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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Feb 24. 2019

나는 -한 사람이다.

응 아니야.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야”라고 회사 상사가 말했을 때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입꼬리에 힘을 바짝 주었다. 열흘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봐 온 그의 모습에서 ‘합리성’을 찾기란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말을 내뱉는 그의 표정은 엄격, 근엄, 진지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란 뜻이다. 위 말이 마음의 소리가 아니라면 당장 충무로에 뛰어가 오디션을 봐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의 해석은 이랬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야. 즉 내가 하는 행동, 말은 모두 합리적이야. 내 눈에 거슬리는 건 모두 비합리적이야.’ 그렇다. 그는 꼰대의 전형이었다. 


그는 “나도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꼰대라는 걸 알아”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자신의 독선을 강화하는 말에 불과했다. 보통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밝힐 때는 자신이 지금껏 잘못해 온 부분이 있다거나, 앞으로는 자기검열을 하겠다는 말이 뒤따라 나온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일말의 반성도 없었다. 그냥 꼰대라 불러도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자기가 꼰대라는 사실을 밝혔을까. 사소한 것 하나 자랑하기 좋아하는 그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아마도 스스로 꼰대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꽤나 ‘쿨’해 보였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나는 쿨하면서도 합리적인 사람이야!’


‘나는 -한 사람이야. 나는 -이스트(-ist)’야. 타인을 만날 때 종종 듣는 말이다. 나도 몇 번 저런 식의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저 말의 본 뜻은 자신이 진짜 그런 사람이어서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어떤 인간이더라도 자신이 선언한 이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독실한 신자가 아니고서야 저럴 필요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틀에 갇힌 말과 행동을 하는 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스로 어떤 인간이라고 직접 밝히진 말자. 인간이 완벽할 수 없음을 앎에도 자신이 선언한 모습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면 타인으로서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관계가 깊지 않은 사이에서.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성격이나 사상이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라. 스스로 합리적이고 싶다면 합리적 행동을 하면 된다. 연공 서열에 상관없이 모두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보다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으면 된다. 굳이 언어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아도 옆에서 지내다보면 대충 그런 경향의 사람이구나.를 타인이 판단할 것이다. 위의 모든 문장은 나를 향해 쓰인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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