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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Oct 07. 2016

불안과 고독에 대처하며 여행하는 법

#14 #터키

루마니아를 떠나서 터키 이스탄불로 온 지 이제 3일째, 여행은 그저 귀찮고 관광지 따위는 안 간다고 이틀 전에 쓴 것 같은데, 오자마자 이스탄불의 어마어마한 유물과 유적지를 방문하며 계속 우와우와 거렸다. 온몸에 전율이 꽈광 찾아오게끔 만드는 모스크를 보면서, 아 그래 세계여행은 할 만한 것이야,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가 피곤해서 털썩 집에 와서 자고,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몽롱하게 일어나서 오늘은 어딜 가볼까, 무엇을 먹어볼까, 음하하 하다가, 문득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난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건가.


마치 모든 걸 통달한 거 마냥 돌아다니고, 이젠 어디서든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적응하고, 귀찮다고 중얼거리고 이렇게 살지만, 불안한 건 불안한 거다. 이제 곧 나만의 모종의 (?!)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고, 그래서 흥분이 되기도 하고, 신이 나기도 하지만, 또한... 불안하다. 그냥 계속 이렇게 방랑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하지만 안다. 떠돌이 삶이 익숙해져 버려서, 어딘가 정착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것이고, 그래서 불안하다는 거.


비행기 타는 것이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좋은 것 처럼


겁나 불안하니까,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이전 여행 기록들도 정리해야 하는데.. 베를린 기록도 정리해야 하고, 루마니아 기록도 정리해야 하고, 이전 일지들을 기록해야 하는데, 아놔 지금 내가 멘붕인데 이전 멘붕 기록을 어떻게 정리해, ㅅㅂ 쫌 정신이 돌아오는가 싶더니 다시 멘붕이냐. 그래 뭐 인생 멘붕인 거. 그래서 뭔가 긍정적인 것을 써보기로 한다.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일단, 난 겁나 솔직한 여행(방랑)을 하고 있다.

이전에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 어딜 가야 하니까 가고, 뭘 해야 하니까 하는, 뭐랄까 나도 모르게 누가 떠밀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떠밀려가는 그런 여행을 한 것 같다. 지금은 아니다. 진짜 솔직하다. 귀찮으면 안 하고, 피곤하면 안 간다. 체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 뭔가 하지 않는다. 정확한 차이는 이거다. 이 전에는 뭔가 목적이나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싫고 불안하고, 고독하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내가 그냥 아무 목적 없이 붕붕 떠다니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일부로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아무 목표나 계획 없는 떠돌이 인생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목에 뭔가가 탁 걸려버리는 무시무시한 공허함을 나에게 선사해주셨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없는 시간, 백지와도 같은 인생의 나날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 속에 던져진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소비해야, 콘텐츠를 소비하고, 물품을 소비해야 한숨을 겨우겨우 돌리지는 않는다. 소비하기보다는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예를 들면 이러한 브런치 글을 쭉쭉 써대면서),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그 순간의 나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다.

 (아닐 때도 있다. 다시 한번 자본주의의 쳇바퀴를 돌리면서 미드를 정주행하고 뭔가를 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릴 때도 있다...)


현기증이 나도록 아름다운 모스크를 보고 있으면, 불안증 따윈 사라진다.


불안한 것. 당연한 거다.

아니 계획도 없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데 왜 안 불안하겠어.

불안할 때에는 불안하구나. 하면 된다. 아 ㅅㅂ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하지? 젠장 이러면 안 됨! 이스탄불을 즐겨! 모스크를 한 개라도 더 가봐! 이러지 않는다. 아 불안하구나. 불안한 이유는 아무래도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하는 게 쫄려서 그런 거구나. 뭐 불안할 수 있지. 몸이 피곤해하니까 오늘은 그냥 짱 박히는 것이 좋겠어. 뭐 이렇게. 받아들인다.


외로운 것. 고독한 것.

이 전에는 혼자서 밥 먹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는지 모른다. 그게 싫어서 굶은 적도 많았다. 굶다가 배가 너무 고프면 가장 싼 거 아무거나 대충 후려 때려 먹고 끝 했다. 아무래도 혼자 먹으면 맛도 없고, 비싸고, 또 잘 모르다 보니까 어버버 거리다가 엉뚱한 걸 먹을 때도 있고. 텅 빈 숙소에서 혼자 자는 것이 괴로워서 잠도 안 온 적도 참 많았다. (아 눈물 좀 닦고...)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밥 먹을 때도 이것저것 고려해서, 내 몸의 소리를 잘 들어본 다음에 당기는 걸 먹는다. 그리고 내가 외로움을 잘 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나를 이해해서 와이파이 잘 터지는 곳에 상시 대기해준다. 난 혼자서 고독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온 몸으로 배웠다. 그리고 이젠 즐기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혼자 떠돌이 여행은 당연히 불안하고 외롭다. 왜 떠났지 싶고, 아무것도 없잖아를 중얼거리는 나날의 연속이다. 그냥 그게 당연한 거다. 받아들여라! 정직하게 여행해라!

그러고 나면, 몸이 하나씩 알려준다. 몸에게 물어봐라. 몸은 정직하다. 오늘 말씀하시길. 여기 도서관을 한번 가보고 싶다. 거기 가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 그래서 가봤음.


Salt Galata Library

이스탄불 도서관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겁네 행복함. (ㅠ-ㅠ)

그렇게 흐름에 맡기면서 다니면 된다. 겁네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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