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기린 아니고 기린
Jan 03. 2020
연극, 테라피(2019)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모두의 삶에 대하여
낡은 창틀이 눈에 띄는 병실 안, 여섯 명의 여자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누군가 했던 말대로, 긴 시간 동안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여자들과 한 방에서 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항암으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왔다 갔다 하고, 누군가는 병원 밖의 삶을 여전히 붙잡고 있고, 주렁주렁 달린 약물 주사 때문에 좁은 병실 안에서 온 가족들과 통화를 해야 한다. 더구나 야속하게도 병실 안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언제 침대가 비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지도 감을 잡을 수 없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하루아침에 나빠지고, 다시 괜찮아지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연극 <테라피>는 그런 그들의 삶을 사실적이고 평범하게 그려낸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장면과 대사를 전달하지도, 이들에 대한 대단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내지도, 그럼에도 얼마나 삶이 위대한지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이대로인’ 삶을 보여주는 게 전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남은 당신의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도, 어떤 길을 걸어도 좋으니 그저 그 순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한 이상하고도 따뜻한 위로. 거창한 말과 대단한 말들보다 더 와 닿는 메시지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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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대로, 이 연극은 절대 이들에 대해 섣부른 위로나 연민의 시선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하듯 덤덤하게 이야기를 꺼낸다. 주변의 누군가가 그런 상황을 겪고 있다고 했을 때 대부분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얼마나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지. 우리는 그들이 가벼운 에피소드처럼 꺼내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다시 한번 이들의 삶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비단 투병하고 있는 사람들만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이 그렇다. 저마다 하나씩의 어려움과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한 섣부른 태도는 그저 텅 빈 위로와 공허만 남길뿐이다. 당신이 하는 매일 매 순간의 선택이 가는 대로 걸어가면 된다고 말해줄 수는 있지만, 그게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선우가 했던 말대로, 우리 모두는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견디고 ‘혼자 싸워내고 있는’ 존재다.
결과적으로 이 연극은 남은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매일 매 순간의 선택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감히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삶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걸어 나갈 것인가.
어렵고 복잡한 질문 같지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함께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서로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위로는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거창하고 대단한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대단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상대의 삶에 왈가왈부하며 떠들어 댈 필요도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걸어가면 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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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더 나은 길을 찾아내고, 누군가는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순간에 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그 삶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아주 뻔하고 시시하게도 내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장면에서 선우를 비추던 조명이 어두워지고 희미하게 남은 빛의 흔적 아래 남은 ‘희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