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하우스의 숙명
여행자로서 1년 6개월을 살았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살 때에는 내가 항상 떠나가는 사람이었다. 그 나라에, 그 도시에 도착하고 그래서 친구를 사귀고, 나름 자주 찾아가는 카페, 슈퍼를 방문하고, 그러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훌쩍 떠나는 거다. 익숙함에 이별하는 것이 솔직히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에 대한 두근거림 덕분에 그냥 그럭저럭 떠나갈 수 있었다.
이제 떠나보내는 사람으로 6개월을 살았다.
그런데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을 살았던, 두 달을 살았던, 혹은 석 달을 살았던 사람들을 차례로 떠내 보내면서 이 역할이 꽤나 욱신거린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거의 6개월을 함께 했던 멍뭉이와의 이별 시간이 다가오니 그러하다.
멍뭉이 꿍이는 정말 특별한 녀석이었다.
흔한 태국 똥개이다. 절 앞에 버려진 똥개 새끼 중 한 마리였는데, 입양될 때까지 임시 보호해주는 엄마로서 이 녀석이 꼬꼬마 아기일 때부터 업어다가 키웠다. 아무래도 이제 막 마테하우스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꼬꼬마 강아지 꿍이는 너무 나에게 컸다. 그 녀석은 모를 거다. 자기 자신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집에 오면 엉덩이를 흔들며 오줌을 질질 싸며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왜 이제 왔냐고 - 겨우 2-3시간 자리를 비워도 - 울부짖는 녀석 덕분에 난 꼼짝없이 집 지키는 귀신처럼 집에 붙어살게 되었다. 근데 내 인생 통틀어서 살았던 모든 집 중에서 꿍이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이 가장 좋다. 이제 막 집을 만들어보려는 나에게서 진짜 집을 선물해준 녀석. 꿍이.
그러나 이제 태국에서의 시간을 정리해야 하기에 집도, 꿍이도 이별을 고해야 한다.
정든 집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꿍이와 이별하는 것이 정말 너무 힘들다. 좋은 유기견 단체에서 꿍이의 미모를 알아보고 무려 머나먼 미국에서 꿍이를 데려간다. 그렇다. 떠나간 수많은 여행자들처럼 꿍이도 그렇게 차를 타고 사라지겠지. 나는 뒤에서 손을 흔들어야겠지. 그걸 생각하면 매일매일 자꾸 눈물이 난다.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멍뭉이가 모여서 외로움을 나누고 정을 나누면서 옹기종기 도와주면서 살다가, 이제 하나둘씩 떠나간다. 태국엔 여름이 왔고. 날씨가 무려 38도에 육박한다. 사람도 멍뭉이도 힘들어하는 그런 날씨다. 다들 이 집 덕분에 너무 좋았다며 푹 쉬고 재충전했다면서 미소를 띠고 인사를 한다.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잘 쉬었다고 인사를 한다. 꿍이도 작고 약한 강아지였는데 이제는 무려 8킬로에 육박하는 태국 늠름한 똥개가 되었다. 그렇게 이별을 하고, 부웅 차를 타고 떠난다. 젠장.
여행자들이 밉다. 그들은 그렇게 오고 즐기고 사라지겠지. 이제 알겠다. 집 지키는 멍뭉이 마냥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왜 토착민(?) 들이 노마드들을 싫어하는지 알겠다. 단물만 쪽 빨아먹고 휙 사라지는 게 미워서. 아니면. 정이 들어서 그런 건가.
난 이별이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