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단디 차려야한다.
삼시세끼처럼 살면 행복할꺼야!
스타트업 대표랍시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밥을 제대로 먹는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삼시세끼를 잘 챙겨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는 했다. 배가 고픈걸 참고 일하면서, 김밥으로 대충 때우면서도 난 참으로 치열하게 잘 살고 있으므로 괜찮다고 토닥이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건강이 엉망이었다. 내가 뭐하는건가 싶었다. 무엇을 위해? 도대체 왜?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자발적으로 나는 그렇게 나를 학대하면서 살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그래서 삼시세끼 처럼 살아야겠다 싶어서 농장에 들어가고, 내 끼니는 직접 챙겨먹으면서 살았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말 그대로' 꼴리는데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다. 치열한 삶이 진절나게 싫었기 때문에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아무것도 없는 삶을 직접 실천하며 살아봤다. 그렇게 '슬로우 라이프'를 실천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 빡센 삶을 살았기때문에 적극적으로 반대로 한없이 게으르게, 삼시세끼를 실천하면서 적극적으로 천천히 살았다. 월든을 읽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게으르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다. 사실 난 그냥 너무 지쳐있어서 '제대로'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 - 깊은 심심함 - 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을.
그 심심한 시간들이 흘러가자 점점 멍했다. 당연하지! 난 원칙적으로 느긋느긋 아무것도 안해도 행복한 그런 인간이 아닌 걸! 난 뭔가를 저질러야 신이 나는 사람이란 말이야! 삼시세끼를 보면서 '아- 저렇게 살면 존나 행복할 것 같아' 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았는데 그닥 그냥 그랬다. 심심하기도 하고. 난 그냥 그런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런 시간이 필요했을 뿐. 하하하.
그러니까-
난 스타트업 대표의 존나 밤새면서 난리 치는 인간이 아니었고-
난 세상의 오지를 다 찾아다니는 여행 인간이 아니었고-
난 삼시세끼를 잘 챙겨먹으면서 천천히 사는 슬로우 라이프 인간도 아니었다-
그냥 깊은 심심함이 필요했던 것 뿐이다.
근데 그걸 몰라서 난 나를 자책했다. 왜 삼시세끼처럼 사는데 안 행복한거지? 당연하지! 넌 그런 닌겐이 아니라구! (...)
세상이 건네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걍 '나'로 살아야하는구나. 근데 '나'로 사는 것이 무엇이여? 그걸 모르니까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다 아닌가벼 되었을 뿐. (....) 당연하지. 괜히 '너 자신을 알라' 라고 몇천년전부터 똑똑한 사람들이 지껄였겠는가. 그게 존내 힘드니까 그랬겠지? 하.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건가. 정말 짜증난다. (응?)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 한다. 정말이지 존내 치열하게 말이다. 깊은 심심함도 치열하게 느껴봐야하는거다. 하하하. 젠장.
그렇다. 나를 찾는 것에 나는 치열하지 않았다.
세상이 정해준 정답지 같은 것을 주어들고 그것에 맞추어 사는 것에는 치열했지만, 진짜 나처럼 사는 것에 치열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긴 여정인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말이다..
나 자신으로 사는 건 존나 치열해야한다.
지금 보아하니 '나 자신'으로 살고자 하면 맞서 싸워야 하는 것들이 많다. 무조건 너가 하는 무엇이든 지지하고 응원해줘야할 것 같지만 응원은 개뿔! 온갖 디스를 내려꽂는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한 사람들이 오히려 '너 변했다며' 갸웃거리기 쉽상이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지쳐서 아 시바, 뭐였지. 나 자신으로 사는 건지 뭔지 시발 다 모르겠고- 왜 나는 이렇게 '편하게' 살지 못하는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게다가 말이다, 그렇게 뭔가 '아, 이게 나라는 닌겐인것 같아..'라는 것을 조금 알게되면 말입니다.
그러한 나 자신으로 살고자하면, 끊임없이 존내 치열해야 한다.
그냥 쉽게 대충 살고싶은 나 자신의 내면화되버린 관성이랑도 투닥거려야하고, 가족이랑 주변 시선도 이겨내야하니까. '쉬운 답'에 끄어어어어어어 하면서 저항하는 것은, '존나 느긋느긋한 삼시세끼'의 삶이랑은 당연히 다른, 치열한 전투현장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우어어어 하면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달리다가 이래저래 치여서 지쳐 훌쩍이고 있는 사람을 보면, 혹은 내가 있는 여기는 아닌가벼 하면서 터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남일 같지 않아요.
힘냅시다.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