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왜 같이 사냐
덴마크 대안학교에 관심이 많다. 대안학교 중 '폴케호이스콜레' 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의 특징이 참 많은데 그중 재미있는 것은 여기선 모든 학생들이 무조건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폴케호이스콜레 뿐만아니라 프리스콜레, 에프터스콜레 모든 덴마크 대안학교는 '기숙제 학교'를 매우 선호한다. 왜? 같이 살면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더욱 많은 살아 숨 쉬는 지식을, 경험을, 철학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지식 말고, 삶 속의 살아숨쉬는 진짜 지혜
24시간 동안 같이 살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순간 그 가면이 떨어지게끔 한다. 그때 당신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가끔 나는 굉장히 발가벗겨지고 약한 느낌이 들고는 했다. 하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이 곳에서 나는 나 자신으로 있어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교육과정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운 마음에 진정한 나 자신을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표면적인 모습 외에 나에 대해서 알게 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Folkehøjskole에서 머물고 나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그저 나 자신을 그 자체를 보이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나면, 나뿐만 아니라 남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자료 (출처: https://www.facebook.com/seokwon/posts/10155148508994459?pnref=story )
이는 폴케호이스콜레 학교에 다녔던 학생이 작성한 후기 중 일부이다. 특히 이 부분 '나는 나 자신으로 있어도 안전하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찡했다.
그렇다. 우리는 '내가 나 자신으로 있는 것'에 굉장히 불편하다. 뭔가 그 상황에 걸맞은 가면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허둥지둥 쓰고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의 자세를 강요받고 그에 맞는 가면을 쓰고 산다. 그리고 취업을 하면 그 회사에 맞는, 창업을 하면 대표에 걸맞은, 뭐 그렇게 가면에서 가면으로 이동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다가 문득 백수가 되니까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자인가 나는? 백수인가 나는? 가면 뒤에 내가 누군지 이제는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러 개의 가면을 쳐다보다가 성급하게 이 가면을 뒤집어썼다가 집어던졌다가 엉엉 울었다. 아 고만하자.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가면 안 써도 된다고.
누군가랑 같이 살아본 적이 우리는 그다지 많이 없다. 가족이랑 혹은 연인이랑 같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가족이나 연인이 아닌 생판 모르는 누군가와 살아본 적은 많이 없다. 뭔가 어쩔 수 없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가격이 저렴해서? 아니 본인의 경우는 가족 + 연인이랑도 같이 살아보는 것이 '노노-'인 인간이었던지라. 혼자 내방에 숨어있는 것을 좋아하는 (여전히 그러하지만) 인간인지라 더더욱 그러하다. 누군가랑 같이 산다니! 우오! 불편하지 않아????????
불편합니다.
당연하지. 가족/연인이랑도 싸우는데 모르는 닌겐이랑 살아보면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왜 저 녀석은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하지 안 하는 건지. 내가 이번에 물을 떠 왔으면 이번엔 네가 떠와야 되는 거 아닌지. 저녁 늦게 잠을 처자지 왜 자꾸 노래를 부르는 건지. 끝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런 불만과 짜증을 촘 참고 살다가, 결국 터진다. 그래서 한마디 한마디 한다. 그리고 나도 멍청한 습관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웁스. 그러다가 개인적인 뭔가 뭔가 한 일이 생긴다 - 예를 들면,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같은 -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혹은 울다가 일어나서 퉁퉁 부은 얼굴로 아침에 씨리얼을 우걱우걱 먹고 있으면 다들 알아챈다.
괜찮아?
.... 씨발
이렇게 가면 따위는 고이 접어 나빌레라가 된다. 퉁퉁 부은 얼굴로 씨리얼을 먹다가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긴 우리 집인걸. 그리고 같이 사는 저 망나니 같은 녀석들은 가족인걸. 여기서 어떻게 가면놀이를 하고 자빠지겠는가. 그냥 '나'로 사는 거다. 그리고 같이 살고 있는 저 동거인들이 알아봐 준다. 내 민숭민숭한 민낯이 어떠한지. 야. 밥 좀 먹어. 그렇게.
가족이라서, 연인이라서 마지막까지 끝끝내 쓰고 있던 가면이 툭- 떨어진다.
나의 이런 병신스러움을 보여줘도 되나..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이게 뭐 하루 이틀도 아닌데 계속 같이 살고 있는데 연기를 계속할 수도 없잖아. 이렇게 밍숭 밍숭 하고 들쑥날쑥한 나를 보여줘도 되나 싶지만. 이미 같이 살고 있다. 그리고 보아하니 저 녀석들도 비슷하게 찌질하다. 그리하여...
다른 교육과정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운 마음에 진정한 나 자신을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표면적인 모습 외에 나에 대해서 알게 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나는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그저 나 자신을 그 자체를 보이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