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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May 30. 2020

코로나19 검사 후 음성진단을 받기까지

14시간 반 만에 끝나 버린 자가격리.

'여의도 홍우빌딩 내 연세나로 학원 근무자가 5/28(목)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 5/25(월)~27(수) 홍우빌딩(국제금융로78)을 출입한 적이 있는 직원은 증상유무와 관계없이 경영지원실로 연락 후 선별진료소에서 검사 받으시기 바랍니다.


29일 금요일 오전, 한 회사 동기가 동기 단톡방에 해당 내용의 글을 올렸다. 25일...? 기억을 더듬어보니 당일 저녁 약속 장소가 홍우빌딩이었다. 확진자는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6층에 있었고 나는 2층의 한 식당에 있었다. 우선 나와 확진자 분이 머물었던 층수가 달랐고, 6층에 있던 그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을 터인데 나는 계단으로만 이동했다. 그분으로 인해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됐을 확률은 극도로 낮아 보였다.


그럼에도 마음이 놓이진 않았다. 최근 새벽에 잠을 두 번씩 깨곤 했는데 여기에 운동 부족, 술, 담배가 결합돼 컨디션이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금요일 당일부터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보이는 특유의 증상이 나타났다. 몸살 감기와 비슷하게 몸의 온도감이 떨어졌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과 동시에 내가 만약 코로나19 확진자라면? 이라는 생각이 뒤엉켰다. 코로나19의 심각한 증상을 느끼지 않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사회적 까발림'을 가장 먼저 걱정했다. 지난 1주간 동선에 사회적으로 문제될(?) 소지는 없지만 그냥 사적인 생활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을 상상하니 유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 이상한 길로 빠지기 마련이다. 오전 열한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부장께 보고하고 영등포구 내 선별진료소에 전화를 했다. 홍우빌딩에 들렀던 사람들이 많았던 탓일까. 전화하는 병원마다 통화가 어려웠다. 간신히 연결된 한 병원은 이미 오늘 검사를 받아볼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다 찼다며 영등포구 보건소에 문의해보라 했다. 마침 선배께 연락이 왔다. 보건소에 가서 대기표를 받아야 한단다. 의심 없이 영등포구 보건소로 향했다.



정오가 되기 살짝 모자른 시각에 영등포구 보건소에 도착했다. 야외에는 차단봉 벨트가 길게 설치돼 있었다. 벨트의 길이를 보아하니, 도착했을 당시 그곳에 줄을 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간 듯 보였다. 사실이었다. 이곳에서도 오후에 검사를 받을 이들이 모두 대기표를 뽑아가 오늘은 더 이상 추가 검사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나처럼 일을 하다 말고 헐레벌떡 온 것 같은 이들도 여럿 보였다. 정장 차림에 구두까지 신은 이들은 "강서구에서 홍우빌딩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무료 진료를 못 해준다고 한다"며 "여기서 검사 못 받으면 어디 가서 받나"라고 보건소 관계자에게 따졌다. 보건소 관계자는 "선별진료소로 지정된 병원이 자신들이 검사할 수 있는 인원을 초과하면 모두 보건소로 검사 대상자를 보낸다"며 "이곳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내일 오전 아홉시부터 진료를 다시 받을 수 있는데 오늘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건소가 열기 전부터 줄을 서 있었다"고 일렀다. 1분 1초가 불안한데 내일 검사를 받을 수 있다니. 급한 마음에 일단 영등포 보건소를 빠져 나오며 용산구 보건소에 전화했다. 해당 보건소 관계자는 "용산구민이면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면서도 "다만 오셔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용산구 보건소에 도착하니 이곳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관계자는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용산구 보건소에 도착했을 당시 오후 한시를 조금 넘겼다. 아침에 바나나 한 개를 먹은 후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점심도 거른 채 오후 세시까지 기다리다간 죽을 것 같아 관계자에게 밥을 먹고 와도 되냐고 물었다.


"검사를 받은 직후 부터는 본인이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움직이셔야 해요. 담배나 필요한 생필품이 있다면 검사 받기 전에 미리 다 사놓으세요"


관계자의 답변이었다. 아차 싶었다. 조급한 마음에 자가격리에 대한 준비 없이 무작정 검사만을 향해 직진했던 자신을 뒤돌아봤다. 일을 한 뒤로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해먹지 않아 식재료도 마땅치 않은데, 당장 저녁은 뭘 해 먹어야 하지, 음료와 과일도 다떨어졌는데 등의 생각이 이리저리 튀어올랐다.



해당 서류를 작성하며 보건소 관계자가 자택에는 어떻게 돌아갈 것이냐고 묻자 자취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고 되물었다. 그는 원래는 안되지만 어쩔 수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일렀다. 정말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택시가 최선의 상황처럼 보였지만 혹시라도 내가 확진자라면 택시 내에서 코로나19가 전파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까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까. 감이 오지 않았다.


한 시간 반쯤을 기다린 끝에 검사를 받게 됐다. 면봉을 콧 속에 한 번 넣었을 때 '윽'하고, 입 속에 넣었을 때 '엑' 하니 끝났다. 윽엑 한 번을 위해 오전부터 이 고생을 했다니. 허탈함도 있었지만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안도감도 올라왔다.


보건소를 빠져나와 눈 앞의 택시를 잡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주말에도 가끔 하루 종일 7평 남짓한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당장은 자가격리라는 현실이 와닿지 않았다. 다만 친구가 전화로 술 마시자고 불렀을 때 자가격리 중이라 나가지 못한다고 했을 땐 조금 다른 기분이긴 했다.


집에 가만히 있으니 미처 다 읽지 못했던 책을 보다 롤 몇 판하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무슨 일. 아침 7시에 음성판정이 났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거창하게(?) 꿈꿨던 나의 자가격리 생활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럼에도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코로나19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졌다. 처음 코로나19가 사회적 이슈였을 때조차 나는 마스크를 깜빡하고 나갔던 적이 있었다. 깜빡할만큼 마스크 착용하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밖에 나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마스크 미착용자로서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게 싫어 마스크를 쓰게 됐고. 그러나 이제는 '감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확진자라 가정하고 타인에게 끼쳤을 피해를 상상하니 아득해졌다.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소독을 철저히 하자'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입으로 말하기는 언제나 쉽다. 하지만 언제나 실천이 중요하다. 이제 해당 문장은 내게 단순한 말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담배도 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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