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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Jan 26. 2019

소화제가 필요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맛있는 음식은 입맛에 맞는 요리다. 향(香)에 특별한 거부감이 없기에 이 나라 저 나라 요리를 자유롭게 즐겨왔다. 내게 맛 없는 음식은 메뉴 그 자체라기 보다는 조리 과정이 엉망인 요리다. 같은 팟타이라도 면발을 혀끝에 대는 순간 미소를 지을 때가 있는 반면, 그 즉시 거부감이 올라올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음식점 혹은 요리사다.


많이 먹는 것 또한 좋아한다. ‘많이’의 절대량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음식이 목구멍에 차오를 때다.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나, 저녁으로 된장찌개에 밥을 슥슥 비벼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자마자 엄마가 퇴근 후 사온 롯데리아 햄버거 세트를 뱃속으로 밀어넣은 적이 있다. 입 속에 손을 집어 넣으면 목구멍에 걸려있는 감자튀김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복을 이미지화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 중 하나다.


문제는 저렇게 먹다 종종 탈이 난다는 사실이다. 밤 열시 열한시쯤, 배가 고픈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때에 나의 욕구를 채우려다 고생하게 된 적이 많다. 엊그제도 야식으로 사온 연어초밥과 라면을 먹고 다음날 속이 불편했다. ‘Sound body, Sound mind’란 말처럼 뱃속의 불편함은 머리와 가슴의 상쾌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소화제를 먹는다. 약국에서 사온 약이 아닌 병원약이다. 이럴 것을 대비해 1년에 한번쯤 병원에 들러 이 주나 한 달치 약을 받아 쟁여놓는다. 한 두번 약을 먹으면 금새 낫기에 또다시 나는 과식(?)을 한다.


먹는 것 못지 않게 책 읽기를 좋아한다. 좋은 책을. 좋은 책은 잘 읽히는 글로 구성돼 있다.  관심사가 넓은 편이라 이 분야 저 분야 가리지 않고 즐겨왔다. 내게 안 좋은 책은 문장이나 논리 전개 과정이 엉망인 책이다. 똑같이 민주주의를 다뤘더라도 어떤 책은 샤프로 밑줄 그어가며 치열하게 읽는 반면, 인내심으로 버티다 덮어버리고 영영 펴지 않는 책도 있다.


많이 읽는 것 또한 좋아한다. 자기 전에도 무언가를 읽으려 머리맡에 책을 놓아둔다. 문제는 게걸스럽게 탐독하다보면 탈이 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채 다음 책을 집어드는 경우도 있다. 몇 가지 문장과 단어는 머릿속을 배회하는데 도저히 내 목구멍과 손 끝에서 그것들을 끄집어 낼 수 없음을 느끼곤 한다. 

 언어의 한계가 아니다. 나의 한계다.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까지 먹고 이내 고생하는 것처럼, 여러 책을 읽고 그 내용과 감상을 전부 소화하지 못해 힘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맞는 소화제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 너무 게을러 보이지만 편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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