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n Oct 03. 2016

나의 유랑은 끝났다.

#12 #루마니아

오늘은 10월 3일, 개천절, 하늘이 열리는 날이다.

하늘이 열리는 날.

아름다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 나의 유랑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이 개천절이라서 참 멋진데? 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내가 왜 떠나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무엇을 찾고있는지 그 실체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

왜 떠났는지 몰랐기에, 무엇을 찾고있는지 몰랐고, 그런 나 자신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기에 여정은 지난하게 길어지기만 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그럴싸한 핑계와 변명과 거짓말이 늘어났고, 그 것들에 나 자신 또한 속아서 더욱 헷갈리기만 했다.


그럴써한 변명과 과장들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불운한 사건,  잘못된 환경에 의한 피해자였다. 그래서 우울증이 찾아왔고 상담도 받았지만 나의 상황은 악화되었고 그래서 어쩔수없이 그만두었다. 그래서 그러한 빡빡한 도시의 삶이 아닌 자연 속에서 나 자신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떠났다. 


현실은 이러하다.

나의 역량 이상의 업무와 책임감을 짊어지니 괴롭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한 현실인 것을! 하지만 나는 그 것을 인정하고 싶지않았다. 내가 비겁하게 도망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그래서 나 자신을 꾸미고, 색칠하고, 피해자로 만들었다. 심지어는 내가 도망친 그 모든 것들을 다 악(惡)으로 만들었다.  지난 3년간의 열정을 잘못된 것, 뒤틀린 것, 속물적인 것으로 치부했고 그런 나 자신의 사진도 모습도 보고싶지 않아서 다 지워버렸다. 그 모습은 내가 아니야! 라고 외쳤다. 마치 잘못된 연애가 끝난거 마냥...


그래서 일부러 정 반대의 길만 찾아다니면서 나를 정당화 시키려고 무단히도 애썼다. 나는 사람이 싫고, 나는 컴퓨터가 싫고, 나는 인터넷이 싫고, 나는 창업이 싫고, 나는 스타트업이 싫고, 나는 .....................


하지만 내 몸은 거짓말을 하지않았다. 나는 사람이 좋고, 나는 인터넷이 좋고, 나는 새로운 도전이 좋다. 나는 자연을 좋아하고 단순한 삶을 좋아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사람을 끊임없이 만났고, 나는 새로운 도전에 기뻐했고 즐거워했다.


내 몸은 계속되는 여행과 나에게 잘 맞지않는 농장 생활에 지쳐갔다. 내 몸이 괴로워할수록 나는 그걸 정당화했다. 나는 나에게 자꾸 벌을 내리고 있었다. 헤진 옷을 입고 다 떨어져 버린 신발이 난 너무 자랑스러웠다. 치장된 옷차림을 보면 나는 경멸했다. 나의 유랑이 길어지는 것이 괴로웠지만 또한 동시에 즐겼다. 나는 내가 지치고 고독한 유랑자인 것을 즐겼다. 난 여전히 피해자이고, 고독한 사람인 것인거다. 왜??????


문득 2년전쯤 나의 사진을 보았다. 피곤한 기색은 있지만 정돈된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내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당했고, 내가 내리는 결정과 말에 무게를 잘  알고 있었으며, 내린 모든 행동에 책임을 졌고, 내가 이끌고 가는 팀과 즐겁게, 같이 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른이었다.


나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부인하고 심지어 나 자신이 아니라고 외쳤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고 떼를 썼고, 모든 책임감을 내팽겨쳤다. 억지로 애를 쓰며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관심을 구걸했고,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고 과장된 행동과 말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인 마냥, '상처받은 고독한 방랑자'의 옷을 입고 모든 책임감에서 다 도망쳤다. 나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 반대였다. 여행자의 옷을 입고, 방랑자의 모습을 입고,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서 더욱 멀리 도망가버렸다. 나는 그냥 아이이고 싶었다. 마냥 그 상태이고 싶었다. 방랑을 계속 하는 한, 난 그 상태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부인한 결과는 혹독했다.

내 몸이 그걸 대변했다. 내 머리는 부인한다 하더라도, 몸은 정직해서, 내 무의식은 끊임없이 꿈을 통해 나에게 메세지를 전달했다. 답답했다. 계속 도망치고 싶고 계속 잠을 자고 싶었다.


오늘 아침, 다시한번 2년전 나의 사진을 떠올렸다.

내가 부정하고 또 부인하고 다 지워버렸던, 마치 옛사랑 사진 지우듯이 다 지워버렸던 내 사진이.

눈물이 나왔다. 그 모습 또한 내 모습이고, 소중한 나 자신이다. 나는 당당했고, 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어른으로 멋지게 열심히 일했다. 이제 벌주는 건 그만하자.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 것 아니냐. 마지막에 좀더 매끄럽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너도 나약한 인간인 것을. 


고생했다.

이제 그만하자.


이제 유랑을 끝내자. 내가 원하지도 않는 여행은 그만하자. 나에게 벌을 주는 것도 이제 그만하자. 이제 가짜 옷은 집어치우자. 과장된 웃음과 과장된 몸짓도 그만하자. 그리고 그런 나 역시 용서하자. 그리고 이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내가 내린 결정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세상을 겉도는 듯이 살지 말고, 이제 그 속에 들어가서 살자. 그만 도망치자.


땅처럼 정직하게

꽃처럼 아름답게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그렇게 살자. 

그렇게 한 사람의 어른으로 살자. 잘.

매거진의 이전글 루마니아, 첫 날을 보내는 습관 7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