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이전 포스팅에서, 마치 이 농장은 규칙 없이도 잘 살아가는 무릉도원인 거처럼 묘사를 했는데, 써놓고 나니 내심 찜찜했다.
https://brunch.co.kr/@lynnata/32
곰곰이 생각해보니, 규칙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이유가, 전 세계에서 모인 인종도 언어도 나이도 그 어떤 것도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멤버들 12여 명이 잘 먹고 잘 살았던 이유는,
우리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아주 절실한.
미국 얘들 2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아주 지멋대로라서 매우 짜증이 나고 성가셨다. 그 녀석들은 밥 때만 되면 휙 나타나서 밥만 호로록 먹고 설거지도 안 하고 자기들 오두막으로 사라지는 아주 짜증 나는 커플이었다. 하고 싶은 일만 슬쩍 나타나서 도와주고, 나머진 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나중에는 걔네들 얼굴만 쳐다봐도 속이 울렁거렸다. 하나 이러한 짜증이 폭발하기도 전에 난 너무나 하루하루가 바빴기에, 우리 모두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기에 부딪힐 일도 없었다. 뭐냐고?
바로 우리 공통의 목표는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
농장은 매우 한적한, 너무 한적해서 전화도 터질까 말까 한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전기도 없는 지역이니까 (...) 그나마 전기가 있고, 돈으로 물품을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나가려면, 산길을 약 1시간을 걸어서 나가야 한다. 아니면 유일한 오토바이 1대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워낙 길이 험하기 때문에 - 진정한 오프로드 라이딩 - 그 오토바이를 몰 수 있는 사람은 주인장인 Sandot이 유일하다고 해야 하나. 그니까, 다시 말하면 이 한적한 동네에서 엄청 잘 처먹는 2-30대가 12명이 우르르 몰려서 살고 있는데, 끼니를 이 안에서 잘 해결해야 한다는 말씀.
하루하루가 아침, 점심, 저녁을 뭘 해 먹나 고민으로 점철되어있었다...
우리는 너무 잘 먹었다. 심히. 하기야 혈기왕성한 2-30대들이 날씨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데서 하하호호하고 있으니 뭐 남아도는 에너지로 먹고, 먹어서 생긴 에너지로 농사짓고, 뭐 그러다 보니 또 먹고 (...) 정말 나도 놀랄 만큼 엄청나게 먹어댔다. 다녀와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까 죄다 먹은 사진밖에 없다. (허허허) 하지만 그렇게 놀랍게 다들 처먹으니 맨날 고민은 아놔 오늘 저녁을 뭐해먹지, 내일 아침 해먹을 빠빠야 남았나, 점심은 일단 호박을 따서 볶자, 등등...
그렇게 강력한 한 가지 목표로 똘똘 뭉쳐있으니까 규칙이 없어도 잘 굴러가지... 결국 이 많은 입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실사판 '삼시 세 끼'도 아니고, 아침 먹고 나면 점심, 점심 열심히 하고 나면 저녁, 삼시세끼 해 먹느라 하루가 가버리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강력한 한 가지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는 것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눈치 없고 싹수없는 미국인 커플도 순응해야 하는 절대적인 이 목표에 우리는 하나 (...)가 되었다. 뭐랄까 기분이 새로웠다. 이런 종류의 목표를 갖고 뭉친 적이 없어서 인가. 하지만 워낙 목표 자체가 순수하고, 명확하다 보니, 설명도 따로 필요 없고, 그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린 저녁에 해먹을 호박을 따고, 바나나를 따서 담아두고, 콩을 따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수북이 쌓여있는 바나나를 보면서 아 다행이야! 하이파이브를 하고 행복해하는 것이다.
아 이렇게 삶은 단순한 거구나!
사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았나 싶고, 저녁에 뭐 해먹을지 고민하는 이 것들이 사실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게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도심 속에서 별 것도 아닌 것들로 고민하는게 더 하찮은 것 같았다.
저녁 먹을 고민만큼 강력하고, 단순하고,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 있던가!!!!!
우리의 목표는 너무 단순하였고, 진실하였기에, 거창한 비전이 없이도, 정교하게 설계된 규칙 없이도, 순진한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