 피플... 아 물론 이해는 합니다만. 그런 동네에서 살면, 매일매일이 파뤼 피플~~ 예아~~~ 이기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어요. 삶이라는 게 맨날 파티인 건 아니잖아요? 하루하루 일상이 있고 패턴이 있고 꾸준히 뭔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관광지에선 그게 그냥 폭삭 날아가는 느낌? 그러나 치앙마이는 사람 사는 동네입니다. (아직은!)
이와 같은 조건이다 보니, 하루만 사는 파티 피플 대신,
화려하지는 않지만- 물가가 싸고, 기후가 온건한 치앙마이에서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었다.
내가 만나고 친해졌던 사람들은 대략 이러했다.
1. 캐나다인, K 씨, 30대로 추정
캐나다 퀘벡에서 잘 나가던 금융인이었다. 돈도 제법 많이 벌고, 결혼을 약속한 연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인생의 수레바퀴가 다가왔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게 된 그는 모든 재산을 팔고 가방 하나 덜렁 메고 떠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 4년째, 치앙마이에 머물고 있다. 템플에서 먹고 지내면서 태국어도 배우고 자원봉사를 하며 나누어주는 삶을 실천하고 있음.
2. 한국인, K 군, 20대
이제 막 군대를 전역한 파릇파릇 20대 청춘. 태국 마사지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치앙마이에서 전문 과정을 (무려 10주) 힘들게 다 듣고 졸업한 그는 이 실력을 펼쳐보고 싶어서 100명에게 타이마사지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온몸이 쑤셨던 나는 냉큼 찾아가 타이 마사지를 받고 기뻐했다는 (...)
3. 미국인, S 양, 20대
무려 하버드 의대를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S양은 치앙마이에서 AIDS에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을 공부하고자 한 달 동안 머물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무에타이 배우러 도장 다니다가 만났다. (...) 호기심 많은 그녀는 매우 게을러터진 나를 끌고 이곳저곳 많이 다녔다. 그녀 덕분에 치앙마이 구경을 나름 하기도 했고, 그녀가 하는 전문적인 프로젝트 내용을 들었으나. 기억이 안 나네 (...)
4. 호주인, T 군, 20대
호주에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다른 전공을 억지로 공부하고, 겨우 졸업하여 호주를 도망쳐 태국으로 온 T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응? 한국인인가! 를 외쳤던, 아 호주에서도 그런 일이! 하면서 개탄을 했던 파릇파릇 청년. 무엇이든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겠다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했던 세월을 개탄을 하는데 남 이야기 같지 않았음. 본인의 사업을 - 그게 뭔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 그래도 할 거라며 이를 부득부득 갈며 바이 바이 호주를 외쳤다. 쓰다 보니, 진짜 한국인 같군 (...)
5. 미국인, S 씨, 40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다가 (과연..) 결혼을 하고, 그러나 이혼을 함과 동시에 퇴사를 강행해버린 S 씨! 그 이후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프리랜서의 삶을 살았다. 자녀가 20세가 되는 순간, 안녕 굿바이! 를 외치면서 태국으로 점프! 생김새와 전혀 다르게 사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은 요가 선생이었다며 (응??) 생긴 건 해적 아니면 피델 카스트로인데 요가 선생이 되고 싶은 S 씨는 나와 함께 치앙마이 템플을 어슬렁 거리며 요가와 명상을 했다. 그는 다시 미국에 돌아가서 요가 스튜디오를 차렸다. (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나는 너무 좋았다.
아! 세상에는 나처럼 미친 사람이 많구나! 나처럼 헤매는 사람이 많구나! 나만 혼자가 아니었어!
미국인도 호주인도 캐나다 얘덜도 한국 얘덜도 뭔가 다른 삶의 변화를 모색하고, 삶의 대안을 찾아보고, 연구해보고 있었다. 나름의 방법으로 나름의 치열함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달달한 망고 스무디를 드링킹 하면서, 나보다 훨씬 무거운 미국인 S 씨를 태우고 휘청거리면서 스쿠터를 몰면서, 무에타이를 너무 힘들게 해서 멍진 무릎을 쓰다듬으며, 아 여긴 사람 사는 곳이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