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n Oct 10. 2016

18. 태국 농장, 퍼머컬쳐 PDC 수강하기

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때까지 심어본 작물은 고구마가 유일하며, 그 기르기 쉽다고 유명한 고구마마저도 나의 귀차니즘으로 돌아가신 쓰라린 추억이 있다. 엄마가 꽃을 워낙 좋아하셔서 집에 화분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내가 그들을 돌보기 시작하면 신비롭게도(?) 그 꽃들이 죄다 죽어버리는 '마이너스의 손'을 지니고 있다. 그런 내가 농사를 배우겠다고?


그러나 도심의 편의를 떠나 자연과 어울려 하나 되는 삶, 월든의 삶, 수염을 길게 기르고 천연 염색한 황토옷을 입고 하하호호하는 삶, 산속의 도인들, 물질만능 주의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매우 힐링하면서 살아가는 심플하지만 행복한 삶,


나도 함 해보고 싶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



이러한 삶의 양식을 어렵게 표현하면 퍼머컬처 (Permaculture)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코스를 PDC (permaculture design course)라고 하더라. 아 물론 검색하면 관련 자료를 훨씬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이렇게 대충 설명하면 안되고 뭔가 심오한 철학이 있음. 그나저나 본인의 경우, 인도 오로빌, 베트남 농장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쌓였고 나름 내공이 쌓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 이왕 관심이 가는 거 조낸 하드코어 하게 제대로 배워보자는 맴이 생겼다. 그래서 전기 없고, 뜨신 물 없고, 와이파이 없는 태국 농장에 오게 된 것이다.


 의기양양한 농부 컨셉 사진 찍기


PDC 과정은 총 10일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가격도 50만 원부터 시작하고 비싸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이 농장은 가격도 저렴이 하고, 신생 농장이라서 집 짓는 것부터 같이 시작한다고 해서 무척 관심이 갔다. 이론보다는 실전이 우선이라고 해서 더더욱.


10일 동안 배웠던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생태 농장 설계 하기 (어디에 무엇을 심어야 하는지 살펴보기)

- EM (Effective Micro-organism / 천연비료) 만들기

- 건강한 흙 만들기

- 씨앗 관리하기, 뿌리기

- 물 관리하기, 천연 방법으로 필터 하기

- 간단한(?) 천연 방법으로 집짓기

- 태양광에너지 간단 (?) 사용방법

- 나의 농장 설계해서 발표하기


수업의 수강생은 나를 포함해서 총 4명이었다.


- 나, 한국, 29세

- 캐서린, 프랑스, 37세

- 유키, 일본, 34세

- 마리, 프랑스, 21세


대략 하루 일과는 아래와 같다.


- 7시. 아침식사

- 9시. 이론 수업 1

- 10시. 실습 1

- 11시 반. 점심

- 2시. 이론 수업 2

- 4시 실습 2

- 6시. 저녁

- 9시. 취침



첫날 실습. 별 건 아니고 땅 뒤집어 엎기


이렇게 10일 동안 밥 먹고, 싸고, 나의 농장을 설계하는 것만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다. 이론을 하나 배우면, 바로 실습을 하기 때문에 자신감도 마구 늘어난다. 어느 정도냐면 일명 '똥 손'인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수업 첫날, 농장 뒤편에 약간 버려진 듯한 땅을 개간했다. 삽으로 어느 정도 뒤집어 놓고, 천연 비료 (EM + rice husk + 숯)을 뿌렸다. 그런 다음 콩이랑 양파랑 마늘 등을 마구 뿌려서 심었다. 그리고 2-3일이 지나자 초록색 싹이 쏘옥 올라오는 거다!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난 아이들을 따서 샐러드 만들어 먹고는 했다.


아 내가 심어서, 수확해서, 먹을 수 있다니!

이게 얼마나 나한테 큰 자극이었는지 모른다. 이때까지 난 화분이나 꽃들에게 영 관심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꽃이 먹는 게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 내가 요 아이를 열심히 키워서 먹고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목표가 생기다 보니 (... 사 먹을 곳이 너무 멀다 보니까) 정말이지 열과 성을 다해 물을 뿌리고, 닭들이 와서 쪼아 먹지 않게 감시를 했다. 콩들이 자라나는 게 너무 귀엽고, 따먹을 생각을 하니 그저 신이 났다. 그렇게 다른 수강생들이 심어놓은 호박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걸 따다가 먹으면서 고맙고, 감사하고, 신기하고...


이론수업 모습


생각해보면 별게 아니고, 그냥 단순한 삶의 방식인데...

농사라는 것도, 생태적 삶의 방식이라는 것도, 퍼머컬처든 뭐든, 그저 어떠한 단어를 갖다붙이든, 모습은 이거다.


내가 심어서 키우고, 그래서 그거 먹고 건강하게 잘 사는 것.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랑 주변의 모든 작은 아이들도 잘 사는 것. 그래야 내가 잘 살 수 있으니까.


마지막 날 각자 10일 동안 구상해온 농장의 계획을 발표하고 수업을 마쳤다. 각자 얼마나 뿌듯해하면서 발표를 하는지. 그리고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이수증을 들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놈의 '증' 이 뭔지. 그 '수업'을 '이수'한 '결과물'이라는 매우 한국스러운 강박증에 PDC 코스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덕분에 인생에 남을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서 그게 고맙고 감사하다.



별거아니지만 저 초록색 증을 받았다.


그래서?

PDC? 없어도 된다. 그냥 농장에서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하면 다 배울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럴싸한 포장지와 마음의 안식이 필요하다면 (나처럼) 수업을 이수하시면 된다.


그리고!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마음만 있다면. 그냥. 지금 당장. 어디서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