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꽃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너무 이른 시간인데, 핸드폰 와이파이는 또 갑자기 안 잡힌다. 어쩌겠나. 억지로 잠을 청할 수 밖에. 그렇게 하염없이 세 시간을 뒤척이다 조식을 먹으러 갔다. 와우 호스텔의 조식 구성은 괜찮다. 22유로에 포함된 조식이지만 시리얼, 빵, 햄 등을 양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큐겐호프. 꽃으로 유명한 공원이다. 라이덴까지 기차를 타고 그 곳에서 버스를 통해 도착했는데, 기차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이 가관이었다. 색색의 꽃들로 채워진 벌판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같은 칸에 있었던 외국인들과 한국인 모두 좌우로 시선을 왔다 갔다, 시선 따라 핸드폰 카메라도 움직이며 놀람의 감탄사를 쉴 틈 없이 쏟아냈다.
큐겐호프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차다. 역시 풍차의 나라답다. 16유로라는 거액의 입장료를 내고 입장. 공원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다. 부지런히 걸어 다닌다면 3~4시간으로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운 빛깔의 꽃들이 우릴 맞이했다. 축제기간 첫머리 쯤에, 날씨도 딱히 좋진 않았지만 관광객은 많았다.
다양한 빛깔의 꽃들을 보며 길을 걷던 중 뜬금없이 앵무새가 있는 새장이 등장했다. 이게 무슨 조합인가. 꽃과 새. 앵무새의 화려한 깃털과 꽃잎의 색감이 연관이 있어서일까? 억지다. 이 새장은 대체 여기 왜 있는 것인가. 궁금했다.
한참을 걸으니 꽃 길의 감흥이 슬슬 떨어진다. 그 순간 눈 앞에 귀여운 돼지 두 마리가 들어왔다. 뱃살을 출렁이며 바닥에 코를 쳐 박고 무언가를 신나게 먹고 있다. 그 뒤에는 닭, 공작, 염소 그리고 라마인지 알파카인지 모를 동물까지 있었다. 아 이제 앵무새가 있는 이유를 알겠다. 꽃만 계속 보면 지루할 수 있으니, 동물들도 같이 공원에 배치했구나. 싶었다.
동물들을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도 라마인지 알파카인지 모를 이 동물은 의연하게 앉아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다. 멋있었다. 그가 앉아있는 모습에서 “니들이 사진을 찍던 말던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 동물이 앉아 있는 모습은 과거 포트리스의 미사일 탱크 같기도 하다. 앉아있는 채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그 느낌.
점심을 먹고는 정원 중앙쯤 위치한 Willem-Alexander 건물에 갔다. 안에는 엄청난 종류의 튤립이 있다. 최소 수 백 가지는 될 것이다. 튤립의 이름도 재밌다. ‘봄의 아름다움’, ‘프랑스의 유니크’, ‘베르사체’, ‘옥스포드 엘리트’, ‘레드 라이트’ 등. 더 재밌는 건 꽃의 이름을 보고 꽃을 보는 순간 상당히 이름과 꽃이 매치가 잘 되는 것 같다. 언어가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튤립 별로 이미지를 잘 포착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새로 깨달은 사실. 튤립이 다른 꽃들처럼 활짝 피는 꽃이란 걸 알았다. 어찌 보면 당연 한건데, 왜 튤립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꽃잎이 조금만 열린, 치마를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일까. 의문이다.
아쉬운 건 역시 4월 초인 탓에, 모든 꽃들이 만개 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꽃망울만 슬쩍 얼굴을 내민 꽃들도 많았다. 아마 4월 말쯤 온다면 화려한 꽃들로 둘러싸인 동화 속 분위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핀 꽃들도 색감은 전부 곱고 아름다웠다. 건물 안에 있는 튤립을 다 봤으니 이제 밖에 나가볼까. 하는 순간 비가 왕창 쏟아진다. 뭐 네덜란드에서 저렇게 쏟아지는 비는, 잠깐 내리다 그치겠지. 싶었는데 화력이 줄질 않는다. 결국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비가 너무 와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노오란 햇빛이 들어온다. 이건 또 뭔가. 역시 네덜란드 날씨다. 뭐 그래도 다들 피곤해 보인다. 호스텔에 돌아가 맛있는 저녁에 맥주 한 잔하고 자는게 최고일 듯 싶다.