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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May 30. 2016

아무것도 하지마

#4 #모로코

한국에 있을때는 쉬어도 쉬는게 아닌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적극적으로 격렬하게 쉬고싶다는 생각만 줄곧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쉰다는 핑계로 아마 미드를 몰아서 보거나, 피씨방에서 LOL을 하거나,

전화를 열심히 하거나, TV를 멍하게 봤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와서야 깨달았다.


아. 난 제대로 쉰 적이 없구나.

아니. 난 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구나.


첫 여행의 서너달은 여행 자체의 흥분으로 뭐 심심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도 간간히 하고 있었고.

진짜 공백은 한 9-10개월지나가면서 시작되었다.

도무지 여행 자체도 몸이 피로해서 못해먹겠고. 어딜가도 그놈이 그놈 같다는 생각이 들고.

몸은 너덜너덜하니 좀 정착을 해서 쉬어야겠는데. 막상 정착해서 멍- 때리고 있으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심심한거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심심할 수가 있지?

이..이상하다. 하면서 거리를 서성여도 머 이제 익숙해서 그닥 새롭지도 않고

(어딜가도 이제 다 대충 어찌어찌해야하는지 느낌 아니까)

심심함인건지 외로움인건지 그게 너무 싫어서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소모적인 놀이들 (안녕 내 이름은 뭐고, 어디서 왔고, 블라블라)

ㅇ ㅏ 너무 싫은거다.


웹툰을 하루종일 보고, 미드도 하루종일 봤는데, 하루 지나니까 곧 또 심심해졌다.

골방에서 인터넷보는것도 하루면 유통기간 끝.

그렇게 마라케쉬 백수가 되는거구나.

아. 백수가 된다는 것은. 진짜 엄청나게 어려운것이었구나. 오.....

아니 도무지 하루 스케쥴이 텅텅텅텅~~~ 비어있으니까 와. 그 공백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는거다.

하루가 끝나면- 휴- 그래도 뭔가 하면서 하루가 지나갔어. 라는 고백까지 절로 나왔다 -0-


너무 너무 너무 심심해서 불어를 배우러다녔다.

첨엔 반짝 열심히 하다가. 곧 대충 대충 게을러빠진 학생이 되었다.

그저 심심해서 배운거다보니, 시간도 많은 백수주제에 그나마 숙제도 안하는 나를 발견!!


너무 너무 너무 심심해서 코딩을 좀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요즘 대세 아닌가.

한 일주일은 나름 열심히 해보려고 한것같다.

일단 카페에서 컴터를 켜고 코딩 비슴슴한걸 쓰고있으면 뭔가 사람들이 와우 하는걸 느끼고

속으로 후후 웃으면서 그걸 즐길뿐

일주일후에 굴러다니면서 일본 애니메만 줄창 봤다.....


한번은 너무 심심한나머지, 프로젝트 비슴슴하게 맡아서 해보았다.

결론은. 님도 울고, 나도 울었어요가 되었다. (되어가고 있다)


ㅇ ㅏ. 심심하다고 아무거나 다 닥치는대로 하면, 똥 되는거구나.


그래서 막 닥치는대로 하는걸 그만뒀다.

그러고 쩝쩝 거리고 있다보니, 발리에서 만났던 딱 봐도 백수와 히피의 냄새가 풀풀 풍기던 호주인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하지마.

아니 아무것도 하지않는게 얼마나 힘든데. 몸이 근질거려서 미치겠다고. 돌아버리겠다고. 그러다가 아무거나 막 하니까 또 되게 별로인거지. 괜히 하기싫은데 혼자 있기 외로워서 걍 하는거 같은 그런 거지같은 그런 느낌

아 그러니까 내말이, 아무것도 하지말라고 멍청아

ㅇㅏ?

첨엔 힘들어, 아무것도 하지않는게 얼마나 힘든줄알아? 대부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않는걸 못한다고. 그거 꽤나 무서운 일이거든. 요즘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 말이야.

그렇지. 난 생각만해도 쫌 겁이나는디?

힘들지만.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하지마. 힘들어도 참고. 걍 있어봐. 몸이 가는데로. 쫌 하고싶다 싶으면 슬쩍 가서 해보고 그래. 진짜 진짜 진짜 하고싶은 일만 하라고. 그것외에는 일을 위한 일, 스케쥴을 위한 스케쥴을 만들지말라고- 그러다보면. 진짜 진짜 진짜 하고싶은 일만 골라서 하라고. 그 아무것도 안하는 상태에서 골라서 하는 '그 '일은 진짜 진짜 일이란 말이지. 심심하다고 외롭다고 마구 닥치는대로 채우지 말란 말이다!


오.

망했어요 프로젝트님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아. 그렇군. 그런거군.

심심하다고 걍 다 하면 안되는구나. ㅇ ㅏㅇ ㅏ.


오늘도 페이스북을 보면, 수많은 일들이 펼쳐지는데, 한떄 나도 저 가운데에서 날라다녔는데

지금은 멀뚱히 백수가 되어서 쳐다보고있는 내 꼬라지가 뭔가 빙구같아서 한숨도 나지만.

그렇다고...저기 또 들어가고싶지는 않네..

아아.그러면 난 우짜지...........


덥다.

어찌보면 내가 이 지루하고 멍청하고 덥기 짝이 없는 모로코에서 4개월씩이나 비비고 있는건.

그 아무것도 하지않음을 실천하기 위해서 인가 ...(...)

아, 실천보다는,

지루하다고 막 닥치는대로 하면 똥 된다는것을 깨닫기위함이었나. (...)


비워야 채워진다고.

일단 내 소유물은 10킬로 미만으로 이미 몸소 미니멀 하다못해 궁상맞기 짝이 없는 미니멀리즘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데-

머릿속은 아닌가 보군.


이때까지 항상 엄청난 발전기를 돌려대면서 쉴틈도 없이 달려오지않았나.

대학다닐때부터 창업을 해대고, 해외 싸돌아다니며 인턴하고, 직장도 옮기고, 그러다 다시 창업을 하고..

단한번도 쉰적이 없었지않나.

지금이 처음인 진짜 아무것도 안하는, 처음 시기니까, 걍 쫌 가만히 좀 있어보자. 응?



내 옆에 쳐자고 있는 고양이는 하루종일 잠을 참 찰지게 잘 잔다.

고양이만도 못한 중생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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