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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Dec 11. 2016

교통사고

#7. 교훈

그렇다. 드디어 (?!) 그 말로만 듣던 교통사고가 났다. 올 것이 왔다. 이런 느낌이랄까.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때는 12월 9일 (대통령 탄핵의 날), 오후 11시 30분. 오랜만에 하우스 멤버 거의 전체가 동네 술집에 마실 나와서 함께 술 한잔을 했다. 나는 그전에 이미 배 터지게 밥을 먹어서 술은 사양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을 스쿠터를 슬슬 운전해서 갔다. 집으로 가는 길은 살짝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길이 좁고 꼬부랑꼬부랑 하진라 특히 밤에는 조심해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속도를 높이지 않고 슬슬 가는데 반대편에서 스쿠터 한대가 오는 것을 봤다. 엄청난 스피드로! 나를 발견한 그는 엄청나게 놀라더니, 운전대를 급격하게 틀었고 그 결과 쓰러졌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엄청난 속도로 쓰러진 스쿠터가 나에게 전진해왔다. 좁은 길에 피할 곳 없던 나는 결국 날아오는 상대 스쿠터와 충돌하며 쓰러졌다.


정신이 들어보니 그 상대방은 우리 스쿠터 밑에 깔려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정신을 잃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남자를 보니 덜컥 겁이 나고 무서운 마음에 스쿠터를 치우고 그 남자를 깨웠다. 그 남자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아아... 순식간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이 늦은 시간에?) 엠뷸런스가 왔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일단 사고가 난 모습을 이래저래 사진을 찍었다. 남자는 엠뷸런스에 실려 사라졌고, 나 자신도 보니 무릎 두 개가 다쳤다. 동네 경찰이 왔는데 우리 모두 전혀 의사소통이 안되는지라 손짓 발짓을 했다. 내용인즉슨 스쿠터는 경찰서에서 가져간다. 기다려라 엠뷸런스가 온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엠뷸런스가 왔고, 스쿠터는 실려서 사라졌다.


동네에 있는 병원에 도착하니 옆 침대에 그 남자는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 보아하니 그렇게 많이 다친 것 같진 않아서 다행이다. 나도 응급치료를 받았는데 뭐 아프지도 않은데 왜 이러지 싶었지만 그래도 교통사고니까 하면서 간단한 체크를 했다. (괜히 그랬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내 머릿속은 이래저래 너무 정신이 없었다. 유일한 태국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SOS를 쳤고, 이 전에 사고가 났었다는 한국인 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이후에 어떻게 되는 걸까? 난 잘못 없는데. 저 쪽에 자빠져서 나도 자빠진 건데. 걱정이 되었다. 간단한 처치가 끝나고 따라오라고 해서 가보니 응급치료가 무려.... 천 밧. 천 밧을 달라고 한다. 한화로 약 3만 원. 많은 돈은 아니지만 태국 물가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면서 일단 계산을 하고 어떻게 되는 거냐라고 물으니까 자기는 모른단다. 정말 영어가 전혀 0% 도 통하지가 않았다. 다시 응급실에 가니까 경찰이 와있다. 경찰이 우리 여권을 요구해서 (운전면허증은 요구하지 않았다) 사진 찍어둔 여권을 보여줬다. 그리고 누구 과실인지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문제의 '그' 남자 친구들이 도착해서 경찰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과실이 50:50이라고 말하며 각자 알아서 병원비와 오토바이 수리비를 부담하라고 한다. 유일한 태국 친구가 전화로 통역한 결과가 이거다. 억울해진 나는 그럴 수는 없다. 난 증인이 있다. 다행히도 우리 오토바이 뒤로 따라오던 친구가 이걸 다 봤다. 그래서 이를 이야기하며 우리 과실은 0%다, 저쪽이 자빠져서 우리가 자빠진 거다....라고 전화로 친구에게 잘 전달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경찰은 난 모르겠음이라는 표정을 짓더니, 시간이 늦었으니 자기는 간다며 (새벽 1시)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이야기 하자며 사라졌다. 이런 닝 기미.


내가 팔짱을 끼고, 불만을 강하게 표시하자, 그쪽에서 뭐라 뭐라 이야기하더니 다시 통역이 이어졌다. 그쪽은 그저 경찰에 끌고 가지만 말아달라, 그들이 병원비 내고 오토바이 수리해주겠다는 것! 오오! 본인들의 과실을 인정하는 건가? 아니면 경찰서를 가면 안 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갑자기 바뀐 태도에 멍 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ㅠ_ㅠ) 얼마를 내면 되냐, 그냥 합의해달라는 말에 고민에 빠졌다 얼마를 요구해야 하지? 오토바이 수리비가 얼마나 나올까. 사실 우리 오토바이가 심하게 깨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5천 밧이냐 4천 밧이냐 실랑이를 하다가 찍어둔 사진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이거 얼마 안 나온다, 그리고 자기가 오토바이 수리 샾을 운영하니까 직접 고쳐주겠단다. 오? 그럼 새 것처럼 고쳐달라, 그 오토바이를 확인하면 합의해주겠다.라고 서로 동의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병원 영수증을 확인한 후 병원비 1천 밧을 나에게 주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오후 11시 30분에 사고 발생하여 집에 오니 약 새벽 2시쯤이었다. 이 모든 것이 태국 친구의 친절한 통역이 아니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중 아무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잘 합의가 되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외국인은 결국, 외국인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그래도 이렇게 잘 정리되어서 다행이다, 우리가 병원비랑 수리비를 내야 했다면 너무 억울했겠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당시 찍은 유일한 사진....(뭘 찍은거니...)


내가 아무리 운전을 천천히 잘 해도, 사고가 나려면 나는 것이다. 방법이 없다. 그리고 덕분에 그 찰나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엠뷸런스가 오는 긴박한 상황, 경찰들, 그리고 너무나도 무기력한 나. 이전까지 내 머리를 맴돌던 고민들이 순식간에 너무 작아져버리는 느낌이랄까? 많이 다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건강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죽음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그리고. "뭣이 중 헌디"  내가 나의 모자람에 갇혀서 너무 중요한 것들을 다 놓치고 살았구나. 나는 치앙마이, 태국에 온전히 잘 살고 있는지,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자연을 충분히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하면서 살고 있는지. 나는 지금 오늘을 충분히 잘 살고 있는가? 과거에 갇혀서 혹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면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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