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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Apr 07. 2017

더 이상 여행이 설레지 않아

이제 귀국만큼 흥분되는 여행이 없더군

한국에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부터 계속 마음이 심숭샘숭했다.

왜 나는 한국에 가기로 한 거지? 나 자신에게 자문을 해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나 자신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 이것이었다.


더 이상 여행이 설레지 않아.


새로운 국가로 이동하고, 환전하고, 언어를 배우고, 집을 호스텔을 알아보고, 가게에서 끼니를 때우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교통수단을 익히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설레거나 두근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여러 번 반복했던 것이며 그래서 더 이상 나에게 흥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쳤을 때. 그래서 여행이 주는 흥분, 자극, 배움은 사라지고 익숙함, 무뎌짐, 무덤덤함이 남아있을 때.

 

싱가폴의 멋진 야경을 봐도. 아. 그렇구나. 쏘쏘하다.


그래서 오히려 나에게 '귀국' 만큼이나 흥분이 되고 자극이 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 하였을 때.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결국 이 것이 사실임을 인정하고 나서 문득, 계속, 아니 사실 꽤 자주, 서울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나 자신을 자꾸 상상하게 되더라. 그리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누구를 만날까, 아 무엇을 해야 하나,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온갖 총 천연색의 희황찬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면서 그렇군. 이것이 나의 여행이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여행은 무엇인가

여행은 낯선 장소, 사람, 환경, 문화에 대한 탐험이자 도전이다. '낯설다'라는 것은 곧 '익숙하지 않음'을 뜻한다. 새로운 것이라도 익숙할 수 있다. 반대로 오래된 것도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가족은 그리고 어릴 적 친구는 오래전부터 알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낯설다. 왜냐하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친밀함을 뜻하기도 한다. 나와 가까울수록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다를수록 아무리 오랜 기간 함께 하였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낯설 것이다.


그렇게 나와 '다르고'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장소, 사람, 환경, 문화에 나 자신을 던져놓는 것이 여행이다. 이는 그러하기에 탐험이고 또한 도전이다. 


단 한 번도 여행의 동의어가 휴식을 뜻한 적이 없다. 

내가 휴식을 원한다면 익숙한 곳에 나를 던져놓고 널브러질 테다. 여행은 휴식이 아니다. 도전이고 탐험이다. 나와 너무 다른 곳에 나를 던져놓고 나 자신이 어떻게 적응하는지, 배우는지, 성장하는지 지켜보는 나에 대한 탐험이며 나와의 도전이다. 그리하여 여행은 나에게 최고의 수업을 제공할 것이다. 내가 비로소 '진짜 나'와 비슷해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약 2여 년 동안 많은 곳을 떠돌아다녔다. 기약 없이. 목적 없이. 정처 없이. 계획 없이.

- 인도

- 베트남

- 인도네시아

- 태국

- 모로코

- 독일

- 루마니아

- 터키

- 그리고 다시 태국


사실 많은 국가를 가본 것도 아니고, 아직 남미대륙처럼 안 가본 대륙도 있다. 뭐 떠나려면 떠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까. 티켓을 사서 떠나면 되니까.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은 이제 대부분 비슷해서, 환전하고, 호스텔 찾고, 뭐 블라블라, 너무 익숙하니까, 낯설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 이상 나는 흥분되지 않으니까. 차라리 지금 여기 태국과 너무 가까이 위치한 한국이, 내가 무섭고 답답하다고 훌쩍 도망갔던 한국에 2년 만에 돌아가는 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이 상상을 멈출 수가 없어서. 익숙한 듯 하지만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한국에 찾아가는 건 어떤 여행이 될까. 나에게.


낯선 나라지만 너무나 익숙해서 지루했던 싱가폴


진짜 여행을 원한다면, 무섭더라도 절벽 위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야 한다. 편안하고 힐링되는 거 말고, 외롭고, 무섭고, 걱정되지만 직면해야 하는 그 결정을 의도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book by 강신주


그런 삶을 산다면 굳이 여행을 나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삶 자체가 여행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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