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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May 01. 2020

모교 앞 단상

폭력에 둔감해지기까지


대학에 오고부터는 차별, 혐오 등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됐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곤 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둔감한 부분이 있다. 바로 상급자가 가하는 폭력에 대해서다. 머리로는 당연히 안다. 이것이 너무나도 잘못됐다는 것을. 하지만 다른 불합리한 일들과 다르게 상급자가 가하는 폭력을 볼 때면, 마음에 별 동요가 느껴지지 않아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왜 이런 인간이 돼 버린 걸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면 그 끝에는 나의 모교, 이 중학교가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 체벌에 대한 고향 선생들의 인식은 1970~80년대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가벼운(?) 체벌로 동료 선생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아주아주 억울하다는 듯이 목에 핏대 세우며 설파한 이도 있었다. 타지에서 근무하는 동료 선생이 학생을 한 번 툭 쳤는데 학생이 기절해 많은 돈을 물어줬다는 내용이다. 그냥 한 번 툭 쳤는데 많은 돈을 물어준 게 너무나도 불합리해 보였나 보다.

일단 폭력이란 어쩔 수 없고 당연하다는 그의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선생 대부분의 기저에 깔린 인식이 이렇다 보니 자잘한 폭력은 일상이었다. 사실 폭력의 정도가 잔잔바리 수준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 평범한(?) 생활을 했던 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싸대기를 맞은 것 같다. 딱히 큰 잘못을 하지 않아도 맞았다. 손바닥, 주먹, 골프채, 통나무 등 폭력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것들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당시에는 선생별로 자신만의 체벌 무기를 직접 만들어 다니기도 했다. 그 무기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미친놈들도 있었다.

몸만 크고 머리는 그대로라 가장 무섭다는 중학교 일진들도 선생의 폭력 앞에서는 무력했다. 일진이든 아니든 학생인 우리는 모두 평등했다. 교무실에 불려 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뺨따구 스매싱과 폭언으로 얻어맞은 한 일진 아이가 엉엉 울며 교실로 돌아온 일화도 있다.   

엄마와 등산 겸 오랜만에 보게 된 학교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교실 안에서의 일상은 제발 달라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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